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의 인프라] e가 법보다 무섭다 ‘e비즈의 시대’

중앙일보

입력 2021.08.10 00:22

업데이트 2021.08.1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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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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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바야흐로 e 커머스(전자상거래) 시대다. 웬만하면 온라인으로 물건이 소비된다. 심지어 자동차 회사까지 온라인으로 차를 판다. 비대면 소비 기류는 꺾일 줄 모르고 확장 일로다. 덩달아 e 커머스 산업은 급성장 중이다. 쿠팡은 미국 뉴욕 증권시장에 당당하게 입성했고, 배달앱이나 숙박앱은 불황을 모른다. 기업 가치는 천정부지다. e 커머스는 디지털 시대의 총아이자 시대 변화를 읽어낸 혁신의 비즈니스 모델로 평가받는다.

고객·직원 마음 상하면 위기 빠져
감정의 조직적 악용 사례도 급증
리뷰·별점이 집단린치로 비화 잦아
댓글 조작도 국민 상대 감정 테러
개인·조직 살리는 공감·배려 필요

이런 혁신 비즈니스에도 웃지 못할 걸림돌이 등장하곤 한다. 국내 굴지의 e 커머스 회사는 최근 들어 배송 직원에게 다소 뜬금없는 신신당부를 한다. ‘담을 넘지 마세요’라는 주문이다. 배송 직원이 도둑도 아닐진대, 직원에게 하는 주문치고는 이상하기 짝이 없다. 몇 해 전 사건이 발단이었다. 배송 직원이 주문받은 물건을 배달하러 시골로 나갔다. 아파트야 동(洞)·호수가 명확하니 헷갈릴 일이 없다. 한데 시골집은 대로변에 위치하지 않으면 꼬불꼬불한 담벼락에, 어느 대문이 주소가 가리키는 대문인지 가리기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집에 사람이 없을 때도 부지기수다. 이 때문에 엉뚱한 집에 물건을 넣어놓는 일이 생기곤 한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와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 회원들이 음식 배달앱의 리뷰·별점 제도가 블랙컨슈머를 양산한다며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와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 회원들이 음식 배달앱의 리뷰·별점 제도가 블랙컨슈머를 양산한다며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송기사가 ‘아차’하고 실수를 알아차렸을 땐 늦었다. 집안에 사람도 없으니 돌려받을 길도 없어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한 배송기사가 잘못 배달된 물건을 되찾으려 담을 넘었다. 이게 화근이었다. 뒷마당에 있던 주인이 도둑으로 착각하고 빗자루를 들고 달려왔다. 배송기사가 사정을 얘기했다. 집주인도 이해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널리 알리겠다”며 배상을 요구했다. 회사의 이미지 때문에 결국 몇푼의 돈을 쥐여주고 합의했다.

이 회사 임원의 말이다. “직접적인 소비자든 간접적인 소비자든 그들의 감정을 달래고 어루만지지 않으면 회사 이미지 추락과 그로 인한 경영상 타격이 올 수 있다.” 디지털 바람을 타고 e 커머스가 떴지만, 역으로 디지털 바람이 순식간에 회사의 평판을 곤두박질치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e 커머스의 e가 어느 순간 emotion(감정)을 포함하는 약어가 된 셈이다. ‘e(emotional) 비즈니스(감정 경영)’는 이제 일상화됐다.

번듯한 회사만 그런 것도 아니다. 자영업자도 감정 경영의 회오리 속으로 휩쓸리고 있다. 식당을 운영한다고 치자. 음식만 잘 만든다고 장사가 잘되는 게 아니다. 블랙컨슈머를 만나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들의 교묘한 행동에 멍들기 일쑤다. 낮은 별점(평점)과 고의적인 악성 리뷰는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예방하기도 힘들다. 자영업자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희한한 건 별점을 매기고 악성 리뷰를 단 사람은 오히려 당당하다는 점이다. 사실이 아니어도 “내가 느꼈다는데 왜?”라는 식이다. 더 이상한 건 팩트가 어떻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타고 이런 리뷰에 휩쓸리는 사람이 많고, 걸핏하면 비난의 판때기에 몰려들어 집단 린치화한다는 점이다. SNS를 악용한 블랙컨슈머가 머물고 간 자리가 폐허로 변하기 일쑤인 이유다. 일종의 집단적 오류에 기인한 ‘감정 테러’다.

국내 E커머스 시장점유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내 E커머스 시장점유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사실 감정 경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블링크』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성공적인 비즈니스는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완성된다”고 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회사 내부적으로 “광기를 허하라”고 조언한다. 상식을 뛰어넘는 아이디어가 그런 광기에서 나온다면서다. 직원의 감정과 마음을 다스리려 들기보다 읽고 이해하면서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의 성공비결이란 얘기다. 고(故) 허버트 D 켈러허(Herbert D. Kellerher) 사우스웨스트항공 회장은 ‘직원이 웃어야 고객을 잘 대하고, 주주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정신을 경영철학으로 삼았다. 주주나 고객보다 직원 우선주의다. ‘고객은 왕’이라는 식의 경영이 판을 칠 때 켈러허 회장은 “고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며 직원의 편에 서서 고객의 갑질로부터 보호했다. ‘감정 노동’은 갑질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감정 경영’은 을을 존중하는 경영문화다. 켈러허 회장의 경영 철학은 사실상 대치어 같은 두 단어를 같은 맥락에 올려놓고 본 셈이다.

그런 면에서 감정 경영은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중요한 덕목임이 틀림없다. 문제는 회사 내부가 아니라 사회의 감정 집단화다.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라면 상관없다. 고급 차의 갑질 주차, 동물 학대, 정치인의 갑질, 엄빠(엄마·아빠) 찬스를 고발하는 등 사회 저변에 깔린 부조리를 바로잡는 순기능도 많다. 그게 아니라 감정 테러로 잘못 비화하면 국가와 사회, 경제에 독이다. 어쩌면 댓글 조작이 먹히는 이유도 팩트보다 맹목적 휩쓸림이 만연한 때문인지 모른다. 정치권의 감정 경영 악용이자 국민을 상대로 한 감정 테러와 다름없다.

동네 식당에서 정치판까지 번진 이런 테러를 걸러내려면 배려와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e 경영은 집단 지성에 바탕을 둔 공감의 사회질서, 공존의 경영을 형성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자 호모 엠파티쿠스(공감하는 인간)의 토대”라며 “사회적 공감 경영으로 승화하려면 팩트에 기초하고, 개인 간 또는 집단 간 배려에 본능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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