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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대선 후보 ‘캠프 정치’라는 잘못된 관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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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용호 전 한국정치학회장·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김용호 전 한국정치학회장·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대선주자들의 ‘캠프 정치’가 정당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대선 후보의 사조직에 불과한 캠프가 헌법에 명시된 공조직인 정당을 압도하는 바람에 정당이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현역 의원의 사조직 활동 부적절 #예산 낭비와 패거리 문화 막아야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나. 첫째, 국회의원들이 사조직인 캠프에서 공식 직함을 갖고 활동하는 잘못된 정치 관행 때문이다.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이 의정 활동을 팽개치고 매일 대선후보 캠프에 나가서 활동하는 것은 신분을 망각한 것이다. 미국의 현직 의원은 대선후보 지지 선언을 하더라도 캠프에서 공식 직함을 갖고 일하지는 않는다. 현직 의원이 사조직(캠프)을 위해 일하는 것은 윤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직 의원이 대선후보 밑에서 일하면 의회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권력분립을 망가뜨린다.

둘째, 캠프에서 만들어진 어설픈 정책이 대선에 승리한 뒤 국가정책이 되면서 수조 원의 예산 낭비를 초래하거나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문재인 후보의 탈원전 정책과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여당조차 캠프에서 만들어진 정책을 챙기지 않는 경우도 많아 무책임 정치가 난무한다.

미국의 경우 예비선거가 끝나면 대선후보 지명 전당대회에 앞서 각 정당의 승자와 패자 캠프가 만든 정책 중에서 무엇을 취사선택해서 본선에 나갈지를 놓고 치열한 토론과 협상이 이뤄진다. 그렇지 못하면 치명상을 입는다. 1980년 민주당 예비선거의 승자인 지미 카터 후보가 패자인 에드워드 케네디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지 못해 본선에서 패배한 것이 유명한 사례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는 승자와 패자가 캠프에서 만든 선거공약을 통합해 당의 정책으로 만드는 과정이 제대로 없어 엄청난 부작용을 낳는다.

셋째, 대선 캠프 정치의 최대 폐해는 대선 승리 후 캠프의 주요 인사들이 국정의 요직을 차지해 대통령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하는 것이다. 공조직인 정당 인사는 기준·절차·규정에 따라 이뤄지지만, 사조직인 캠프 인사는 전적으로 후보 마음대로 당 내외 인사를 발탁한다. 캠프 종사자들은 후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데 몰두하기 때문에 ‘패거리 문화’가 형성된다. 그 결과 각 당에서 캠프에 참여한 인사와 참여하지 못한 인사들 간에 친문-비문, 친박-비박, 친이-반이 등으로 나뉘어 당내 파벌싸움으로 당을 분열시킨다.

캠프 정치의 폐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공(公)과 사(私)를 구별해야 한다. 현직 국회의원이 대선후보의 사조직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하려면 의원직을 사퇴하도록 해야 한다. 당이나 국회 차원에서 이런 잘못된 정치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

대선 캠프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정치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대선 과정에서 정당의 역할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각 정당의 당헌·당규를 고치고, 정당법·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행 제도는 지나치게 후보 중심의 대선을 조장해 후보 캠프가 정당을 무력화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각 정당의 경선 승자는 본선에 내놓을 선거공약을 패자와 함께 당의 공식 기구에서 만들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각 정당의 경선 승자는 캠프 인사를 모두 당원으로 등록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 그래야 캠프 인사들이 대선후보에게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과 일체감을 갖고 정치적 책임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선후보 결정 방식에서 여론의 비중을 줄이고 당원의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하는 방향으로 고쳐야 캠프 대신 정당의 역할이 높아진다. 여론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각 정당이 여론에 매달리는 경우 오히려 본선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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