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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경록의 은퇴와 투자

당신은 주식인가 채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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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경록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대표

김경록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대표

주식인가, 채권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주식과 채권 중 어떤 자산을 사야 하는가’로 생각한다. 아니다. 당신 자신이 주식인지 채권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내가 채권이라고? 사람을 금융자산과 동일시하는 데 강한 거부감을 가질 수 있지만 생애 자산관리의 출발점이자 뼈대는 ‘나’를 객관화시켜 자산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나’라는 인적자산을 중심으로 #현금흐름 관리하는 전략 필요해 #젊어서는 주식보유 비중 늘리고 #노후에는 안전자산 확보해야

대기업에 다니는 A씨가 있다고 하자.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면 퇴직 때까지 채권의 이자처럼 근로소득을 받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채권의 이자는 고정된 반면에 근로소득은 물가에 따라 오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A씨는 이자가 물가에 연동돼 지급되는 채권과 같다. 게다가 A씨는 근로소득 일부를 공적연금으로 저축해 퇴직 후에는 종신연금을 받는다. A씨의 생애 현금 흐름만 볼라치면 금융전문가들은 A씨를 사람이 아닌 물가연동 채권이라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학자들은 사람을 채권으로 본다.

이제 생애 자산관리 측면을 들여다보자. A씨의 첫 번째 과제는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행여 자신이 크게 다치거나 사망하면 가족의 현금 흐름이 끊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보험이나 상해보험에 가입한다. 하지만 퇴직 후에는 생명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 그때는 소득을 벌지 못하니 더는 보호할 인적자산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이 돈을 못 벌면서 오래 살 때에 대비해 종신연금을 준비해야 한다. 퇴직 전 생명보험, 퇴직 후 종신연금으로 인적자산의 현금 흐름을 보호하는 것이다.

A씨는 자신의 인적자산을 보호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금융자산을 축적해서 근로소득이 없는 노후에 대비해야 한다. 이 경우, 채권(혹은 예금), 주식 중에서 선택한다면 어떤 금융자산을 보유하는 게 좋을까? A씨 스스로가 채권인데 또 채권이나 예금을 금융자산으로 보유해야 할까? 아니다. 안전한 자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은 좀 위험하지만 기대수익이 높은 자산을 보유하는 게 좋다. ‘가장 좋은 친구는 나와 다른 친구’라는 말이 있듯이 나에게 가장 좋은 자산은 ‘무조건 예금’이 아니라 ‘내가 보유한 자산과 다른 자산’이다. 채권 덩어리인 A씨가 금융자산을 보유한다면 주식을 사는 게 정답이다.

은퇴와투자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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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결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A씨의 인적자산은 나이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30대에는 앞으로 근로소득을 오래 벌 수 있기 때문에 인적자산인 채권 자산이 아주 많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50대는 소득을 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채권 자산이 별로 없다. 나이가 들수록 ‘나’라는 채권 자산은 줄어드는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금융자산은 젊을 때는 주식의 비중을 충분히 늘리지만 나이가 들수록 주식의 비중을 줄이고 안전 자산을 늘려야 한다. 우리가 퇴직연금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주식의 비중이 자동으로 줄어들고 안전자산의 비중이 높아지게 설계된 TDF(Target Date Fund)에 가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씨의 사례에서 보듯이 생애 자산관리의 중심에는 인적자산이 있다. 인적자산을 보호하여 생애 현금흐름을 유지하고, 인적자산에 대응하여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나이 들어 인적자산이 줄어들면 위험자산의 비중을 달리하는 과정이다. 여기에 적합한 금융상품을 선택하면 생애 자산관리가 완성된다.

인적자산을 중심으로 자산관리를 바라보면 응용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장수에 대비해서 노후에 예금을 갖는 것보다 헬스케어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오래 살면 이들 회사의 주가가 오른다. 나는 오래 살게 되지만 주가도 올라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 만일 수명이 길지 않으면 해당 기업 주가가 별로 오르지 않지만 내 수명도 길지 않아 돈이 더 필요하지 않아 괜찮다. 트럭 운전사가 자율주행차 주식을 사는 것도 인적자산에 근거한 자산배분이다.

수명이 길어지는 반면 공적연금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국가와 기업이 담당하던 노후 준비의 역할이 개인에게로 넘어오고 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은 노후를 어렵게 만드는 금기 중 하나다. 생애 자산관리를 섬세하게 알 필요는 없지만 뼈대는 꼭 알고 있어야 한다. 그 뼈대는 바로 ‘나’를 하나의 자산으로 보고 이를 중심으로 생애 자산 배분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생애 자산관리를 실행하기 전에 다음 물음을 꼭 머리에 떠올려보자. ‘나는 주식인가 채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