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마음 읽기

후한 인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낮에는 연일 푹푹 찌는 폭염이 이어지지만 깊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는 제법 서늘한 느낌이 없지 않다. 입추와 말복이 지났으니 이 더위도 한풀 꺾일 것이다. 가끔씩 느닷없는 소낙비가 내려 더위를 잠시 식혀준다. 그러면 내 몸도 마음도 마치 찬물로 등목한 듯이 시원해진다. 하늘이 잠시 캄캄해지면 후드득, 후드득 소리를 내며 소나기는 동백나무에, 먹구슬나무에, 귤나무에, 팽나무에, 풀잎에, 내 집 흙 마당에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서둘러 널어둔 빨래를 거둬들이고 벗어놓은 신발을 가지런하게 해 툇마루 아래나 처마 안쪽으로 당겨서 놓아둔다.

처지 헤아려 돕는 마음이 곧 인심 #너그러운 인심 공동체 시골살이 #인심 얻을 일도 함께 생각하게 돼

그제 아침에도 소나기가 내렸다. 나는 비옷을 입고 밭으로 나갔다. 옆 밭에는 구순의 할머니가 나보다 먼저 나와 계셨다. 호박잎과 콩잎을 따고 계셨다. 인사를 건네자 할머니는 손에 쥔 호박잎과 콩잎을 나눠 내게 건네셨다.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에 이사를 와서 살면서, 말하자면 나는 시골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내 고향인 경북 김천 산골에서 살았던 생활을 여기서 다시 하게 된 셈이다. 나는 요즘 장전에 사는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하곤 한다. 검게 탄 얼굴에 마른 몸의 외관이니 밭일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는다.

아침저녁으로는 풀벌레 소리가 집 둘레에 가득하다. 특히 방울벌레 소리는 잘 작곡된 하나의 음악처럼 들린다. 그 소리는 여름의 싱그러운 보자기를 보다 더 넓게 펼쳐놓는 것만 같다. 나는 방울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지내다 졸시 ‘방울벌레가 우는 저녁에’를 지었다. ‘풀꽃과 바람과 여름의 둥근 잎에 오롱조롱 매달린 빗방울과 갠 하늘/ 미농지 같은 저녁에/ 방울벌레 우는 소리/ (아, 그게 다 뭐라고!)/ 세상에서 가장 어수룩해 보이는 그 사람은/ 방울벌레 울음을 공중에서 몰래 떠/ 천으로 짜 지은 주머니에 넣어서 가네’라고 썼다. ‘세상에서 가장 어수룩해 보이는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소나기 그친 후에 다시 우는 방울벌레 소리의 청아한 울음소리를 듣는 기쁨이 적지 않다.

비록 여름날의 풀들을 다 감당할 수는 없지만, 시골의 후한 인심만은 받으며 살고 있다. 구순의 할머니는 얼마 전 밭에서 일하고 있는 내게 수박 한 조각을 갖다 주시겠다며 집으로 들어가시더니 평소에 밀고 다니시던 유모차에 수박 세 덩어리를 실어 밀고 오셔서 내게 주셨다. 뒷집에 사는 형님은 귤나무에 농약을 치다 남은 농약을 내 귤나무에도 뿌려주셨다. 가끔은 이웃들과 탁주를 한 잔씩 나눠 마시기도 한다. 제때에 심어야 할 작물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 땅의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시골살이가 서툰 내게 틈이 날 때마다 가르쳐준다. 심지어 꿩이 밭에 낳아놓은 작고 뽀얀 꿩알 두 개를 내 손에 쥐여주신 분도 계셨다.

나는 이 후한 인심을 받으면서 내 어릴 적 큰어머니 생각이 났다. 큰어머니는 이따금씩 우리 집에 들르셔서 밥 짓는 솥뚜껑을 열어 그 가운데에 먹을 것을 놓아두고 가시곤 했다. 어머니께서는 저물녘에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을 지으려고 솥뚜껑을 열어 보고선 뭉클해져서 큰어머니가 갖다 놓고 가신 것들을 한동안 바라보시기만 했다.

시골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뭘 사러 가려면 한참 나가야 하고, 버스를 타려면 버스 다니는 게 뜸하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춰나가야 한다. 밤이 시작되면 마을 사람들의 활동이 뚝 끊어지고 날이 밝아오면 마을 사람들의 활동이 곧바로 바빠진다. 게으름을 즐길 시간이 많지 않다. 이웃해 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선의의 말을 하려고 애쓴다.

오규원 시인이 쓴 ‘사람과 집’이라는 시가 있다. 이 시는 마을 내 각각의 집들을 호명한다. ‘김종택의 집을 지나 이순식의 집과 정진수의 집을 지나 박일의 집 담을 지나 이말청의 집 담장과 심호대의 집 담장을 지나 박무남의 집 담벽과 송수걸의 집 담벽과 이한의 집 담벽을 지나 강수철의 집 벽과 천길순의 집 벽을 지나(후략).’ 시인은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산다는 것을 표현한 것일 테다.

이처럼 나도 시골에서 어울려 살고 있다. 도시에서 생활하다 다시 시골로 오니 사람들이 훨씬 가까워졌다. 집집의 살림 사는 소리가 돌담을 넘어온다. 아울러 인심도 넘어온다. 물론 나도 인심을 살 일도 절로 생각하게 된다. 구순의 할머니는 내일 아침에도 나보다 일찍 일어나셔서 무화과나무 아래서 풀을 뽑거나 호박잎과 콩잎을 따거나 흰 꽃이 지고 있는 깨밭에 나와 계실 것이다. 그러면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