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새로운 부지휘자(assistant conductor) 얼리를 매우 환영합니다. 지휘자뿐 아니라 첼리스트로서, 콘서트홀을 넘어 음악가들과 관객을 연결한 열정이 인상적입니다. 내년 심포니홀과 여름 축제에서 그를 소개하겠습니다.” 미국의 명문인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BSO) 예술감독 앤서니 포그가 6일(현지시간) 발표한 내용이다.
지휘자 얼리, 보스턴심포니 부지휘자로 임용 #첼리스트 출신, 왼손 부상에 지휘로 전향 #"사람들이 음악에 쉽게 다가가게 돕고 싶다"
얼리(Earl Lee, 38)는 한국에서 태어나 11세에 캐나다에 이민을 떠난 지휘자다. 한국 이름은 이얼. 140년 역사의 BSO가 부지휘자로 임명했고 임기는 2023년까지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에서 인정받는 BSO의 두 번째 한국계 지휘자다. 지휘자 성시연이 2007~2010년 이 오케스트라에 부지휘자로 머물렀다.
“개인 실력이 각각 좋은 연주자들이 모여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매력적이다.” 9일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얼리는 “지휘는 아주 즐거운 작업”이라고 했다. 그는 BSO가 부지휘자 선발을 위해 오디션을 제안한 지휘자 4인 중 하나였고, 오케스트라 리허설 과정을 거쳐 최종 1인에 선발됐다. 3년 동안 상임 지휘자인 안드리스 넬슨스, 또 세계 각국에서 오는 객원 지휘자들과 함께 모든 연습에 참여하고, 돌발 상황에서 무대에 오르는 역할이다. 미국과 해외 공연에 모두 동행하고, 내년 보스턴 심포니홀의 정기 공연, 여름 음악축제인 탱글우드의 공연을 맡아 최소 2회 무대에 오른다.
얼리는 원래 첼리스트였다. 캐나다로 떠나기 전 한국 전남 여수의 초등학교에서 오케스트라 첼로 파트를 맡아 연주했다. 첼리스트로서 실력은 이미 인정받았다. 음악인들이 선망하는 소수 정예 학교인 필라델피아 커티스와 뉴욕의 줄리아드 음악원을 거쳤다. 하지만 줄리아드에서 석사와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친 2008년, 왼손에 이상이 생겼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근육 이상증이었다. 2,3년 노력했는데 낫지 않아 음악을 그만둘 생각을 하며 방황했다.”
지휘자로 새로운 길을 찾았다. “지휘자인 친구에게 바로 전화를 했고, 학교에 등록하고 오케스트라 악보 읽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첼로 악보만 보던 그는 오케스트라 모든 악기의 악보가 한꺼번에 쓰여있는 스코어 읽기를 처음부터 배웠다. “첫 서너 달은 8시간씩 책상에 앉아 공부만 했다”고 했다. 맨해튼 음대에서 지휘를 다시 배웠고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도 지휘로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캐나다 토론토 심포니의 상주 지휘자(2015~2018년), 미국 피츠버그 심포니의 부지휘자(2018~2021년)로 활동했다.
BSO 대표가 얼리를 부지휘자로 임용하며 밝혔듯, 그의 이력은 보통의 지휘자와 다른 면이 있다. 얼리는 지역 사회 안에서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이 많다. 피츠버그ㆍ토론토 오케스트라에서 청소년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전담했던 그는 “한 해 1000명 넘는 학생이 음악과 만날 기회를 만들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큰 목표는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음악에 접근하게 하는 일이다. 지식이 있어야 음악을 알 수 있다는 생각 대신, 누구든 음악을 자유롭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도록 지휘자로서 돕고 싶다.”
얼리는 이달 31일 여수국제음악제의 지휘 무대에 오르고, 10월 15ㆍ16일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을 연주한다. 첼로 연주 중 손의 부상으로 시작한 지휘가 그에게는 천직이다. “한 오케스트라를 처음 만날 땐 두렵지만 기쁘다. 어떤 오케스트라 그 어떤 단원도 처음 만난 지휘자와 안 좋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모두가 음악이 좋아 그 자리에 있다. 지휘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수정=지휘자 얼 리에 대해 애초 기사에서 “줄리아드 음악원과 맨해튼 음대에서 다시 지휘를 배웠다”고 쓴 내용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수정했습니다. 얼 리가 지휘를 공부한 곳은 맨해튼 음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