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카뱅의 진짜 경쟁력

중앙일보

입력 2021.08.1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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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경제산업디렉터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

4년 전인 2017년 8월 경기도 판교에 있는 카카오뱅크(이하 카뱅) 본사에 가본 적이 있다. 직전인 7월 갓 출범한 카뱅이 돌풍을 일으키던 때였다. 특이하게 은행장에게 별도의 집무실이 없었다. 아무런 ‘권위 없이’ 직원과 똑같은 자리에서 근무하는 모습이 하도 신기해서 ‘카카오뱅크 코너 오피스에는 대표이사가 없다’는 제목으로 르포를 썼다.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사무실에서 킥보드를 타고 이동하는 은행원 모습도 이채로웠다. 카뱅 측에 다시 물어보니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고평가 논란에도 은행 대장주 올라
신설 카뱅 대표가 은행장 최고참
낡은 금산분리 규제 벗어난 게 강점

금융당국은 카뱅이 은행업계에 경쟁과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메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작지만 강한 플레이어’가 되라는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의 기대 섞인 언급도 기억난다. 그때 2인 대표의 한 사람이었던 이용우 카뱅 대표(현 민주당 의원)는 “카뱅이 그저 메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은행으로 우뚝 서겠다”고 했다. 실제로 카뱅은 ‘메기’를 넘어서 은행업계 대장주로 우뚝 섰다.

지난 6일 상장한 카뱅은 공모가보다 38% 비싼 5만원대에서 거래를 시작해 상한가(6만9800원)까지 올랐다. 이날 시가총액은 33조1620억원으로 기존 1등 금융사 KB금융(21조7052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9일엔 12% 오른 7만8500원까지 치솟았다.

증권가 시각이 궁금해서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훑어봤다. 카뱅의 적정가치를 둘러싸고 고민이 많았다. 공모가 3만9000원이 이미 비싸다고 상장 전에 매도 추천을 한 증권사도 있었다. 공모가 기준 카뱅의 시가총액은 18조5000억원. BNK투자증권(적정 시가총액 11조3000억원), 미래에셋증권(11조5000억원~12조원), 메리츠증권(15조5000억원) 등은 공모가가 비싸다고 봤다. 지금 주가를 보면 기가 막힐 것이다.

국내 증권사 중 가장 높게 가격을 매긴 곳은 SK증권(30조7000억원)이다. 주당순자산비율(PBR) 5.45배를 적용해 목표주가 6만4000원을 제시했는데, 이마저도 상장 첫날 넘어섰다. PBR은 주가와 주당 순자산가치를 비교한 지표인데 국내 은행 지주사의 PBR은 0.3~0.5배 정도다. 은행업 주가가 순자산가치의 절반 이하로 거래된다는 의미다.

서소문포럼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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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증권은 왜 카뱅에 다른 은행의 10배 넘는 PBR을 적용했을까. 3월 말 현재 카뱅의 총자산은 28조6000억원으로 이미 광주·전북은행 같은 지방은행을 추월했다. 영업 개시 2년 만인 2019년 흑자 전환했다. 카카오 플랫폼의 경쟁력, 점포망이 없는 언택트 금융 등이 강점이다. 점포가 없으니 판매관리비가 적게 들어간다. 카뱅을 ‘전 세계 인터넷은행의 롤모델’이라고 호평하는 이유다.

결국 기존 은행과 뭔가 다르다는 거다. 카뱅의 플랫폼 매출 비중이 8%인데, 앞으로 얼마나 늘어날지도 관심이다. 예대 마진이라는 전통적인 은행 수익구조에서 벗어나려면 증권 계좌나 신용카드 등을 연결하는 플랫폼 장사를 잘해야 한다. 고객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용평가 능력을 보여준다면 앞으로 늘어날 중금리 대출 등에서 손해를 줄이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 카뱅이 이런 차별화 포인트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지금 같은 은행주와의 주가 차별화는 이어지기 힘들 것이다.

카뱅이 시중은행과 가장 차이가 나는 점은 지배구조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 따라 산업자본이 34%까지 지분을 가질 수 있다. 비금융 기업이 은행 지분을 10%(의결권은 4%) 넘게 보유하지 못하게 하는 금산분리 규제에서 자유롭다. 김범수 의장이 대주주인 IT 대기업 카카오가 카뱅 지분 27%를 쥐고 있다. 카뱅은 다른 시중은행과 달리, 확실한 주인이 있다는 얘기다.

초대 카뱅 행장인 윤호영 대표가 실적을 바탕으로 2년+2년+2년, 3연임을 하며 어느덧 현재 국내 은행장 중에 최고참이 됐다. 긴 호흡으로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책임경영을 할 수 있다.

신설 은행의 대표가 장수(?)하는 동안, 다른 시중은행장들은 KB(2년+1년+1년), 우리(1년+1년)처럼 1년 연임을 이어가거나, 2년 단임 행장에 이어 올해 새 행장이 취임했거나(하나), 1년+1년+1년 3연임 행장과 9개월 행장에 이어 올해 새 행장이 취임했다(농협). 최장 10년에 3, 4연임까지 하는 지주회사 회장에 비해 은행장 임기는 너무 짧고 힘도 덜 실린다. 그러다 보니 은행이 단기 실적에 연연하게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낡은 금산분리 규제에서 벗어난 게 카뱅의 진짜 경쟁력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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