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맘마미아'가 세계 추세…한국 주크박스 뮤지컬도 실험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09 14:00

 2017년 초연하고 올해 세번째 시즌을 공연하는 뮤지컬 '광화문 연가'. [사진 CJ ENM]

2017년 초연하고 올해 세번째 시즌을 공연하는 뮤지컬 '광화문 연가'. [사진 CJ ENM]

주크박스 뮤지컬이 글로벌 흥행을 누리고 있다. 동전을 넣고 번호를 누르면 왕년의 인기음악을 들려주는 음악상자처럼, 흘러간 대중음악을 활용해 무대를 꾸몄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기존의 공연 관객뿐 아니라 소재로 쓰인 추억의 콘텐트를 즐겼던 사람들까지 공연장을 찾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이젠 더 이상 왕성한 활동을 않거나 세상을 등진 뮤지션의 음악적 유산이라면 파괴력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원종원 뮤지컬 평론가 기고
'광화문 연가' '사랑했어요' '미인' 주크박스 뮤지컬 연이어 개막
익숙한 음악에 허구의 드라마 맞추는 '맘마 미아!'식 탈피해야
세계의 뮤지컬은 뮤지션의 진짜 이야기에 주목 중

2000년대 들어 영미권 신작 뮤지컬의 절반 이상은 영화가 원작인 무비컬이거나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너무 많은 작품이 등장한 탓이다. 퀸의 음악들로 꾸민 ‘위 윌 록 유’, 티나 터너의 ‘티나’, 베리 매닐로우의 ‘코파카바나’, 매드니스의 ‘아워 하우스’, 빌리 조엘의 ‘무빙 아웃’, 로드 스튜와트의 ‘투나잇츠 더 나잇’,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핫 피트’, 닐 세다카의 ‘오 캐롤’.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들을 세익스피어의 ‘십이야’에 맞춰 현대로 각색한 ‘올슉업’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흥행이 새로운 음악을 만들려는 뮤지컬 작곡가의 열정을 메마르게 만든다는 볼멘소리도 나오지만, 대중들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는다. 적어도 실험쥐마냥 두 세 시간을 공연장에서 새로운 선율에 시달릴(?) 걱정은 없는 장르적 매력이 사람들의 발길을 당기는 셈이다.

물론 부가가치 극대화라는 면에서도 밑질게 없는 장사다. 이미 대중성이 검증된 콘텐트의 생명력을 재활용하는 복고와 향수 마케팅의 이득 때문이다. 비지스의 음악을 위해 CD를 사는 사람은 드물지만, ‘나잇 피버’나 ‘하우 딥 이즈 유어 러브’가 연주되는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의 10만원 전후의 입장권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수많은 뮤지션들의 음악이 공연가에서 인기를 누리는 배경이자 이유다.

올 하반기, 대한민국에도 이 바람이 불고 있다.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음악들로 꾸민 ‘광화문 연가’(9월 5일까지), 고 김현식의 음악들로 치장한 ‘사랑했어요’(8월 14일~10월 31일), 신중현의 노래들이 나오는 ‘미인’(9월 15일~12월 5일)이 앞다퉈 막을 올린다.

이미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주크박스 뮤지컬은 많다. 김광석 노래가 나오는 ‘그날들’이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동물원과 김광석의 사연이 심금을 울리는 ‘그 여름 동물원’, 1900년대말의 인기 가요들로 꾸민 ‘젊음의 행진’, ‘달고나’, ‘진짜 진짜 좋아해’, 영화가 원작이지만 형식적으론 주크박스 뮤지컬의 재미까지 담아낸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다양하다.

한국의 청중은 주크박스 뮤지컬에 관심이 많다. 역시나 2시간 반동안 새로운 음악만 들으며 모르모트가 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광화문 연가’의 경우 많은 이에게 익숙한 '붉은 노을'을 비롯한 음악으로 2017년 초연부터 사랑 받았다. 이번 세번째 시즌까지 내용을 계속 바꿀 정도로 영리한 연출도 주목할만하다.

하지만 주크박스 뮤지컬의 양적 성장이 질적 성숙까지 보장하진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허구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에 익숙한 음악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주크박스 뮤지컬은 여전히 최고 히트작인 ‘맘마 미아!’ 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랑했어요’와 ‘미인’ 또한 청중이 익숙한 음악을, 완전히 새로 창작한 이야기에 맞춰 넣는다는 공식을 따른다. 세계적 흐름에서 봤을 때 초창기 ‘맘마 미아!’식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한국에서 2019년 공연됐던 뮤지컬 '맘마 미아!'. 런던에서 2001년 초연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사진 신시컴퍼니]

한국에서 2019년 공연됐던 뮤지컬 '맘마 미아!'. 런던에서 2001년 초연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사진 신시컴퍼니]

2001년 런던 웨스트엔드 극장가에서 막을 올린 이후, ‘맘마 미아!’는 전세계 50여개 국가에서 공연되는 메가톤급 흥행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이 뮤지컬을 본 글로벌 관객 수는 무려 6500만명이 넘는다. 왕년의 인기 음악을 쓴 무대용 뮤지컬은 1980년대부터 인기였다. 록앤롤 스타인 버디 홀리의 ‘버디’, 셰익스피어 ‘템페스트’를 SF 형식으로 재구성한 영화 ‘금단의 별’에서 만든 뮤지컬 ‘리턴 투 더 포비든 플래닛’가 있었다.

‘맘마 미아!’는 ‘최초’가 아닌 ‘최고’의 흥행작이었다. 스무살 소피를 혼자 키운 마흔살 도나, 아버지일지 모르르 세 남자가 벌이는 결혼식 소동이다. 노랫말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마치 원래 이 이야기를 위해 아바의 노래들이 만들어졌던 것처럼 기발한 내용을 효과적으로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맘마 미아!’에겐 또 다른 별칭이 존재한다. ‘뮤지컬계의 대재앙(disaster)’이란 평가다. ‘맘마 미아!’의 기발한 스토리와 음악 전개, 특히 원곡의 가사를 거의 변화시키지도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아이디어는 그 스스로에겐 기념비적 성과이자 뛰어난 아이디어였지만, 이후 등장한 수많은 주크박스 뮤지컬들의 억지스런 스토리나 극 전개를 가져온 비극의 단초가 됐다는 비판이다. 빈약하거나 허술한 극 전개는 평단으로부터 성토의 대상이 됐고, 결국 주크박스 뮤지컬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인식되는 결과마저 불러왔다.

김현식의 노래를 사용하는 주크박스 뮤지컬 '사랑했어요' 2019년 공연 장면. [사진 호박덩쿨]

김현식의 노래를 사용하는 주크박스 뮤지컬 '사랑했어요' 2019년 공연 장면. [사진 호박덩쿨]

흥미로운 것은 이때부터 시도된 무대의 진화다. 주크박스 뮤지컬이 왕성히 제작되면서 무대는 ‘탈(脫) 맘마 미아!’를 화두로 삼았고, 어떻게 하면 더 자연스럽게 왕년의 인기 대중음악을 무리없이 무대로 승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도전들을 모색했다. ‘제 2의 맘마 미아!’보다 또 다른 ‘맘마 미아!’를 창조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과 실험들이 시작된 셈이다.

다큐멘터리 기법의 활용은 그래서 얻어진 성과 중 하나다. 원래 뮤지션의 ‘진짜’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내 자연스레 풍성한 스토리를 얻어내는 방법이다. 무대적 기법인 독백이나 방백은 마치 텔레비전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는 밀실 인터뷰처럼 관객들에게 뒷이야기나 내면의 생각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유명한 노래의 탄생에 얽힌 비화를 알려줌으로써 익숙하지만 다시 곱씹어 즐길 수 있는 재미를 담아냈다.

덕분에 ‘저지 보이스’를 보면 유명한 노래 ‘캔트 테이크 마이 아이스 오프 유’에 포 시즌스 리드 보컬인 프랭키 벨리와 마약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등진 그의 딸 프랜신에 얽힌 사연이 반영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밀리언 탈러 쿼테트’를 보면 멤피스의 선 스튜디오에서 마지막 앨범을 녹음하던 날 앨비스 프레슬리와 조니 캐시, 칼 퍼킨스 그리고 레리 리 루이스에겐 어떤 사연들이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한국 올드팝 팬들이 좋아하는 캐롤 킹의 ‘유브 갓 어 프렌드’는 사실 작사가이자 바람둥이였던 남편 제리 고핀과 헤어지던 날, 뉴욕을 떠나 LA에서 새 출발을 하며 자신의 오랜 고통을 지켜봤던 경쟁자이자 친구인 신시아 웨일과 베리 맨을 위해 만들었던 노래였다는 사실은 주크박스 뮤지컬 ‘뷰티풀’을 보면 탄성을 내뱉게 되는 최고의 묘미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파괴력이 더 커진다면, 그건 ‘탈 맘마 미아!’ 노력의 성과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한국의 주크박스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K팝의 인기와 글로벌한 흥행은 우리에겐 기분좋은 성과인 동시에 새로운 과제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한류의 효과적인 확장을 위한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관건은 ‘탈 맘마 미아!’의 시대적 조류를 우리 무대에선 어떻게 그리고 과감히 시도할 것인지의 여부다. 유명 대중음악을 활용하는 것은 그저 모티브이자 시발점에 불과하다. 다양한 실험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전제 조건이자 철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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