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의 향기

“어깨 위에 세상의 무게를 느낀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10 00:24

지면보기

종합 28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무더운 한여름, 코로나19 거리두기로 집안의 TV 앞에서 때로는 환호하면서 때로는 탄식하면서 17일간을 보냈습니다. 올림픽 기간에도 일본의 확진자 수가 연일 1만 명이 넘는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가 이어졌지요. 도쿄의 살인적인 더위에 선수와 자원봉사자들이 열사병으로 실려 나가는 일도 잦았습니다.

역병·혹서기에 강행된 올림픽
올림픽이 국가 대항전인가?
올림픽의 아마추어 정신 실종

테니스에 출전한 스페인의 파을라 바도사 선수는 8강전을 기권하고 휠체어로 실려 나갔고,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선수는 경기 중 두 차례 메디컬 타임아웃을 요청하며 “내가 죽으면 책임질 것인가?”라고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여자 골프 금메달리스트 박인비 선수는 체감온도 섭씨 40도 가까운 필드에서 경기하면서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마라톤은 삿포로로 옮겨 대회 마지막 날 아침 일곱 시에 출발시켰으나 무더위로 레이스 도중 선수들의 기권이 속출했습니다.

팬데믹 상황과 혹서기에 올림픽을 꼭 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만 올림픽은 이미 돈의 잔치가 되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예산의 75%를 올림픽 때의 TV 중계권료에 의지하고 있는데 미국 중계권을 가진 NBC의 도쿄 올림픽 중계권료가 전체의 40%에 육박하는 14억500만 달러(약 1조6700억원)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주요 경기 시간이 미국 동부시간 위주로 편성됩니다. 또한 개최 시기도 다른 주요 프로 스포츠 시즌을 피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올림픽을 포기하게 되면 IOC는 중계권료를 토해내야 하지요. 주최국인 일본도 막대한 돈을 들여 후쿠시마 비극을 딛고 일어선 부흥을 과시하려던 의욕을 접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승자는 환호하고, 패자는 눈물로 얼룩지는 현장의 연속을 저는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기록경기의 경우, 소수점 이하 단위까지 가려내 순위를 공표하는 것은 잔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단체 구기의 경우, 시합 전에 국기를 앞세운 양 팀 선수들을 세워놓고 국가를 연주한 뒤에 경기에 돌입하는 것은 나라 대항전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맞붙게 된 피 끓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사생결단하고 몸을 던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올림픽에 나서는 선수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것은 미국의 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가 경기 도중 기권을 선언한 데서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열아홉 살에 리우 올림픽 4관왕을 차지하는 등 각종 세계 대회에서 금메달만 열아홉 개를 딴 바일스는 6개 종목 전관왕 석권의 시작으로 여겼던 여자 단체전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권을 하고 말았지요. 그녀는 “때로 내 어깨 위에 세상의 무게를 느낀다. 무작정 세상이 기대하는 것을 해내려 하기보다 몸과 마음을 보호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배우 윤여정씨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을 때 “김연아나 운동선수들의 심정을 알겠더라”고 피력한 것도 경쟁의 피 말림을 겪은 탓이겠지요. 한일 월드컵의 영웅 유상철 선수가 아까운 나이에 병을 얻어 우리 곁을 떠난 것도 그런 스트레스의 축적이 한 원인은 아니었을까요.

저는 어느 사이에 우리 팀이 이기기를 바라고, 상대 팀은 지기를 바라고 있는 스스로가 두려워졌습니다. 축구가 멕시코에 패배하는 것을 보며 자신도 참가를 희망하고 구단도 승낙한 손흥민 선수를 왜 데려오지 않았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야구가 도미니카공화국에 질 때는 어렵게 국내 귀환을 결정한 추신수 선수는 왜 기용하지 않았는지도 궁금해졌습니다. 국제적 망신까지 자초한 개막식 중계방송과 한국팀 응원단으로 변모해버리거나 국수주의적인 TV 중계를 보며 수준 미달의 방송인은 교육의 필요성마저 느껴졌습니다.

역병이 창궐하고 환경의 악화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시대에 엄청난 돈을 들여 많은 사람을 한 군데 불러모아 가지가지 온갖 방법으로 이긴 자와 진 자를 가려내는 올림픽이라는 축제가 어쩌면 평화를 주제로 한 위선은 아닐까요. 이제 올림픽에서 참가에 가치를 두는 아마추어 정신은 찾기 힘들어졌습니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7월 24일,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이 고안한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의 구호는 ‘더 비싸고, 더 욕먹으며, 더 정치적으로’ 바뀌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인류가 힘을 모아 함께 살 방도를 찾아야 할 화급한 시기입니다. 대결보다는 화합이 시대의 정신입니다.

그러나 반 년 뒤 베이징 겨울올림픽, 3년 뒤 파리 여름올림픽이 열리면 저는 또 TV 앞에 붙어 앉아 한국팀을 응원하고 있겠지요.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난다면 저의 젊은 시절을 보낸 파리가 보고 싶어 직접 날아가는 극성을 부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