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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한 홀 13타 김시우와 영화 틴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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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영화 틴컵 포스터. [중앙포토]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영화 틴컵 포스터. [중앙포토]

김시우(26)가 9일 월드골프챔피언십(WGC) 페덱스 세인트주드 인비테이셔널 4라운드에서 11번 홀(파3) 한 홀에서 10오버파를 기록했다. 파 3홀 13타는 PGA 투어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3년 이후 일반 대회의 파 3홀에서 가장 높은 스코어다.

특이한 점이 두 가지 있었다. 김시우는 첫 번째 공이 물에 빠진 뒤에도 안전하게 그린 가운데를 보지 않고 계속해서 구석에 있는 핀을 보고 쐈다. 길어도 안 되고 짧아도 물에 빠지는 아일랜드 그린인데 김시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김시우의 11번 홀 공략. 아일랜드 그린에서 계속 핀이 꽃힌 구석으로 공략했다. [사진 PGA 투어 캡쳐]

김시우의 11번 홀 공략. 아일랜드 그린에서 계속 핀이 꽃힌 구석으로 공략했다. [사진 PGA 투어 캡쳐]

함께 경기한 캐머런 스미스는 “김시우가 아주 공격적으로 깃대를 노렸다”고 했다. 대회는 상금이 1000만 달러가 넘는 WGC 대회였다. 한 타, 한 타에 상금 차이가 크다.

케빈 코스트너와 르네 루소가 주연한 골프 영화 ‘틴컵’의 내용과 흡사하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US오픈에서 공동 선두를 달리다 파 5홀에서 2온을 노린다.

첫 번째 공이 그린에 올라갔다 굴러 내려와 물에 빠졌다. 물에 빠진 곳 근처로 가서 드롭하고 쳐도 되는데 주인공은 원래 자리에서 볼을 쳤다.

공 다섯 개가 물에 들어갔다. 남은 볼은 하나뿐이었다. 그것마저 물에 빠지면 실격될 위기였다. 코스트너는 그러나 역시 타협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공을 쳤다. 공은 홀로 빨려 들어갔다.

틴컵은 ‘무모하게 경기한다’는 뜻이 있다. 영화 틴컵의 주인공은 공 5개를 물에 빠뜨려 우승은 놓치지만, 사랑을 얻었다. 용기 있게 계속 도전한 모습을 르네 루소가 좋아했다.

김시우와 오지현. [김시우 인스타그램]

김시우와 오지현. [김시우 인스타그램]

KLPGA 7승을 한 스타 오지현(25)이 지난 1일 3년 만에 우승하고 나서 “김시우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다”고 공개했다. 계속 핀을 보고 공을 친 김시우의 모습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연상됐다.

김시우의 샷들은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뜨거운 사랑을 할 때 아드레날린이 넘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김시우는 내후년까지 출전권이 보장돼 있기 때문에 호기를 부려볼 여유도 있다. 김시우는 15~17번 홀에서 3연속 버디로 멋지게 경기를 끝냈다.

두 번째 특이점은 김시우가 클럽을 부러뜨리지 않았다는 거다. 그의 코치인 클로드 하먼 3세는 “김시우는 화가 날 때 클럽을 부러뜨리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올해 마스터스에서는 선두권에서 경기하다가 퍼터를 부러뜨리고 우드로 퍼트해 화제가 됐다.

마스터스 후 김시우는 PGA 투어 동료 선수인 펫 페레스에게 다시 클럽을 부러뜨리면 10만 달러(약 1억1500만원)를 주기로 약속했다.

경기 후 소셜 미디어에 김시우는 재미 교포인 케빈 나와 함께 3과 4를 손가락으로 들어 보이는 사진을 올렸다. 김시우는 파 3홀 최고 스코어 13타를 쳤고, 케빈 나는 파 4홀 최고 스코어인 16타를 기록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김시우는 “14개 클럽 그대로 갖고 있다”고 했다. 클럽을 하나도 부러뜨리지 않았다는 의미다. 김시우는 이전보다 여유가 있어 보인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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