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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그곳…"북한군 넋까지 위로" 위령제

중앙일보

입력

지난 2011년 육군 제2작전사령부 장병들이 낙동강을 건너 오는 북한군에 맞서는 낙동강 전투장면을 재연하는 모습. 낙동강전투는 다부동전투 등 1950년 8~9월 낙동강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다. 중앙포토

지난 2011년 육군 제2작전사령부 장병들이 낙동강을 건너 오는 북한군에 맞서는 낙동강 전투장면을 재연하는 모습. 낙동강전투는 다부동전투 등 1950년 8~9월 낙동강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다. 중앙포토

경북의 한 시골 마을 주민들이 6·25전쟁 당시 희생된 국군과 북한군의 넋을 함께 기리는 제를 지냈다. 이 마을 인근에서 벌어진 328고지 전투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9일 칠곡군 등에 따르면 지난 8일 석적읍 망정1리 주민들은 마을 앞 남산 일대(328고지)에서 '328고지 위령제'를 열었다.

위령제는 경기민요 57호 전수자인 민진기 선생의 영혼을 달래는 공연을 시작으로 윤병규 망정1리 이장 초헌례와 배석운 칠곡향교 독축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주민들이 328고지 위령제를 지내는 모습. 경북 칠곡군

주민들이 328고지 위령제를 지내는 모습. 경북 칠곡군

윤병규 이장은 "마을 주민들에게 328고지는 슬픔이자 아픔"이라며 "국군은 물론, 전쟁으로 이곳에서 산화한 북한군까지 마을에서 마련한 위령제로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망정1리 마을 앞에 있는 328고지는 1950년 8월 13일부터 24일 사이 국군 1사단과 북한군 3사단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국군 1만여 명, 북한군 1만7000여명이 산화했다.

당시 능선 계곡은 온통 피로 물들었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국군, 북한군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망정1리 주민들도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탄약, 식량 등의 군수물자를 지게에 짊어지고 328고지에 있던 국군에게 전달했다. 이후 인근 지역에서는 망정1리를 '호국마을'로 부른다.

328고지 일대에서 유해와 함께 발굴된 삼각자와 호루라기. 경북 칠곡군

328고지 일대에서 유해와 함께 발굴된 삼각자와 호루라기. 경북 칠곡군

 328고지 일대에서 유해와 함께 발굴된 삼각자와 호루라기. 경북 칠곡군

328고지 일대에서 유해와 함께 발굴된 삼각자와 호루라기. 경북 칠곡군

칠곡군에 따르면 이렇게 치열한 전투, 참혹했던 328고지의 전투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2000년 328고지 일원에서 총상 입은 한 국군의 유해가 삼각자와 만년필, 호루라기와 함께 발굴됐다. 삼각자엔 손으로 새겨 넣은 '최승갑'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해발굴단은 이름을 단서로, 유족인 원정호(당시 75세) 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는 남편이 휴가 나왔을 때, 목에 차고 나왔다는 호루라기 이야기를 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강제규 감독은 바로 이 328고지 관련 이야기를 각색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제작했다고 한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328고지 위령제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을 채 알기도 전에 이름 모를 능선에서 산화한 영혼을 모신 자리"라며 "적이라도 천리 타향에서 산천을 방황하는 영령들이 고이 영면할 것을 기원하는 게 호국 평화 도시의 도리라고 본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촬영된 사진.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마련된 고(故) 백선엽 장군 분향소를 찾은 6·25참전용사 송익선(95)옹. 백 장군을 향해 거수경례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7월 촬영된 사진.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마련된 고(故) 백선엽 장군 분향소를 찾은 6·25참전용사 송익선(95)옹. 백 장군을 향해 거수경례하고 있다. 뉴스1

칠곡군은 328고지에 호국 탐방로를 개설해 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울 예정이다.

칠곡은 6·25 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다. 다부동 등 전적지가 곳곳에 있다. '호국의 고장'이라는 슬로건을 쓸 만큼 국가관, 보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6·25 전쟁영웅' 고(故) 백선엽 장군에 대한 팬심이 가득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백 장군이 지난해 서울에서 별세하자 '백선엽 장군님을 추모합니다'라고 쓴 현수막 수십 개가 읍내에 내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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