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이스박스 유기 희한한 반전…친부 아닌 계부였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09 22:23

업데이트 2021.08.09 23:44

지난 6월 15일 대전시 대덕구에 사는 A씨(29)는 자신의 딸이 잠을 자지 않고 울자 이불로 덮은 뒤 주먹과 발로 때렸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수십 차례 폭행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아이의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사건추적]
검찰, 아동학대살해·성폭력 혐의 기소

20개월된 여아를 폭행해 숨지게 한뒤 아이스박스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A씨(노란색원)가 지난달 14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 유치장을 나오고 있다. 신진호 기자

20개월된 여아를 폭행해 숨지게 한뒤 아이스박스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A씨(노란색원)가 지난달 14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 유치장을 나오고 있다. 신진호 기자

결국 20개월 된 딸은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숨졌다. 아이가 숨지자 A씨와 아내 B씨(26)는 시신을 아이스박스에 넣고 밀봉한 뒤 집안 화장실에 숨겼다. 시신의 냄새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B씨는 남편이 아이를 폭행하는 데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이불로 덮고 폭행…숨지자 아이스박스에 담아

두 사람의 범행은 24일 만에 드러났다. 딸과 연락이 닿지 않자 숨진 아이의 외할머니가 지난달 9일 새벽 5시쯤 대전시 대덕구의 A씨 집으로 찾아갔다. 현장을 목격한 외할머니는 “아이가 숨진 것 같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범행이 들통나자 A씨는 그대로 달아났다.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B씨를 검거하고 달아난 A씨를 추적했다. A씨는 나흘 만인 12일 대전의 한 모텔에서 검거됐다.

경찰이 아이스박스에 담긴 시신을 확인했을 때 이미 부패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였다. 숨진 여아를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오른쪽 대퇴부(넓적다리) 골절과 전신 손상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냈다.

생후 20개월된 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뒤 아이스박스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A씨(노란색원)가 14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대전지법으로 이송되고 신진호 기자

생후 20개월된 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뒤 아이스박스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A씨(노란색원)가 14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대전지법으로 이송되고 신진호 기자

수사 과정에서 A씨가 숨진 아이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정황도 드러났다. A씨는 검거 직후 “(성범죄를) 하지 않았다”고 범행을 부인하다 수사관의 끈질긴 추궁 끝에 범행을 시인했다. 검찰은 지난 6일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공소 사실에 이 내용을 추가했다.

경찰서 "친딸" 진술…유전자 검사 결과 불일치

A씨와 B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숨진 아이가 ‘친딸’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이 A씨를 검거한 뒤 국과수에 유전자(DNA) 검사를 의뢰한 결과 A씨는 친부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B씨는 친모로 확인됐다. B씨는 대전의 한 의료기관에서 숨진 아이를 출산했다고 한다.

재판을 앞둔 A씨는 기소 단계까지 이런 사실을 전해 듣지 못한 것으로 경찰과 검찰은 보고 있다. 재판 준비과정에서 변호인이 알려주지 않으면 이달 말로 예정된 첫 재판(공판준비기일) 때나 숨진 아이가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생후 20개월된 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뒤 아이스박스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A씨(노란색원)가 지난달 14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유치장을 나오고 있다. 신진호 기자

생후 20개월된 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뒤 아이스박스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A씨(노란색원)가 지난달 14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유치장을 나오고 있다. 신진호 기자

경찰은 지난달 17일 A씨를 송치하기 전 검찰과 협의를 통해 이런 내용을 통보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A씨에게 적용된 혐의(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아동학대 살해 및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범행 당시 A씨가 숨진 아이를 자신의 친딸로 알고 있기 때문에 관계가 ‘계부’로 바뀌더라도 법리 적용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검·경, "엄중하게 처벌, 법리적용 차이 없다"

경찰 관계자는 “숨진 아이가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A씨가 진술을 번복할 가능성이 있고 엄중하게 처벌하자는 취지에서 알려주지 않았다”며 “(경찰) 수사팀과 검찰이 협의를 거쳐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지난달 14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전둔산경찰서 유치장을 나오면서 “숨진 아이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폭행했냐”는 물음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는 경찰에서 “생활고로 스트레스를 받아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 기소된 친모 B씨에게는 사체은닉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이들에 대한 첫 재판(공판 준비기일)은 27일 대전지법에서 열린다.

생후 20개월 된 친딸을 학대하다 숨지게 한 혐의(아동학대 살해)를 받는 A(29)씨가 대전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지난달 14일 대전둔산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생후 20개월 된 친딸을 학대하다 숨지게 한 혐의(아동학대 살해)를 받는 A(29)씨가 대전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지난달 14일 대전둔산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 사건의 경우 친딸인지 아닌지가 법리를 적용하는 데는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법적으로 피의자인 A씨에게 유전자 검사 결과를 통보해줄 의무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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