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포퓰리즘과 미래의 싸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베네수엘라는 지독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으로 국가 붕괴 상태다. 석유에 의존해 무상정책을 남발했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차비스모(차베스주의)’가 근본 원인이다. 차베스의 계승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저유가에 대처하지 못해 경제가 파탄 나고 민심이 이반되자 독재를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2017년 8월 17일 카라카스에서 두 여성이 빵을 들고 차베스 전 대통령 초상이 그려진 벽을 따라 걷는 모습. [로이터]

베네수엘라는 지독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으로 국가 붕괴 상태다. 석유에 의존해 무상정책을 남발했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차비스모(차베스주의)’가 근본 원인이다. 차베스의 계승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저유가에 대처하지 못해 경제가 파탄 나고 민심이 이반되자 독재를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2017년 8월 17일 카라카스에서 두 여성이 빵을 들고 차베스 전 대통령 초상이 그려진 벽을 따라 걷는 모습. [로이터]

대선 후보 풍년이다. 여당은 8명이 예비경선을 거쳤어도 6명에 달한다. 제1 야당은 만원 버스처럼 꽉 찼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 이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합류하면서 국민의힘은 열 명을 훌쩍 넘었다. 어느 때보다 많은 후보가 나왔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양상으로 봐선 이번 대선도 포퓰리즘 망령과 과거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여권 내부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기도민에게는 정부에서 제외한 소득 상위 12%에게도 굳이 재난지원금을 뿌리겠다면서 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이낙연·정세균·박용진·김두관 후보가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지만 그대로 강행할 태세다. 경기도의회도 내분에 빠졌다.

흥행·과거에 매몰된 선두 후보들 #민생 살리기보다 편 가르기 주력 #미래 비전 찾는 후보들 주목해야

이 지사를 제외한 여당 후보들은 왜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난색을 보일까. 이들이 보기에도 현금 뿌리기는 지속 가능하지도, 효과도 크지 않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일 터다. 현 정권은 최근 4년간 국가채무를 400조원이나 불리며 나라 재정에 구멍을 냈다. 하지만 이 지사는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전 국민에게 매달 8만원의 기본소득을 주기 위해 52조원의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공약까지 내걸었다. 의석수를 앞세워 날치기해서라도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줘야 한다고 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 후보들도 이건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그래도 이런 정책을 들고나오는 이유는 대중으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망국적 포퓰리즘의 위력이다.

또 하나 두드러진 현상은 과거와의 싸움이다. 야당의 선두로 꼽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반(反)문재인 구도를 주도하고 있다. 그럴 만한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현 정권이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국민을 갈라치고 국가 경제의 핵심 제도를 놓고 정책실험을 강행하면서 국민에게 막대한 고통을 안기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부동산·비정규직·근로시간·원자력 정책은 국민에게 실업자 양산, 아파트값 폭등, 108주 연속 전세대란, 소득 격차 확대를 초래하는 경제적 대참사를 빚었다. 윤 전 총장은 이런 실정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계속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결국 진보 진영의 포퓰리즘과 보수 진영의 현 정권 실정(失政) 비판이 이번 대선의 승부처가 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현금 살포를 앞세운 포퓰리즘은 지난해 총선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무엇보다 편 가르기에 효과 만점이다. 규모가 큰 기업과 부자를 죄악시하면서 선량한 국민의 가슴에 진영 논리를 이식하면서 탄탄한 지지층을 일으키기 좋은 수단이 된다. 이에 맞선 실정 비판 역시 결과적으로는 편 가르기에 이용되는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 이렇게 선거가 흘러간다면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없다. 그렇게 되면 국민은 네 탓 공방을 하는 또 한번의 암울한 5년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군소 후보의 외침이 주목된다. 이들은 돈 퍼주기 같은 감언이설을 피하고, 과거와의 싸움도 자제하고 있다. 그저 어떻게 하면 민생을 두텁게 하고 경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지 얘기한다.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국민의 주목을 잘 받지 못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역설해 온 이광재 의원은 정세균 전 총리를 밀면서 아예 사퇴했다. 창당 의지까지 밝힌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역시 미래를 얘기하고 있다. 윤희숙·유승민 의원과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도 과거보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주로 말한다. ‘IT 코리아’를 일으킨 김대중 정부 출신답게 장성민 전 의원 역시 4차 산업혁명부터 경제 살리기까지 미래를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이들이 더 주목을 받으면 좋겠다. 나라를 그리스·베네수엘라로 가게 하는 망국적 포퓰리즘과 지긋지긋한 과거와의 싸움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치 세력이 작다. 대선 후보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래도 이번 대선은 우리의 미래를 열어가는 귀중한 전환점이 돼야 한다. 미래를 말하는 후보들이 더욱 분발해 포퓰리즘과 분열의 싹을 잘라주기 바란다.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