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산으로 가는 LH 개혁

중앙일보

입력 2021.08.1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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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주정완 경제에디터

주정완 경제에디터

어느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데 심각한 부정행위가 발생했다. 어쩌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문제를 미리 보고 시험을 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전부터 비슷한 수법을 써왔을 것이란 의심도 받았다. 부정행위로 피해를 본 다른 반 학생들은 일제히 분통을 터트렸다. 같은 반 학생이 모두 부정행위에 가담한 것은 아니었지만 학교 전체에서 해당 반은 공분의 대상이 됐다.

“거의 해체 수준” 총리 발언 이후
조직 쪼개기 결론 내놓고 공청회
되레 낙하산 자리만 늘어날 수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을 학교에 비유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지난 3월 온통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이 사건도 5개월가량 시간이 지나면서 잠잠해지는 분위기다. 그동안 정부 합동조사단은 일부 투기 혐의자들을 적발해 수사기관에 넘겼다. 하지만 정말 어렵고 중요한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자산 185조원, 부채 130조원의 거대 공기업인 LH를 어떻게 개혁할 것이냐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LH가 일정 부분 노력하기는 했다. LH의 모든 직원이 재산을 등록하도록 하고, 실수요 목적이 아닌 땅은 원칙적으로 취득할 수 없게 했다. 부정행위를 감시하는 준법감시관을 뽑는 절차도 진행 중이다. 이런 정도로는 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되찾을 만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그래서 확실히 달라졌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LH 내부의 자정 노력에만 맡겨두지 말고 민간의 참여와 감시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검토 중인 LH 개편안은 문제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느낌이다. 국토부는 지난달 28일 온라인 공청회를 열고 조직 개편안을 공개했다. LH의 기능과 조직을 어떻게 쪼개느냐를 두고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이 중 세 번째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국토부는 밝혔다. 현재 한 회사인 LH를 모회사와 자회사의 둘로 쪼개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모회사가 자회사를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설명했다.

서소문 포럼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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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공청회를 보면서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LH 사태의 본질은 일부 직원의 땅 투기라는 부정행위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만일 학교였다면 시험지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시험 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을 것이다. 부정행위가 있었던 반을 둘로 쪼갠다고 앞으로 부정행위가 사라질 것이란 보장은 전혀 없다. 하지만 LH 사태에선 엉뚱하게도 문제를 일으킨 조직을 둘로 쪼개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회사와 자회사라는 방식도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이다. 이런 모회사 직원이 자회사 직원을 관리·감독하는 게 국민의 눈높이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이뤄질지 모르겠다. 오히려 공공기관 고위직 자리만 불필요하게 늘리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조직이 둘이 되면 자연스럽게 사장 자리도 둘이 된다. 감사나 임원 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 정부나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가 많아질 여지가 생긴다.

LH 개혁에 정치 논리가 작용하는 게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김부겸 총리는 지난 5월 기자 간담회에서 “(LH는) 거의 해체 수준으로 결론이 날 것”이라고 언급했다.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 단단히 혼쭐이 나야 한다는 뉘앙스였다. 실제로 지난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LH 사태는 여당에 초대형 악재로 작용했다. 국토부는 전문가 의견 수렴에 앞서 어떤 식으로든 LH를 쪼개야 한다는 결론을 미리 정해 놨다. “해체는 아니다”라는 국토부의 설명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이번 국토부 공청회에선 박근혜 정부 시절 해양경찰청 해체가 떠오른다는 지적도 나왔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대통령 담화에선 느닷없이 해경 해체를 선언했다. 당시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무위원들과 상의 없는 결정이란 문제를 제기하자 박 대통령은 굉장히 화를 냈다고 한다. 이후 해경은 국민안전처 소속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쪼그라들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해경은 3년 만에 독립 외청으로 부활했다. 하지만 3년간 발생한 혼란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대한건축학회 등 여섯 개 전문단체는 국토부 공청회와 별도로 최근 온라인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강부성 건축학회장은 “LH가 일을 제대로 못 하게 되면 결국 국민만 힘들어진다. ‘교각살우’(소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려면 각 분야 전문가가 참여하는 혁신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LH 개편에 정치 논리가 개입하면 개악이 될 수 있다는 민간 전문가들의 우려를 가볍게 듣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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