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버스 대절해와 밭일로 일당 벌어가는 어르신들

중앙일보

입력 2021.08.11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 (202) 

밭일을 끝낸 일용직 어르신들은 버스를 타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 잠을 보충하며 집을 향해 갔다. 울컥하는 마음을 미소에 담아 늘 건강하시길 기원하며 두 손을 크게 흔들었다. [사진 pxhere]

밭일을 끝낸 일용직 어르신들은 버스를 타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 잠을 보충하며 집을 향해 갔다. 울컥하는 마음을 미소에 담아 늘 건강하시길 기원하며 두 손을 크게 흔들었다. [사진 pxhere]

흐릿한 새벽안개 속, 버스 한 대가 마을 입구에 정차한다. 창 넓은 모자와 마스크로 중무장한 연세 많은 어르신 수십 명이 차에서 내린다. 몇 명씩 조를 짜서 다시 몇 대의 트럭에 옮겨 타고 어디론가 다시 달린다.
“어디서 오셨나요?”

“경주에서 새벽 4시에 출발했지.”

새벽버스를 타는 도시의 일용 인부들처럼 그들도 그렇게 새벽버스를 타고 두 시간을 달렸다.

물 한 병, 소금 두알, 빵 한 개를 받아 허리춤에 매달린 가방에 넣고 고추밭 고랑에 일렬로 서서 마라톤 출전 선수같이 출발한다. 그들은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이고 그보다 더 빨갛게 달아오른 붉은 고추를 딴다. 가만히 있어도 비 오듯 흐르는 땀이 아랑곳없다. 서로의 목소리가 고추 고랑을 사이에 두고 이쪽저쪽 넘나들며 소곤소곤 일상의 애환과 소식을 주고받는다. 세월의 아픔과 눈물을 이겨낸 허한 웃음 곁들이며 고추 따는 손도 따라 바쁘다. 기운이 달릴 즈음이면 작업 대장이 건네주는 컵라면을 받는다. 덜 익어 라면 죽 같지만 맛은 꿀맛이다. 고랑에 혼자 앉아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며 후루룩 마시면 땀이 비 오듯 한다. 다시 기운이 솟는다.

“힘들지 않나요?”

“일하는 보람으로 사는 거지. 안 힘든 사람 있나? 재물이 많아도, 없어도, 몸이든 마음이든 살아있는 사람은 다 아프고 힘들어.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일하는 동안은 돈 버는 재미에 안 힘들어. 끝나면 온 데가 다 아파. 하하.”

어르신들은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이고 그보다 더 빨갛게 달아오른 붉은 고추를 딴다. 가만히 있어도 비 오듯 흐르는 땀이 아랑곳없다. [사진 pxhere]

어르신들은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이고 그보다 더 빨갛게 달아오른 붉은 고추를 딴다. 가만히 있어도 비 오듯 흐르는 땀이 아랑곳없다. [사진 pxhere]

평생을 농사만 지으며 살아오다 늘그막에 여유를 부리자니 코로나인지 뭔지 훼방을 놓는다. 동네회관도 못 가니 외롭고 고독한 나날이다. 고추가 익기만을 기다렸다. 앞으로 두 달간 건강만 잘 유지하면 먼 길을 유랑하며 돈도 벌고 친구도 만난다. 버스를 타고 오가는 시간은 마음이나마 장거리 여행 기분을 낸다. 평생 밭일을 해 몸이 힘들긴 하지만 그보단 기분이 먼저다. 자식들이 보내주는 용돈과 노령연금, 쥐꼬리만 한 국민연금을 보태면 한 달 생활비로 쏠쏠하니 죽지 못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잠을 푹 못 자서 피곤하지 않나요?”

“나이가 들면 잠이 안 와. 밤새 뜬눈으로 밤을 새워보았는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 일 나와서 몸을 피곤하게 하고 집에 도착하면 밤 9시가 되지. 그냥 꼬꾸라져서 자. 그리고 일어나면 새벽 두세 시야. 벽보고 멍하니 앉아 애먼 근심걱정을 불러올 일이 있나? 평생을 해오던 일 하나, 할 줄 안다고 불러주니 고마운 거지. 이렇게 버스에 타면 친구들을 만나잖아. 친구들이 옆에 있으면 편안해 그런지 또 졸음이 와. 집에서, 버스에서 자는 시간 합치면 잠은 푹 자. 호호.”

“돈 벌어서 뭐하시게요?”

“손주 용돈 주는 재미지. 작년에 울 큰손자 대학 들어갔거든. 첫 등록금을 내가 줬어.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
옆 어르신도 거든다.
“난 손녀딸 시집간다 해서 김치 냉장고 큰 거 하나 사줬어. 하하.”

“손주들이 이렇게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고생해서 번 돈이란 걸 알기는 할까요?”

“아이고 이 사람아, 내 건사도 바쁜데 남의 생각까지 내가 왜 하노? 자식들이 오순도순 잘살기만 하면 고마운 거지. 내가 걸을 수 있고, 돈 벌 힘 있고, 그 돈 나눠 주고 싶은 가족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고, 그게 다야.”

하루 일이 끝나고 다시 참으로 컵라면을 먹는다. 맛이 새롭다. 주머니 속 일당으로 받은 지폐를 꺼내 손가락 감촉을 느끼며 다시 세어본다. 버스가 다시 사람들을 태우고 시동을 건다. 어르신들은 서로의 어깨에 기대 잠을 보충하며 긴 시간을 집을 향해 갈 것이다. 울컥하는 마음을 미소에 담아 늘 건강하시길 기원하며 두 손을 크게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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