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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처럼 강해지고 싶어요"···올림픽 그후 '운동 여풍' 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전부터 배구를 배워볼까 생각하다 올림픽 보고 결정하게 됐어요. 너무 멋져서….”

서울시 금천구의 한 배구 동호회 코치 이영화(37)씨는 최근 이런 가입 문의를 잇달아 받았다고 한다. 2020도쿄올림픽 기간에 여성들의 문의가 평소보다 8배 정도 늘었다. 2007년에 만들어진 이 동호회에는 현재 여성은 15명, 남성 25~3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이씨는 “특히 여자 배구 경기가 있을 때 가입 문의가 많았다”며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거리 두기 4단계로 잠시 중단했지만, 풀리면 바로 재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2020도쿄올림픽 기간동안 한 배구 동호회에 여성들의 문의가 급증했다. 한 문의자는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여자 배구 경기를 보면서 연락을 하기도 했다. 이영화씨 제공

2020도쿄올림픽 기간동안 한 배구 동호회에 여성들의 문의가 급증했다. 한 문의자는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여자 배구 경기를 보면서 연락을 하기도 했다. 이영화씨 제공

“건강하고 강해지고 싶다”…‘운동 女풍’

김연경이 8일 도쿄 고토시 아리아케아리나에서 열린 2020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공을 받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V

김연경이 8일 도쿄 고토시 아리아케아리나에서 열린 2020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공을 받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V

도쿄올림픽이 지난 8일 막을 내린 뒤에도 ‘운동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들 사이에서 배구, 클라이밍 등을 직접 배워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다. 김연경(33ㆍ중국 상하이) 선수의 여자배구팀, 양궁 3관왕 안산(20ㆍ광주여대) 선수, ‘거미 소녀’ 클라이밍 서채현(18ㆍ신정고) 선수 등을 활약을 본 여성들이 체육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 SNS에는 “어릴 때 무섭다고 운동을 안 했던 내가 올림픽을 보며, 운동하는 여성들을 보며 운동을 하고 있다”, “매일 마른 여자 연예인만 보다가 튼튼하고 건강한 여자 운동선수들을 계속 보다 보니 나도 건강하고 강해지고 싶다” 등의 글이 이어졌다. “여자 배구 동호회가 별로 없는데 우리끼리 만들자”, “여자 클라이밍 너무 멋있다. 4단계 풀리면 클라이밍장 같이 갈 사람 구한다” 등 함께 운동할 여성들을 모집하는 글도 많았다. 여성들의 운동 열풍, ‘운동 여풍’이라 부를 만하다.

“가냘픈 모델이 축구장 누비는 모습에 매력”

'골 때리는 그녀들'. SBS

'골 때리는 그녀들'. SBS

올림픽 이전에도 조짐이 있었다.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 ‘노는 언니’와 여성 연예인들이 축구를 배우는 ‘골 때리는 그녀들’ 등의 TV 예능 프로그램에 적지 않은 호응이 일었다.

지난달 친구들과 함께 풋살 클럽에 등록했다는 직장인 강모(27)씨는 “‘골 때리는 그녀들’에 출연하는 모델 이현이씨의 축구 실력이 급성장하는 걸 보면서 나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꼴찌팀이었던 모델 팀이 선수들의 노력과 팀워크로 승리를 일구는 모습을 보며 같은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었다”고 했다. 강씨는 “가냘픈 이미지만 강조돼 온 모델이 축구장을 누비는 모습을 보면서 더 매력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올림픽이 다양한 여성의 모습 보여줘”

도쿄올림픽 미디어데이가 지난 6월 28일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렸다. 이날 양궁종목 훈련공개가 진행되고 있다. 활시위를 당기는 안산 선수. 올림픽 사진공동취재단

도쿄올림픽 미디어데이가 지난 6월 28일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렸다. 이날 양궁종목 훈련공개가 진행되고 있다. 활시위를 당기는 안산 선수. 올림픽 사진공동취재단

해외에서도 올림픽이 여심을 움직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축구 코치 출신인 에이미 올슨 쿠퍼 미국 하워드대부체육부장은 지난 5일 언론 인터뷰에서 “올림픽이 많은 청중에게 노출되면서 여성이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될 수 있도록 동등한 기회와 접근이 (여성들에게) 제공돼야 한다”며 “어린 여성들이 자신과 닮은 사람들이 운동하는 것을 자주 봐야 자신도 똑같이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안산 선수의 ‘숏컷’(짧은 머리)에 대한 공격에 대해 SNS상에서 ‘#여성_숏컷_캠페인’을 시작한 신체 심리학자 한지영씨는 “도쿄올림픽은 많은 여성에게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했다”고 평가했다. 한씨는 “여성 선수들이 땀 흘리며 승리를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들이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가능성, 힘의 한계에 대한 확장성, 잠재력에 대한 강력한 심상을 제공했다”고 했다. 이어 “마르고 완벽하게 가꾸어진 여성들을 따라 하던 청소년에게 전형적이지 않은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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