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outlook] 허구 드라마는 그만, 뮤지션의 진짜 이야기를 담아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2017년 초연, 올해 공연이 세번째 시즌인 뮤지컬‘광화문 연가’. [사진 CJ ENM]

2017년 초연, 올해 공연이 세번째 시즌인 뮤지컬‘광화문 연가’. [사진 CJ ENM]

주크박스 뮤지컬이 글로벌 흥행을 누리고 있다. 동전을 넣고 번호를 누르면 왕년의 인기음악을 들려주는 음악 상자처럼, 흘러간 대중음악을 활용해 무대를 꾸몄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00년대 들어 영미권 신작 뮤지컬의 절반 이상은 영화가 원작인 무비컬이거나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너무 많은 작품이 등장한 탓이다. 퀸의 음악들로 꾸민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티나 터너의 ‘티나(Tina)’, 베리 매닐로우의 ‘코파카바나(Copacabana)’, 빌리 조엘의 ‘무빙 아웃(Movin’ Out)’, 로드 스튜와트의 ‘투나잇츠 더 나잇(Tonight’s The Night)’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대중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는다. 적어도 실험쥐마냥 두 세 시간을 공연장에서 새로운 선율에 시달릴(?) 걱정은 없는 장르적 매력이 사람들의 발길을 당기는 셈이다.

원종원의 ‘주크박스 뮤지컬 생존법’ #광화문 연가, 사랑했어요, 미인 등 #주크박스 뮤지컬 연이어 개막 #익숙한 음악에 가상의 스토리 #‘맘마 미아!’ 방식 탈피가 새 흐름

김현식의 노래를 사용하는 주크박스 뮤지컬 ‘사랑했어요’ 2019년 공연 장면. [사진 호박덩쿨]

김현식의 노래를 사용하는 주크박스 뮤지컬 ‘사랑했어요’ 2019년 공연 장면. [사진 호박덩쿨]

올 하반기, 대한민국에도 이 바람이 불고 있다.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음악들로 꾸민 ‘광화문 연가’(9월 5일까지), 고 김현식의 음악들로 치장한 ‘사랑했어요’(8월 14일~10월 31일), 신중현의 노래들이 나오는 ‘미인’(9월 15일~12월 5일)이 앞다퉈 막을 올린다. 이미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주크박스 뮤지컬은 많다. 김광석 노래가 나오는 ‘그날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동물원과 김광석의 사연이 심금을 울리는 ‘그 여름 동물원’, 1900년대말의 인기 가요들로 꾸민 ‘젊음의 행진’, ‘달고나’, ‘진짜 진짜 좋아해’ 등 다양하다.

한국의 청중은 주크박스 뮤지컬에 관심이 많다. 역시나 2시간 반동안 새로운 음악만 들으며 모르모트가 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광화문 연가’의 경우 많은 이에게 익숙한 ‘붉은 노을’을 비롯한 음악으로 2017년 초연부터 사랑 받았다. 이번 세번째 시즌까지 내용을 계속 바꿀 정도로 영리한 연출도 주목할만하다.

하지만 주크박스 뮤지컬의 양적 성장이 질적 성숙까지 보장하진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허구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에 익숙한 음악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주크박스 뮤지컬은 여전히 최고 히트작인 ‘맘마 미아!’ 시대에 머물러 있다. ‘사랑했어요’와 ‘미인’ 또한 청중이 익숙한 음악을, 완전히 새로 창작한 이야기에 맞춰 넣는다는 공식을 따른다. 세계적 흐름에서 봤을 때 초창기 ‘맘마 미아!’식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아바의 노래를 이용한 ‘맘마 미아!’의 2019년 한국 공연 장면. 런던에서 2001년 초연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사진 신시컴퍼니]

아바의 노래를 이용한 ‘맘마 미아!’의 2019년 한국 공연 장면. 런던에서 2001년 초연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사진 신시컴퍼니]

2001년 런던 웨스트엔드 초연 이후, ‘맘마 미아!’를 본 관객은 전세계 50개국 6500만명 이상. 최고 흥행작이었다. 스무살 소피를 혼자 키운 마흔살 도나, 아버지일지 모르는 세 남자가 벌이는 결혼식 소동이다. 마치 원래 이 이야기를 위해 아바의 노래들이 만들어졌던 것처럼 효과적으로 완성했다.

그러나 ‘맘마 미아!’에겐 또 다른 별칭이 존재한다. ‘뮤지컬계의 대재앙(disaster)’이다. 이후 수많은 주크박스 뮤지컬 억지 드라마의 단초가 됐다는 비판이다. 빈약하거나 허술한 극 전개는 결국 주크박스 뮤지컬의 치명적인 단점이 되는 결과마저 불러왔다.

흥미로운 것은 이때부터 시도된 무대의 진화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탈(脫) 맘마 미아!’를 화두로 삼게 됐고, 왕년의 인기 대중음악을 무리없이 무대로 승화시킬 다양한 도전을 했다. 또 다른 ‘맘마 미아!’를 창조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과 실험들이다.

원종원 교수

원종원 교수

다큐멘터리 기법의 활용은 그래서 얻어진 성과 중 하나다. 원래 뮤지션의 ‘진짜’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내 자연스레 풍성한 스토리를 얻어내는 방법이다. 무대적 기법인 독백·방백은 마치 TV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는 밀실 인터뷰처럼 뒷이야기나 내면의 생각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유명한 노래의 탄생 비화를 알려주면서 다시 곱씹어 즐길 수 있는 재미를 담아냈다.

덕분에 ‘저지 보이스(Jersey Boys)’를 보면 유명한 노래 ‘캔트 테이크 마이 아이스 오프 유(Can’t Take My Eyes Off You)’에 포 시즌스 리드 보컬인 프랭키 벨리와 마약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등진 그의 딸 프랜신에 얽힌 사연이 반영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밀리언 달러 쿼테트(Million Dollar Quartet)’를 보면 마지막 앨범 녹음 날 앨비스 프레슬리와 조니 캐시, 칼 퍼킨스 그리고 레리 리 루이스에겐 있었던 사연을 엿볼 수 있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파괴력이 더 커진다면, 그건 ‘탈 맘마 미아!’ 노력의 성과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한국의 주크박스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K팝의 인기와 글로벌한 흥행은 뮤지컬에도 새로운 과제다. 관건은 ‘탈 맘마 미아!’의 시대적 조류를 우리 무대에선 어떻게 그리고 과감히 시도할 것인지의 여부다. 유명 대중음악을 활용하는 것은 그저 모티브이자 시발점에 불과하다. 다양한 실험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전제 조건이자 철칙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