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취업심사' 받아야 하는 반쪽 복귀…집에서 일하라?

중앙일보

입력 2021.08.10 15:15

업데이트 2021.08.10 16:47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8년 2월 5일 '국정농단' 항소심 선고 뒤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8년 2월 5일 '국정농단' 항소심 선고 뒤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의 가석방 결정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출소 예정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당장 경영 일선에 복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취업 제한’ 대상이어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국가와 글로벌 경제 상황 고려 차원에서 결정된 것”(박범계 법무장관)이라는 가석방 메시지에도, 한 쪽 발이 묶이는 처지라 취업 제한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법무부, 올 2월 이 부회장에 취업 제한 통보  

10일 재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 부회장의 ‘완전한’ 경영 복귀에는 상당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반도체 공장 투자나 스마트폰 사업 점검 같은 현안이 쌓여 있지만, 지난 1월 재수감 이전처럼 활발한 경영 활동에 나서긴 어렵다.

법무부는 이 부회장에게 올 2월 취업 제한 5년을 통보한 상태다. 특가법에 따라 5억원 이상 횡령‧배임의 범죄를 저지르면 형 집행 종료‧정지 후 5년간 관련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는 규정에서 근거해서다. 취업 제한을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 등 처벌이 내려진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등기임원이 될 수 없고, 해외 출장에도 제약이 따른다. ‘부회장’ 직함을 유지하는 것도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와 관련해 9일 성명을 내고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상근부회장(미등기임원)에서 비상근 부회장(미등기임원)으로 근무 형태만 변경했을 뿐 여전히 삼성전자의 임원으로 있으면서 법무부의 취업 제한 통보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취업 제한 관리 강화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취업 제한 해제 신청을 통해 법무부 특정경제사범관리위원회(특경사위) 심사를 받고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된다.

특가법상 취업 제한 제도는 1983년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동안은 유명무실했다. 관리·감독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런 비판이 일자 문재인 정부는 는 2019년 말 특경사위를 출범시켰다. 취업 제한을 포함해 특정경제사범 관리·감독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다. 법무부 차관이 위원장을 맡는 특경사위는 10명의 위원(정부 부처 7인, 민간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된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법무부의 취업 불승인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소송 패소 후에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중앙포토]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법무부의 취업 불승인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소송 패소 후에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중앙포토]

취업 제한 예외 승인 ‘이현령비현령’

이 부회장 측이 취업 제한 예외 승인 신청을 하면 ‘특별한 사정’을 직접 소명‧증명해야 하고, 특경사위는 이 부회장의 업무가 ‘대체 불가능한지, 아닌지’ 심의한다. 하지만 승인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는 게 문제다.

앞서 경제개혁연대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법무부에 취업 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밝혀달라고 요구했지만, 법무부의 답은 “별도로 보유·관리하는 지침은 없다”는 것이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역시 지난 3월 “이 부회장의 취업 제한과 관련해 그 요건과 범위에 대해 불명확한 점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정수 삼약식품 사장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 취업 제한 예외 승인을 받고 경영에 복귀했다. [사진 삼양식품]

김정수 삼약식품 사장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 취업 제한 예외 승인을 받고 경영에 복귀했다. [사진 삼양식품]

삼양식품은 되고, 금호석화는 안 되고   

실제로 2018년 배임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특경사위에서 취업 불승인 처분을 받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월 패소한 뒤에도 이 제도의 위헌 여부를 가려 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반면, 김정수 삼양식품 사장은 지난해 3월 취업 승인을 신청해 7개월 뒤 추미애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49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 집유 3년을 받은 뒤였다. 재계 관계자는 “취업 제한 제도 자체도 문제가 많지만, 취업 승인 기준이 모호해 이처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취업 제한 논란 속에 무보수 비등기임원으로 회장직을 유지했다.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취업 제한 논란 속에 무보수 비등기임원으로 회장직을 유지했다. [연합뉴스]

최태원, 무보수 비등기임원으로 회장직 유지  

취업 제한에 걸렸지만 ‘다른 길’을 선택한 대기업 총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 시설 횡령 혐의로 유죄를 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취업 제한 논란이 있었지만 ‘무보수 비등기임원’이라는 명분으로 회장직을 유지했다. 최 회장은 이듬해 사면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4년 배임 혐의로 유죄를 선고를 받은 직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취업 제한이 풀린 지난 2월 경영에 복귀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4년 유죄 확정 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취업 제한이 풀린 올 2월 경영에 복귀했다. [중앙포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4년 유죄 확정 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취업 제한이 풀린 올 2월 경영에 복귀했다. [중앙포토]

삼성 “이 부회장 신청 여부 확인하기 어렵다”

가석방을 결정하면서 정부는 이 부회장에게 ‘반도체‧백신 외교와 글로벌 투자’ 역할을 간접 주문했다. 이 부회장을 풀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70% 안팎이었던 것도 이 같은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이 부회장이 취업 해제 신청을 할 경우 승인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다.

물론 재수감 전부터 무보수 비등기 임원이던 이 부회장 역시 최소한의 경영 활동은 지금도 가능하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 이후 ‘준법’을 강조해 온 이 부회장이나 삼성 입장에서 ‘법 위반 논란’에 휩싸이는 것 자체가 부담 요소다. 삼성전자 측은 이에 대해 “신청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계에선 여전히 특별사면 목소리   

재계에선 이 부회장의 ‘특별사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측은 “형 집행이 종료·정지된 기업인의 기업 복귀 제한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중 처벌 등 죄형 법정주의에 어긋나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상장사협의회도 성명을 내고 “법무부 장관의 취업 제한 예외 승인과 더 나아가 조속한 사면으로 글로벌 경영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