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양성희의 퍼스펙티브

“징벌적 손배제 도입되면 더이상 최순실 보도 없을 것”

중앙일보

입력 2021.08.1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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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무엇을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인가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여권에 우호적인 세력들마저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진보 학계, 법조계, 언론운동단체, 정의당도 반대다. 한국기자협회 등 6개 언론단체는 법안 폐지를 촉구하며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그러나 여권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개혁’ ‘가짜뉴스 피해 구제’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달 중 처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얘기다.

개혁 허울 두른 자멸적 언론통제
진보진영도 일시에 반대 목소리
위헌 요소 다분해 민주주의 퇴행
정부광고와 매체 호·불호도 연계

세계적 유례없는 최악의 언론통제

이번 개정안의 골자는 허위·조작 보도를 한 언론사에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토록 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다. 민주당은 “미국과 영국에서는 언론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언론만 꼭 짚은 ‘언론징벌법’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역시 해외에 유례없는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 도입,  ‘악의’나 ‘허위·조작’이라는 개념의 모호함, 고의·과실 입증 책임을 피해자 아닌 언론사가 지는 것, 피해 정도 아닌 매출액을 손해배상액의 기준으로 삼는 것 등 문제점이 한둘 아니다. 이중 규제, 졸속 입법, 우리 사법체계와 맞지 않는 위헌적 요소에 무엇보다 언론 자유 침해와 그로 인한 권력 감시 기능 후퇴가 예견되는 역대급 악법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이 지난 5일 주최한  ‘민주당 언론중재법의 쟁점과 해법’ 토론회에서는 민주당에 앞서 징벌적 손배제를 주장해온 언론인권센터 윤여진 상임이사마저 “민주당 법안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용석 건국대 교수는 “민주당은 가짜뉴스 규제를 내세우지만, 사회적 허위조작정보는 자율 규제하고, 차별금지법 등 형법 조항이 필요하다는 게 유럽연합(EU)을 포함한 세계적 흐름”이라며 “징벌적 손배제가 도입되면 더이상 최순실 보도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주로 서민인 피해자 구제가 목적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제 언론 취재 대상의 90%가 공적 인물·기업이다. 결국 정상적 언론활동의 위축, 민주주의 퇴행으로 이어질 것이다.”(오픈넷 손지원 변호사) “열람 차단 요청만 해도 기사에 청구 표시가 달리는데, 이는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문제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 전략적으로 호도할 가능성이 있다.”(이승선 충남대 교수) “우리보다 더 강한 징벌적 손배제가 작동하는 미국에서 가짜뉴스가 사라졌는가. 그렇지 않다. 민주당은 애초 언론개혁 과제로 약속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같은 기득권 내려놓기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이런 법률을 만들었다면 민주당이 찬성했을까. 도대체 이 법은 누구를 보호하려는 것인가.”(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 토론회에선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또 하나의 괴물, 미디어바우처법

양성희 퍼스펙티브

양성희 퍼스펙티브

민주당의 ‘언론개혁’에는 ‘미디어바우처법(국민 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도 포함돼 있다. 윤호중 원내대표가 언론중재법, 신문법(포털 사이트의 뉴스 편집권 제한)과 함께 빠른 처리를 약속했다. 정부가 만 18세 이상 국민에게 일정액의 미디어 바우처를 지급하면 국민은 자신이 원하는 언론사에 바우처를 제공하고, 이를 기준으로 정부광고를 집행하게 하는 법안이다. 국민은 싫어하는 언론사에 마이너스 바우처도 줄 수 있다.

이 역시 문제가 많다. 사실 이름도 생소한 미디어바우처 제도는 최근 미국에서 언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시민의 언론참여를 늘리기 위해 실험적으로 고안됐다. 2019년 미국 시카고대 스티글러센터 디지털플랫폼연구위원회는 디지털시대 저널리즘 복원을 위해, 미 재무부에 1인당 연 50달러의 미디어 바우처 발행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냈다. 국민은 그 바우처로 원하는 언론사를 후원할 수 있다.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수신료만큼 별도 재원 마련이 필요하고, 자칫 인기투표로 흐르지 않게 국민적 합의와 이해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여권은 재원 확보와 사회적 논의 과정을 생략한 채 이를 정부광고 집행과 연동시켰다. 최근 정부광고 집행기준을 마련하는 ABC협회의 유료부수 부풀리기 의혹이 터진 틈새를 노렸다. 정부광고에 문제가 있으면 집행과정을 투명하게 하면 될 일인데, 엉뚱하게 미디어바우처제도를 끌어와 시민들이 정부 홍보 매체와 광고비를 정하는 비정상적 상황을 야기한 것이다. 정부 광고의 효율성·자율성도 당연히 떨어진다.

지난 6월 언론노조 등이 주최한 열린 ‘언론과 독자의 소통을 위한 미디어바우처제도 토론회’에서도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다. 미디어바우처제도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김선호 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민주당 법안은 바우처를 정부광고 배분 기준으로 삼아 제도의 기본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용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미디어바우처는 언론시장에서 약자 위치에 있는 언론사를 돕기 위한 제도로 그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며 “(정부광고 아니라) 언론진흥기금, 방송통신발전기금 등으로 시범사업을 소박하게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정 언론 죽이기로 변질될 수도

특히 ‘불호(不好)’의 표시인 ‘마이너스 바우처’가 위험하다. 마이너스 바우처를 받으면, 해당 금액만큼 미디어바우처가 환수된다. 언론 소비자에게 특정 언론을 죽이거나 살릴 수 있다는 효능감을 쥐여줘, 좋은 언론 살리기가 아니라 싫어하는 언론 죽이기로 변질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김명래 언론노조 지역신문노조협의회 의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마이너스 바우처는 특정 사안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사를 공격하는 무기로 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의 말대로 “‘좋은’ 언론이 ‘좋아하는’ 언론이 아닐 경우 마이너스 바우처를 받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가뜩이나 고질병인 정파적 언론 소비를 강화하며 불필요한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법에는 정정보도를 하면 미디어바우처 일부를 환수하는 조항도 들어 있다. 정정보도를 하면 무조건 가짜뉴스로 규정하는 것이다.

한편 여권의 대권후보 1위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5배도 약하다.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강력한 징벌을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예의 ‘통제적’ 언론관을 확인시켰다. 기자 출신인 이낙연 전 총리도 “내가 현역기자였다면 환영했을 것”이라며 “언론인과 시민들의 생각이 다르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그 시민이 전체 시민인지, 민주당에 반대하는 언론을 벌주고 싶어하는 지지자들인지는 확실치 않다.

언론혐오 제도화, 가짜뉴스라는 가짜뉴스

물론 한국 언론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크고, 언론 역시 자정과 변화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미디어 환경 변화 속에서 자칫 소비자의 신뢰, 시장 모두를 잃을 수 있는 위기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사회적 문제는 ‘기레기’때문이며, 자신에게 불리하면 ‘가짜뉴스’ 낙인을 찍어 언론을 악마화하는 프레임,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나쁜 언론이라 집단 공격하는 언론소비 방식에 문제는 없는가. 언론을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매도하고 혐오를 부추기며 정상적 언론활동을 방해해서 진짜 좋은 언론을 가질 수 있는가.

이재명 지사의 발언에 대해 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면책특권 뒤에 숨어 아니면 말고 식으로 검증되지 않은 허위조작정보를 가장 많이 유포하는 게 정치인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선 “포장은 언론피해자 구제를 내세우지만, 내용은 언론혐오를 제도화하는 시대착오적 법안”이라고 거듭 비판했다.

“여야가 얘기하는 가짜뉴스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 가짜뉴스 관련 입법이 정치입법인 이유다. 가짜뉴스, 허위조작정보 같은 단어가 법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이유다.” ‘민주당 언중법’ 세미나에서 황용석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구글노믹스』의 저자인 제프 자비스 뉴욕시립대 교수와의 대화도 소개했다. “가짜뉴스 얘기를 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더라. 가짜뉴스 얘기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이 누구인가. CNN을 가짜뉴스라고 했던 트럼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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