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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철수하라" 김여정 첫 요구…비핵화 협상 난제 또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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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한ㆍ미 연합훈련의 사전훈련이 시작되는 10일 주한미군 철수를 공개 요구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이날 담화를 내고 “조선 반도에 평화가 깃들자면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무력과전쟁장비들부터 철거하여야 한다”며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김 부부장은 10일 담화를 내고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김 부부장은 10일 담화를 내고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1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을 때와 달리 이날 오후 조선중앙TV를 통해 김 부부장의 담화를 조선중앙TV에 내보내며 주민들에게 알렸다. 당시엔 조선중앙통신을 통해서만 담화를 공개했다.

김정은 '입' 김여정 첫 공개 거론 #"미군이 화근, 전쟁장비 철거해야" #연합훈련 중단 뛰어넘는 요구 #향후 협상서 공식 거론 가능성

한ㆍ미 군 당국은 이날 하반기 연합훈련의 사전훈련 격인 위기관리참모훈련(CMST)에 돌입했다. 김 부부장의 ‘미군이 화근’ 담화는 이같은 연합훈련 일정에 맞춰 대남 위협을 하면서 나왔다. 북한이 그간 각종 선전 매체나 외무성 군축 및 평화연구소 보고서(지난해 6월 25일) 등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한 적은 있지만, 김여정 부부장이 공개적으로 요구한 건 처음이다.

특히 김 부부장은 이날 “위임에 따라 발표한다”고 밝혀 담화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시임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27일 남북 통신선 복구에 나선 뒤 문재인 정부를 향해 내놓을 청구서로 한ㆍ미 연합훈련 중단을 넘어서 주한미군 철수 요구까지 준비했음을 보여준다. 향후 북한이 한·미를 향해 대북적대시 정책 포기의 내용으로 대북 제재 해제 이외에도 주한미군 철수를 전면에 내걸 가능성을 열어놨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낸 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그간 비공개로 진행된 협상에서 북·미 관계 개선, 대북제재 해제, 미군 철수 등을 주장했다”며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공개적으로 내놓은 건 정기적으로 열리는 연합훈련을 원천 봉쇄하려는 시도이자, 남북 또는 북ㆍ미 협상이 열릴 경우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겠다는 예고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미 연합훈련의 사전 연습 성격인 위기관리참모훈련이 시작된 10일 오후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헬기들이 계류돼 있다.  [뉴스1]

한미 연합훈련의 사전 연습 성격인 위기관리참모훈련이 시작된 10일 오후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헬기들이 계류돼 있다. [뉴스1]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는 한ㆍ미 군사동맹 해체를 뜻하는 만큼 향후 비핵화 협상에 난제가 더 추가됐다. 북한이 6ㆍ25전쟁을 일으킨 후 한반도 남쪽에 만들어진 한ㆍ미 군사동맹의 핵심은 주한미군이다. 미군은 한국 방어의 인계철선으로 존재하면서 북한의 두 번째 6ㆍ25전쟁 도발 시도를 원천 차단한다. 두 번째 남침은 ‘미국 공격’을 뜻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주한미군으로 동북아 지역 전체에서 중국ㆍ러시아의 남진을 견제하며 세력 대결의 균형자 역할을 했다. 따라서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요구는 이같은 동북아 질서를 허물자는 것으로, 최소한 북한의 핵개발 포기와 대남 적화통일 포기를 전제로 해야 하는 요구 사항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침략무력 철거’를 공개 요구한 만큼 향후 문재인 정부의 대응 여하에 따라선 한·미동맹의 균열 논란으로 번질 수도 있다. 또 내년 대선을 앞두고 남남 갈등의 불쏘시개 중 하나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여정 부부장은 이날 담화에서 “미국과 남조선군은 끝끝내 정세 불안정을 더욱 촉진시키는 합동군사연습을 개시했다”며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자멸적인 행동”이라며 “거듭되는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강행하는 미국과 남조선 측의 위험한 전쟁 연습은 반드시 스스로를 더욱 엄중한 안보 위협에 직면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을 향해선 “현 미 행정부가 떠들어대는 ‘외교적 관여’와 ‘전제 조건 없는 대화’란 저들의 침략적 본심을 가리기 위한 위선에 불과하다”며 “그 어떤 군사적 행동에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국가방위력과 강력한 선제타격 능력을 보다 강화해나가는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부부장은 이날 “머저리”, “저능한” 등 이전엔 썼던 저속한 표현은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표현 수위는 높지 않았음에도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요구 수위는 더 높인 것이다.

동시에 “반드시 대가”라거나 “선제타격능력 강화”를 거론해 북한이 그간 자위적 국방력 강화로 주장해 왔던 군사적 도발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3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한ㆍ미 연합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하면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하는 등의 도발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2019년 외무성 담화 등 연합훈련에 반발하는 성명이나 담화를 낸 뒤 미사일 또는 장사정포를 발사한 적이 있다.

단 이번엔 북한이 통신선 복원을 계기로 해 대선을 앞둔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는 대남 ‘채찍과 당근’ 카드를 혼용할 가능성이 있어 북한이 대남 위협 수위를 어느 정도로 할 지가 평양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실마리다.

한편, 북한은 이날 오후부터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와 군통신선의 마감통화에 응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화를 차단했다. 정부 당국자는 "오후 5시 진행하기로 한 마감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남북관계 개선과 신뢰회복을 언급하며 통신선을 통신선을 연결한 지 14일 만이다. 김 부부장은 지난 1일 담화에서 "통신선 연결은 물리적으로 다시 연결시켜 놓은 것뿐이라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나(김여정)의 생각"이라며 "희망이냐, 절망이냐 선택은 우리(북한)가 하지 않는다"고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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