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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대국(大國)이 되려면

중앙일보

입력 2021.08.10 07:00

2021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천안문 광장서 시진핑 주석은 100주년을 기념하는 긴 연설을 하였다.

연설 가운데 유독 필자의 눈을 사로잡는 대목이 있었다.

“과거 역사를 거울삼으면 국가흥망을 알 수 있다.”
“역사를 통해 현실을 비추고 미래를 바라보자.”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밝히자.”  

ⓒ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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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수사는 과거 혁명과 애국만 강조했던 연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시진핑 연설문은 “중국공산당의 굳건한 영도와 중국 인민의 일치단결을 통해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고,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을 실현하자”는 선언으로 끝맺고 있다. 이 선언은 당대 중국이 그리고 있는 미래 대국(大國)의 청사진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벅찬 감동의 연설과는 달리, 오늘날 세계 속에 비친 중국 이미지는 대국(大國)의 위상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연설 중에 언급된 “화평, 화목, 화해에 기반한 인류 운명공동체”나 “공평, 정의, 민주, 자유의 인류공통가치” 등은 세계인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중국은 현재 주변국과 곳곳에서 분쟁을 벌이고 있고, 인류공통가치의 추구보다는 독자적 중국 모델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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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이 표출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대국을 설계하고 있는 중국의 고심과 혼돈을 잘 반영한다. 이를 단지 대국의 길에서 만난 과도기적 진통으로 얼버무리기엔 실천도 논리도 모두 궁핍하다.

이 시점에 필자는 연설문의 화두를 빌어 다시 중국의 대국 설계에 대해 물음을 던져본다.

“중국은 과거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현대 지평에서 어떤 이념을 내세울 것인가?”
“미래를 주도할 비전은 과연 무엇인가?”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밝히자”는 연설은 아마도 더 깊고 더 넓은 사유가 필요할 것이다.

지난 28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경축 문예 공연 ‘위대한 여정’이 베이징의 국가체육관에서 열렸다. 국가체육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시진핑 국가 주석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8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경축 문예 공연 ‘위대한 여정’이 베이징의 국가체육관에서 열렸다. 국가체육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시진핑 국가 주석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세계를 호령하는 대국이 되려면 오늘 중국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첫째, “중국은 과거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오늘 중국에 필요한 역사의 거울은 아마도 대국의 ‘매력’일 것이다.

중화제국의 역사 속에서 진한(秦漢)은 제국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구축하여 그 위용을 드러냈고, 청(淸)은 치리의 안정과 강역의 확장을 통해 제국의 면모를 과시했다면, 당(唐)은 치세 중에 독보적인 제국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였다.

수도 장안(長安)에 펼쳐진 다원 문명의 상호 숭배, 인문 향기 그윽한 문학과 종교의 향연, 외래 문물을 자기화하는 열린 자세 등에서 당의 매력은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당의 매력은 타지인들로 하여금 당 문명을 흠모하기에 충분했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문화의 힘은 부드럽고 조용하게 주변국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강한성당(强漢盛唐)으로 불리는 화려했던 시절 중화제국의 수도였던 시안. 명(明)대에 조성된 높이 12m, 너비 12~18m, 길이 14㎞의 성벽이 보존돼있다. ⓒ중앙포토

강한성당(强漢盛唐)으로 불리는 화려했던 시절 중화제국의 수도였던 시안. 명(明)대에 조성된 높이 12m, 너비 12~18m, 길이 14㎞의 성벽이 보존돼있다. ⓒ중앙포토

당시 수십만 명의 일본인이 당을 흠모해 순례에 나섰고, 신라 고승 의상과 원효도 당을 동경해 함께 길을 떠났던 고사 등은 동아시아 불교사의 한 장면을 장식했다. 조정의 독려도 있었지만, 당시 당 문화의 힘은 민간의 작은 공간들 속에서 자발적으로 탄생한 것이었다. 이 부드러운 힘을 학술용어로는 ‘소프트파워(Soft Power)’라고 칭하곤 한다.

반중(反中) 정서가 지구촌 전역에 팽배한 오늘, 당 문명이 던진 ‘매력’의 화두는 중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째, “현대 지평에서 중국은 어떤 이념을 내세울 것인가?”

필자는 중국이 자신의 ‘보세가치(普世價値: 세계에 두루 통할 수 있는 보편가치)’를 확립하는 수 있는가에 주목한다.

여기서 ‘보세가치’ 즉 보편가치란 곧 중국 특유의 근대성(modernity)을 확립하면서 동시에 세계에 공인될 수 있는 보편성을 함께 움켜지는 것이다. 만약 중국이 단지 중국적 특수성만 강조하거나 거꾸로 서구적 보편성에만 호소한다면, 중국의 독자적인 보세가치를 끌어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의 성찰은 100년 전 역사의 현장을 소환한다.  

1919년 5.4운동 시기, 중국인을 사로잡은 두 정신이 있었다. 그 정신은 ‘구망(救亡)’과 ‘계몽’의 구호로 대표된다.

‘구망’(애국)은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했던 당시 중국에 가장 절실한 구호였다. 그러나 근대 여명기 중국인들은 ‘계몽’의 정신도 함께 주목했다. 봉건 잔재를 일소하고 근대를 열어 밝힌 보편가치를 배우자는 운동이었다. 중국 근대사에서 구망과 계몽은 좌우의 양 날개와도 같았다.

1919년에 일어난 중국의 반제 구망(救亡)운동은 5·4 신문화운동과 결합하면서 근현대의 시작을 알렸다.

1919년에 일어난 중국의 반제 구망(救亡)운동은 5·4 신문화운동과 결합하면서 근현대의 시작을 알렸다. 그림 속에 ‘불평등조약 폐지’ 등의 구호가 보인다. ⓒ중국 근현대사사론

1919년에 일어난 중국의 반제 구망(救亡)운동은 5·4 신문화운동과 결합하면서 근현대의 시작을 알렸다. 그림 속에 ‘불평등조약 폐지’ 등의 구호가 보인다. ⓒ중국 근현대사사론

그러나 중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이후, 구망은 혁명과 결합되어 전천후 위력을 발휘해 간 반면, 계몽은 서서히 망각되어갔다. 구망(애국)과 혁명만 기형적으로 비대해진 역사 속에서 계몽의 상실은 중국 사회에 음양으로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부와 인민의 단결만을 강조하는 미덕은 구망과 혁명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 지식인 리쩌허우(李澤厚)는 90년대에 이미 애국만을 강조해온 중국 사회의 구태성(舊態性)을 일갈한 바 있다.

오늘날 중국 사회는 다시 구망과 계몽의 양 날개로 날아오를 수 있는가? 이는 중국이 현대적 의미의 보세가치를 도출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셋째, “미래를 주도할 중국의 비전은 무엇인가?”

이것은 과연 중국이 보세가치를 세계 네트워크로 확장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물음이다.

시진핑 정부는 일찌감치 중국발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인류운명공동체’와 같은 탈국가적 네트워크를 대대적으로 개발하였다. 이러한 네트워크의 확장은 국가 간의 대립을 허물고 상생과 공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개 민족국가의 한계를 초월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의 일대일로 네트워크. ⓒglobalinitiative

중국의 일대일로 네트워크. ⓒglobalinitiative

그러나 동아시아의 현실만 놓고 보아도 상생과 공영의 성과는 녹록지 않다.

이미 진행 중인 남중국해 분쟁, 중인(中印) 국경분쟁, 키르기스스탄 국경분쟁 등은 중화제국이 민족국가로 이행하면서 묻어둔 불씨가 다시 살아난 것들이다. 반면 한반도에서 발생한 북핵 문제와 사드 갈등은 냉전의 유산에 신냉전이 겹치면서 불거진 또 다른 충돌이다.

동아시아 재충돌 시기, 대국의 조정자 역할이 더욱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상생과 공영의 네트워크가 확장되려면 이에 걸맞은 보세가치, 즉 국가 간의 대립을 넘어선(trans-nation) 보세가치를 먼저 확립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분쟁을 끝내려면, 각국이 민족국가 형성기에 타작 않고 쌓아둔 건초더미와 냉전 때 사용한 무기들을 어떻게 청산할 수 있는가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

ⓒ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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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상생은 동아시아 최고의 보세가치이다.

만약 한 손엔 냉전의 패를 다른 손엔 인류공영의 패를 쥐고 알쏭달쏭한 판을 돌린다면, 남들은 대국이 꽃놀이패를 한다고 여길 것이다.

보세가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면, 남들은 저들이 단지 대국으로 위장한 일개 국민국가일 뿐이라고 폄하할 것이다.

글 강진석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철학박사)
정리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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