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치료 못 받을까봐 거짓말했다가 골든타임 넘긴 환자들

중앙일보

입력 2021.08.09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77)  

환자의 골든타임을 놓친 죄는 무겁다. 의료소송으로 번지지 않더라도 잘못을 묵과할 수는 없다. ‘질병률 및 사망률 회의(Morbidity and Mortality conference)’. 의학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회의. 환자의 치료과정에서 발생한 예기치 못한 합병증이나 사망 사건에 대해 의사들이 토의하는 자리다. 누굴 탓하고 처벌하려는 자리가 아니다. 원칙적으로는. 그저 증례를 세세히 돌아보고 향후 비슷한 상황에서 더 나은 진료를 해보자는 취지일 뿐.

그렇다고 M&M 컨퍼런스의 대상이 된 의사의 마음이 편할 리는 만무하다. 지식과 경험이 월등히 높은 선배 의사들 앞에서, 나의 진료 과정이 시간대별로 속속들이 발가벗겨지니까. 더구나 이미 일어난 사건을 역행적으로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사소한 오류 하나까지 탈탈 털릴 게 뻔하다. 아무래도 이런 서양식 문화는 적응이 쉽지 않다. 자고로 사소한 허물은 덮어주고 넘어가거나, 뒤에서 조용히 얘기해주는 게 우리네 미덕이 아니던가.

하지만 내가 싫어도 역사는 굴러간다.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맡은 이상 불평이 통용될 리 없다. 그러니 그저 적응하는 수밖에. 좋건 싫건 M&M 컨퍼런스는 오늘도 진행된다. 초진을 맡았던 의사가 재판대에 올랐다. 낯빛이 잿빛이다. 많은 선후배, 동료 의사가 배심원이었다. 이윽고 진료 과정이 낱낱이 파헤쳐졌다. 그의 잿빛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못내 억울한 모양이다. 자신의 무죄를 전력으로 항변했다.

뇌졸중은 제때 치료받느냐가 생사를 가르고 예후를 결정하기 때문에 응급실에서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질병 중 하나다. [사진 pxhere]

뇌졸중은 제때 치료받느냐가 생사를 가르고 예후를 결정하기 때문에 응급실에서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질병 중 하나다. [사진 pxhere]

뇌졸중은 시간 싸움. 제때 치료받느냐가 생사를 가르고 예후를 결정한다. 치료가 늦으면 평생 장애가 남는다. 그 때문에 뇌졸중은 응급실에서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질병 중 하나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조그만 단서에도 뇌졸중을 의심하고, 그로 말미암아 환자의 시간을 구하도록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자다. 따라서 뇌졸중 환자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건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이다.

“몇 번이나 물어봤어요. 정확한 시간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고요. 그렇지만 환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습니다. 시종일관 증상 발생 시각이 어제 저녁이라고 했단 말입니다.”

그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환자는 확실히 그렇게 말했다. 환자가 거짓을 진술했다. 불과 한 시간 전 새로 생긴 증상이었는데, 다행히 그는 결정적 치료가 가능한 시간에 응급실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이후 문제가 생겼다. 의사에게 증상 발생 시각을 속인 것이다. 원래라면 최고 수준의 위급도를 배정받아야 했는데, 잘못된 말 한마디에 그는 가장 낮은 순번표를 배정받았다. 그 결과 의사들의 손길은 덜 급한 환자에게 먼저 돌아가고 말았다.

응급실에선 강력하게 어필하지 못하면,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되기 쉽다는 항간의 소문이 문제였다. 아픈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면 의료진이 신경을 덜 써줄까 봐, 오래전부터 아팠노라고 시간을 과장한 것이다. 오판의 대가는 컸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선택에 환자는 오열했다. 안타깝게도.

물론 환자가 잘못했다고 반대로 의사가 잘한 건 아니다. 어쨌든 그는 환자를 구할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무거운 자책감과 씨름했다. 그런데도 동료들은 잔인했다.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그에게 날카로운 비수를 던졌다.

“환자가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질문을 구성했어야지.”
“왜 단 한 번도 거짓말을 의심하지 못했냐?”

실제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모두가 뻔히 알지만, 그렇다고 안타까운 결과를 묻고 넘어가기에는 의사라는 명함이 너무 무거웠다.

그런 연유로 멘탈이 조각난 의사가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겠는지 숙제를 부여받은 의사가 있다. 오래전 일이다. 늦었지만 묵은 과제를 이제 마무리하려 한다.

뇌졸중처럼 금방 생긴 증상일수록 위급한 질병이 있지만, 반대로 탈장 괴사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다급해지는 질병도 있다. 통증의 강약도 중요하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을 과장해서 표현하다 복통의 원인이 요로결석으로 분류되면? 위급도는 오히려 낮아진다. 의료진 심기를 건드리면 대접받지 못할까 봐 아픈 것을 굳이 참는 것은? 당연히 미련한 짓이다. 심근경색은 통증의 강도가 질병의 중증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단지 몇몇 사례일 뿐, 응급실을 찾게 되는 수많은 질환은 모두 다른 특성이 있다. 이를 환자들이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취해야 할 전략은 단 하나다. 조금이라도 정확한 정보를 가감 없이 의료진에게 전달하는 것. 과장하지 말고 그렇다고 축소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판단에 혼선을 주지 않도록. 그렇게 해서 안타까운 M&M 컨퍼런스 사례가 줄었으면 좋겠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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