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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석학의 창업 “ 세계 시장 30%를 차지하는 기업 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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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및화학공학부 특훈교수가 2018년 자신이 창업한 2차전지 양극재 제조기업 에스엠랩의 생산공장에서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UNIST]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및화학공학부 특훈교수가 2018년 자신이 창업한 2차전지 양극재 제조기업 에스엠랩의 생산공장에서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UNIST]

연구성과 국내 1위 UNIST의 최대 공신

조재필(54)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및화학공학부 특훈교수는 ‘모바일 시대의 쌀’이라 불리는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자다.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석학으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2019년 한국연구재단이 선정한 국내 노벨상 근접 과학자 17명에 포함되기도 했다. 그간 ‘세계최초 휴대전화 배터리 나노입자코팅기술 개발’(2007), ‘한번 충전해 10시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리튬 2차전지 원천기술 개발’(2009년), ‘전기자동차의 리튬 이차전지 충전시간을 1분으로 단축할 수 있는 기술 개발’(2012) 등과 같은 뉴스로 신문 지상을 수시로 장식했다.

5년 연속 논문 피인용 세계 상위 1% #[혁신창업의 길]④조재필 UNIST 교수 겸 에스엠랩 대표 #국내 노벨상 근접 학자 17명에 포함 # 2차전지용 양극재 생산기업 설립 #“핵심기술 있다면 창업하는게 좋다”

학계엔 ‘퍼블리시 올 페리시’(Publish or Perishㆍ논문을 출간하든지 아니면 사라지든지)라는 말이 있듯, 학자는 논문으로 평가받는다.  조 교수는 논문 피인용 세계 상위 1%를 뜻하는 ‘HCR’(Highly Cited Researcher)에 5년 연속 오른 대표적 석학이다. 피인용 상위 1% 논문 편수 기준으로 UNIST 교수 중 1위다. 개교 11년 차 과기원 막내인 UNIST가 연구성과만으로 평가하는 라이덴 랭킹에 5년 연속 국내 1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1등 공신이다. 그런 석학인 조 교수가 2018년 7월 2차전지용 양극재를 생산하는 기업 ‘에스엠랩’(SMLAB)을 창업해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조재필 UNIST 교수가 자신이 창업한 에스엠랩 로비에 섰다. [사진 UNIST]

조재필 UNIST 교수가 자신이 창업한 에스엠랩 로비에 섰다. [사진 UNIST]

창업 4년차, 직원 51명 둔 대표이사 교수 

50대 중반을 넘어선 최고의 학자가 왜 굳이 평생 해보지 않은 창업의 세계에 뛰어들었을까. 창업 이후 최소 4~5년간 매출 없이 돈만 쏟아부어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지난한 과정을 과연 넘어설 수 있을까. 여러 궁금증이 밀려왔다. 지난달 30일 UNIST에서 승용차로 15분 거리(16㎞) 있는 하이테크밸리에 둥지를 튼 에스엠랩을 찾았다. 1층 로비에 들어서니 진바지에 옥빛 티셔츠 차림의 ‘대표이사 교수님’이 반가운 얼굴로 나타났다.  에스엠랩은 창업 4년 차 스타트업임에도 불구하고 지상 4층 관리동과, 9층 높이의 공장동 등으로 제대로 꾸며져 있었다.

공장동에 들어서니 양극재 재료를 섞는 설비가 꼭대기에서부터 3개 층이 이어져 있었다. 2층과 3층에는 혼합한 양극재 재료를 구워내는 전기로 시설이 한창 가동되는 탓에 실내 온도가 섭씨 40도에 가까웠다. 층층이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직원 51명 중 생산기술팀만 28명, 연구인력도 박사학위를 받고 스승의 회사에 입사한 제자 2명을 포함 총 8명이다. 한데, 매출을 물어보니“4년째 샘플 판매한 것으로 누적 3억원이 전부”란 답이 돌아왔다. 조 교수는 그 이유를“배터리 소재 기업의 특수성”이라고 설명했다. 배터리 완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을 납품처로 확보하려면 양산시설도 미리 갖춰야 하고, 소재 검증, 양산품질 승인 등의 절차를 거쳐 최종으로 납품처의 제품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이 통상 4~5년이 걸린다. 수많은 2차전지 관련 스타트업들이 중도 포기하는 이유가 이런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조 교수는 “현재 1개 제품이 국내 배터리 기업으로부터 개발승인 즉, 양산품질 승인을 받아서 마지막 사업부 평가를 기다리는 중이며 또 다른 국내외 2개사에선 소재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라며 “이르면 내년 1분기에 첫 제품의 최종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에스엠랩(SMLAB)

 2018년 7월 창업
           11월 벤처기업 인증
           연 3.6t 파일롯 생산라인 확보
2019년 시리즈A 70억원 등 136억원 투자유치
           연 600t 생산라인 확보
2020년 시리즈B 520억원 투자 유치
           연 7200t 생산라인 확보
2021년 7월 예비 유니콘 선정
2022년 7월 코스닥 상장 계획(주관사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창업 4년째 매출 0원인 이유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사용시간이 지날수록 짧아질 수밖에 없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통상 초기 용량대비 80% 정도로 떨어지면 수명이 다한 것으로 본다. 국내 전기차의 경우‘배터리 평생 보증’이라 하고는 있으나, 10년 20만㎞에 65% 이상, 평생(차의 수명) 50%를 보증한다고 되어 있다. 배터리는 전기차 가격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에 교체하기도 쉽지 않다. 2차전지는 양극재와 음극재ㆍ분리막ㆍ전해질로 구성된다. 양극재와 음극재는 배터리의 용량과 수명ㆍ충전속도를 결정하는 핵심 소재다. 양극에 있던 이온이 음극으로 이동할 때 충전되고, 음극에 있던 이온이 양극으로 이동할 때 방전되는 원리다. 에스엠랩은 이런 전기차 배터리의 수명을 좌우하는 양극재 분야에서 기존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단결정’ 양산 기술로 관련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LG화학 등 국내 배터리 제조사는 물론 미국 테슬라도 향후 3~4년 내 단결정 양극재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조 교수는“다른 조건이 같다면 단결정의 배터리 수명이 기존 다결정보다 30% 이상 높다”며 “향후 10년 안에 전체 시장의 50% 이상을 단결정 소재가 차지할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보적 기술이 있으니 투자유치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에스엠랩은 2018년 8월 창업 한 달 만에 시드머니에 이어 중소벤처기업부의 TIPS(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돼 5억원을 투자받아 연 3.6t 규모의 양극재를 생산할 수 있는 파일럿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이듬해에는 1월 70억원 규모의 시리즈 A 등 연말까지 136억원을 투자받아 연 600t 규모의 생산라인을 확보했다. 지난해 5월에는 한국투자증권 등으로부터 총 520억원의 시리즈 B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 돈으로 가천공단의 현재 본사와 공장을 지을 수 있었다. 현재의 생산 규모는 연 7200t까지 올랐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달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예비 유니콘 기업에 선정됐고, 올해 안으로 450억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도 유치해 생산 규모를 총 2만1600t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지난 6월 울산시가 에스엠랩과 2차전지 양극재 생산시설 증설을 위한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한다고 밝힌 게 바로 이 내용이다.

창업 4년째 사실상 매출 0원인 스타트업으로서는 무리한 생산설비 확장이 아닐까.  조 교수는 “양극재  생산기업은 시장진입이  양산라인 선구축 및 품질 승인을 받아야만 시장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업 초기에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며“하지만 배터리 양극재는 시장진입이 어려운 만큼 납품업체의 승인을 받고 나면 배터리 완제품 생산업체와 대량공급 계약을 통해 안정적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새로운 소재가 기존 배터리 시장을 뚫으려면 새로운 신소재 양산기술확보와 더불어 전지 성능에서 우위를 보여야 한다”며 “에스엠랩은 단결정 양극 소재 세계 최고의 생산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라고 덧붙였다.

2030년 매출 3조원 글로벌 기업이 목표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조 교수의 얘기다.  그는 “경쟁사 대비 빠른 시간 내 자금을 투입하여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최소한 연간 4만t 규모의 양산라인을 구축해야 하는데,  앞으로도 3~4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 교수가 말하는 에스엠랩의 비전은 작지 않다. 2030년 매출 3조원, 세계 단결정 시장 30%를 차지하는 배터리 소재의 대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게 목표다.

최고의 석학이라지만 연구하기도 바쁠 텐데, 왜 창업에 나섰을까. 그도 처음엔 연구에서 얻은 기술을 기업에 이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했다. 특허권리도 넘어가면 끝이었다. 첫 연구자의 뜻대로 개발을 진행할 수도 없었다. 조 교수는 “단결정 양극재도 기술을 이전했더라면 몇억도 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지금은 시장에서 1600억원 이상의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의 창업엔 정무영 전 총장의 권유도 컸다. 정 총장은 “엔지니어가 논문만 적느냐. 논문은 낙엽이라, 버리면 끝이다. 핵심기술이 있다면 창업을 하는 게 좋다”고 역설했다고 한다.

그래도 기업에 몰두하다 보면 연구에 소홀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창업 4년째에도 연구성과는 여전했다.  조 교수의 한 해 평균 SCI 논문 수는 15편. 창업 이후인 지난해에는 20편을 썼고, 올해도 최근까지 10편을 올렸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지도 학생도 박사후연구원을 포함해서 7명으로. 예전의 3분의 1로 많이 감소해 당분간 논문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회사가 안정화되고 CTO로 물러날 때까지 당분간은 제자들을 추가로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내 나이 50대 중반으로 연구의 정점을 넘어갔다”며“이제는 그간의 연구성과를 가지고 사업화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성과가 많이 나오는 교수들의 나이가 평균 40대 초중반에서 50대 초반이라는 말도 보탰다.

정무영 전 UNIST 총장은 “교수창업이 중요한 이유는 고도의 기술에 기반을 둔 영향력이 큰 창업이기 때문”이라며 “평생 해당 분야 연구를 해왔고, 해당 분야 산업의 핵심을 잘 알고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고 경쟁력도 있다”고 말했다.
『축적의 길』의 저자인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과학특보)는 “에스엠랩과 같은 사례는 연구개발이 산업화 단계로 이어지기 위해서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며 “지금까지의 벤처투자의 방향이 창업기업의 수를 늘리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스케일업을 지원하는 것으로 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조재필

1967년생. 경북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도미, 아이오와주립대에서 세라믹공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첫 직장으로 삼성SDI에서 입사, 중앙연구소 에너지개발팀에서 2차전지 양극소재 개발을 했다. 이후 금오공대와 한양대를 거쳐 2009년 UNIST에 왔다. 2016~2019년 연구처장 겸 융합연구원장을 역임했고, 2019년 연구실적 등을 인정받아 특훈교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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