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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용하의 이코노믹스

고령자들 연금 많이 받을수록 청년에겐 폰지게임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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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연금개혁 왜 선택 아닌 필수인가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올해 3월 말 현재 국민연금기금 규모는 892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45.5%에 이른다. 거대 국민연금 기금이 2057년 고갈된다면 실감 나지 않겠지만, 제4차 국민연금재정 추계위원회의 재정전망 결과에 따르면, 2020~2060년의 재정지출 연평균 증가율은 7.3%에 달한다. 이에 비해 재정수입은 1.6%에 불과하니 기금이 버텨날 수 없다.

국민연금 기금 2057년 바닥 나 #고갈 후 부과방식으로 전환해도 #저출산·고령자로 현역 부담 가중 #지금 안 고치면 40년 후 충격파

이 같은 재정수지 차이는 수급자가 빠르게 증가하는 동안, 연금보험료를 납입하는 가입자 수가 많이 감소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현재 2199만명인 가입자가 2060년에는 1329만명으로 39.6% 감소하는 반면, 수급자는 547만명에서 1707만명으로 212.1%나 급속히 증가한다.

연금 수리적으로 부담·수급 구조가 균형된 제도라면 가입자 수가 감소하든 수급자가 증가하든 상관없이 적립기금이 고갈되지 않는다. 가입자가 감소하면 연금제도의 운용 규모가 축소돼 적립기금의 크기가 작아질 뿐이지 적립기금이 고갈되지는 않는다.

부담·수급이 상등(相等)하도록 돼 있는 민영 연금상품이 현재 국민연금 상황이라면 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판매중단, 혹은 미충당 연금채무의 적립이행 조치 등 제재를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어떻게 아무런 일 없다는 듯 운영되고 있을까.

유럽 대부분 국가의 공적연금은 부담과 수급의 균형이 아닌 당년도 수입과 지출이 일치하도록 운영된다. 당년도 연금 지급에 필요한 지불준비금 일부를 보유하고 있을 뿐 적립기금 없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적연금은 근로 세대가 노년 세대를 부양하는 세대 간 부양원리에 기초해 매년 노년 세대에 지급해야 할 연금총액을 근로 세대가 나누어서 비용을 분담한다.

이는 인류사회가 전통적으로 해왔던 가족 단위로,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것을 국가 단위로 확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세대 간 부담 공평하게 개혁해야

김용하의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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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 부양원리에 기초한 공적연금은 노년 세대의 연금지급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했던 근로 세대가 다시 노년 세대가 되면 그들의 자녀 세대인 근로 세대의 비용부담으로 연금을 수급한다. 결과적으로 각 세대의 비용부담총액과 연금수급총액이 균형을 이룬다면 사적연금처럼 부담·수급의 균형원리가 실현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확률적으로 볼 때 부담한 돈과 받는 돈이 일치하기 위해서는 인구의 변동이 없어야 한다. 즉, 근로 세대와 노년 세대의 인구수 비율이 어느 정도 일정해야 한다.

세대 간 부양원리에 기초했던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1980년대에 공적연금 개혁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것은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노인 인구 비중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노인 인구비율이 연차적으로 높아지면 미래세대로 갈수록 예상 연금액보다 비용부담액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세대 간 공평성이 무너지게 된다. 이것이 심화하면 이른바 폰지게임(ponzy game)처럼 되면서 미래세대는 연금을 못 받을 수도 있게 된다. 따라서 세대 간 불공평한 것을 공평하게 바꾼 것이 유럽 국가들이 추진한 연금개혁의 기본방향이라 할 수 있다.

즉, 근로 세대가 노년 세대를 위해 부담한 금액만큼은 그들이 노년이 되면 동일하게 돌려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서 미래세대도 공적연금으로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방식으로 세대 간 공평성을 구현했다. 연금개혁은 연금액은 줄이고 연금보험료를 인상하고, 연금수급 개시 연령도 늦추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국민의 거센 반대와 갈등이 있었다. 그럼에도 사회적 합의가 어렵사리 도출되었던 것은 선택 가능한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1960년생, 낸 것보다 2.8배 더 받아

노년 부양비 비교

노년 부양비 비교

사적연금이든 공적연금이든 생애 기간 부담한 금액과 수급하는 금액을 동일하게 일치시키는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특정 세대에서의 연금수급 기대금액이 연금보험료 부담액수보다 크면 다른 세대가 그 차액만큼을 손해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어느 세대라도 가입 기간 중 부담하는 연금보험료 부담의 총액 대비 수급 기간에 걸쳐 받는 연금 총액의 배수인 수익비가 1.0배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수익비(평균소득의 남성 기준)는 1960년생이 2.8배, 1970년생은 2.3배이고, 1980년생도 2.1배(연금보험료율 9.0% 유지를 가정) 수준이다. 이른바 저부담·고급여 구조하에서는 장기적으로 재정지출이 재정수입을 초과해서 적립기금이 고갈될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2057년에 고갈되는 원인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저부담·고급여 구조로 적립기금이 고갈돼도 근로 인구 대비 노년 인구의 비율인 노년부양비가 일정하다면 국민연금제도는 세대 간 부양원리에 기초해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년부양비는 2020년 21.7%에서 2040년 60.1%, 2060년 91.4%로 높아진다. 국민연금 가입자 대비 수급자 비율인 제도 부양비는 더 심각하다. 2020년 19.6%에서 2040년 62.7%, 2060년 116.0%가 되어 가입자 수보다 수급자 수가 더 많아진다. 이렇게 부양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적립기금 없이 세대 간 부양원리에 기초한 부과방식 연금제도의 운용은 세대 간 불공평성 측면에서 지속 불가능하다.

40년 후 청년은 월급 60% 부담해야

부과방식 비용률은 적립기금이 없을 때, 노년 세대에 대한 연금지급 비용을 근로 세대가 부담할 때 필요한 연금보험료율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부과방식 비용률은 2020년 현재 5.2%로 현행 국민연금보험료율 9.0%보다 낮지만 2030년에는 9.0%에 이르고, 2040년 14.9%, 2060년 26.8%로 높아질 것으로 제4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위원회는 전망하고 있다. 26.8%라는 것도 합계 출산율인 1.38명으로 유지된다는 2017년 통계청 인구 추계 기준이고, 2019년 통계청의 수정 인구 추계(합계 출산율 1.27명)를 가정하면 30%를 넘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현행 9.0%의 3배가 넘는 30%대의 필요 보험료율은 두 가지 측면에서 국민연금을 더는 지속 가능하기 어렵게 만든다.

주요국 공적 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주요국 공적 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첫째, 2060년 당시의 경제적 부담한계 때문이다. 2060년이 되면, 국민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보험료율도 30% 수준을 넘을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인구 노령화에 영향을 받는 국민연금 등 3개의 제도의 합계 보험료율은 가입자 소득총액의 60% 내외가 되고, 이는 그 시점의 미래세대로선 사실상 부담이 불가능한 수준이 된다.

둘째, 미래세대는 국민연금 가입으로 큰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만약 소득에 30% 내외의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부과되면 그 시점에서 근로 세대의 경우 수익비가 1.0 이하로 하락하게 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40년 가입 40% 수준으로 2028년에 조정이 끝나면, 이에 대응하는 국민연금의 연금 수리적 균형보험료율은 17.0% 수준이다. 만약 30%의 보험료율을 부과하면 받는 것에 비해서 1.76배의 비용부담을 하게 되므로 국민연금 제도 가입 유인이 전혀 없어진다. 따라서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17%선을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다.

2060년 노년부양비가 91.4%가 되는 미래가 예정된 나라에서는 국민연금 적립기금이 고갈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 국민연금을 저부담·고급여의 불균형 구조에서 균형구조로 가능한 조속히 전환하는 것이 연금개혁의 요체다. 국민연금은 생계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공공부조 같은 복지제도가 아니라 세대별로 보험료를 부담한 만큼 연금으로 받는 제도(세대 내 소득재분배는 가능)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나 국민연금공단이 국민연금을 재테크의 일종인 노테크로 홍보하는 것은 연금개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폰지 게임(Ponzi Game)

찰스 폰지는 1919년 외국에서 구매한 만국우편연합 국제 반신권(International Reply Coupon: 답신용 우편요금을 첨부한 유가증권)을 미국에서 내다 팔 때의 차익을 이용해 투자자들에게 90일 내 100%의 수익률을 낼 수 있다면서 투자자를 모았다. 당시 제1차 대전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이탈리아에서 구매한 국제 반신권을 미국에서 달러로 바꾸면 차액을 얻을 수 있었다. 신규 투자자의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지급해주는 일종의 다단계 사기였다. 이러한 수법으로 1년간 투자자들에게 2000만 달러의 손해를 입혔다. 노년부양비가 높아지는 시기에는 미래세대로 갈수록 비용부담이 높아지는 공적연금의 세대 간 형평성을 비유할 때 자주 인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