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범의 문화탐색

‘불란서 주택’에서 보낸 한 해

중앙일보

입력 2021.08.12 00:22

지면보기

종합 27면

최범 디자인 평론가

최범 디자인 평론가

나는 불란서 주택에 산다. 불란서 주택은 불란서 사람이 지은 주택도, 불란서 사람이 사는 주택도, 불란서식으로 지은 주택도 아니다. 불란서 주택은 불란서(프랑스)와 아무 상관이 없다. 나이가 좀 든 분들은 알겠지만 불란서 주택은 1970년대 지어진 한국형 양옥집의 별칭이다. 그러니까 불란서 주택이란 건축용어로 박공(牔栱)이라고 부르는 삼각지붕을 가진 2층 양옥집을 가리킨다. 이런 집을 불란서 주택이라고 이름 붙인 건 당시 건설업자들의 브랜드 전략이었다. 물론 요즘은 불란서 주택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단독주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지금도 아파트나 빌라에 ‘○○빌’이나 ‘○○○포레’ 같은 불어식 이름을 붙이는 걸 보면 불란서의 브랜드 가치는 여전히 높은 것 같다.

프랑스와 무관한 2층 양옥
유럽 문화의 브랜드 가치
한국에서 진화한 아파트
장년 세대의 추억만 남아

나는 불란서 주택 임차인이다. 내가 사는 집은 1973년에 지어졌으니까 50년이 다 된 집이다. 낡은 것도 낡은 것이지만 최근의 아파트나 신축 주택에 비하면 단열 등 주택 성능이 많이 떨어진다. 지난해 늦가을 이사 왔을 때 옆집이 비닐로 외벽을 칭칭 두른 것을 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집은 유난히 지붕이 뾰족하고 외벽도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동네에서 가장 예쁜 편에 속한다.

1970년대에 지어진 서울 강북의 불란서 주택. 서구풍의 삼각지붕에 베란다를 가진 2층 양옥집이다. 재개발로 인해 하나씩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사진 최범]

1970년대에 지어진 서울 강북의 불란서 주택. 서구풍의 삼각지붕에 베란다를 가진 2층 양옥집이다. 재개발로 인해 하나씩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사진 최범]

어릴 적 살던 동네 빵집에는 불빵·독빵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빵을 팔았는데, 사실 불빵은 불란서 빵, 독빵은 독일 빵을 말하는 것이었다. 작가 고종석의 말처럼 프랑스를 어떻게 부르는가는 세대에 따라 다르다. “아내와 내가 대개는 불란서라고 부르고 이따금은 프랑스라고 부르는 나라를, 아이들은 꼭 프랑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내 어머니는 그 나라를 꼭 불란서라고 부른다.”(고종석 『감염된 언어』)

불란서라는 말을 좀 삐딱하게 사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열풍과 함께 주목 받았던 지식인인 사회학자 김성기는 당시 펴낸 문화평론집에서 ‘불란서제 담론의 그늘’이라는 표현을 써서, 미국을 우회해서 들어온 일련의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사상이, 사회주의를 소실점으로 하는 진보의 기획에 찬물을 끼얹는 데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불란서라는 말은 불어와 불문학 같은 경우에 붙이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사용하지 않는 낡은 말이 되었다.

20세기 건축의 거장인 르코르뷔지에는 192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부아쟁 계획(Plan Voisin)’을 발표한다. 이것은 파리 중심가를 밀어버리고 60층짜리 건물 18동으로 이루어진 인구 300만의 신도시를 세우려는 구상이었다. 다행히(?) 부아쟁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요소들이 다 갖추어진 도시는 현재의 파리가 아닌 대한민국의 신도시일 것이다”(양동신 『아파트가 어때서』)라니, 이럴 수가.

르코르뷔지에가 1952년 마르세유에 지은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인 위니테 다비타시옹. [중앙포토]

르코르뷔지에가 1952년 마르세유에 지은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인 위니테 다비타시옹. [중앙포토]

르코르뷔지에는 1952년 마르세유에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이라는 집합주택을 짓기도 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인의 대표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의 원형이다. 물론 한국의 아파트는 한국적 생활방식에 맞게 진화해왔기 때문에 프랑스의 오리지널과 많이 다르다. 외국의 아파트들이 단독형이라면 한국의 아파트가 주로 단지형이라거나 내부 공간의 구조 등을 보더라도, 이제 한국의 아파트는 외국의 아파트와 전혀 다른 독자적인 주택 유형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나 역시 결혼 후 20년 넘게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 계약 만기가 되면서 더 이상 상승한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싼 곳을 찾다보니, 서울 강북의 오래된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사 직후에 거의 30년에 육박하는 주택청약 통장이 뒤늦게 진가(?)를 발휘했다. 정반대편인 서울 남쪽 신도시의 아파트 공공분양에 당첨이 된 것이다. 그래서 다음 달 다시 이사를 가야 한다. 이리하여 나의 불란서 주택 살이는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끝나게 되었다. 이 동네는 곧 재개발 된다. 불란서 주택들은 사라지고 불란서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추억만이 몇 조각 남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불란서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가는 중이다. 그런데 그곳에 정말 르코르뷔지에가 약속한 신도시가 있는 것일까.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