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43화. 카르타 마리나

중앙일보

입력

온갖 괴수 날뛰는 옛 바다 탐험 안내서

1539년 올라우스 마그누스가 펴낸 ‘카르타 마리나’. 수많은 괴물로 가득한 해도를 보면 과거의 사람들이 생각한 바다의 모습을 떠 올리게 된다. 바이에른 국립도서관

1539년 올라우스 마그누스가 펴낸 ‘카르타 마리나’. 수많은 괴물로 가득한 해도를 보면 과거의 사람들이 생각한 바다의 모습을 떠 올리게 된다. 바이에른 국립도서관

여기 한 장의 지도가 있습니다. 카르타 마리나 엣 데스크립티오 셉텐트리오날리움 테라룸(Carta marina et descriptio septentrionalium terrarum, 북부 지역의 영토를 표시한 해도), 줄여서 카르타 마리나(Carta marina)라고 부르는 이 지도는 16세기 스웨덴의 교회에서 북유럽 인근 지역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었죠.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를 비롯해 다양한 자료를 모으고, 자신의 경험과 선원들의 설명을 덧붙여서 이 지도를 완성하는 데는 자그마치 12년이 걸렸다고 해요. 1539년 베네치아에서 인쇄되었지만, 오랜 기간 잊혔다가 19세기 말에야 한 도서관에서 사본을 찾아 소개됐습니다.

16세기에 그것도 옛날 자료와 남의 설명만 모아서 만들었다는 것으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 지도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지도 곳곳 바다에 가득한 괴물의 모습이죠. 물론, 지도의 육지에도 온갖 동물이나 가축이 있습니다. 그 동물을 잡는 사냥꾼이나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표현돼 있고요. 바이킹의 전통대로 배를 육지로 옮기는 모습이나, 얼어붙은 바다를 썰매로 건너는 모습처럼 다양한 삶의 모습이 등장해서 참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육지 동물보다는 바다에 가득한 독특한 괴물들이 눈에 띄죠.

바다를 건너는 배들은 소용돌이에 휘말릴 뿐 아니라 괴물에 습격당하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배를 칭칭 감쌀 정도로 큰 바다뱀이나 배를 한입에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한 용도 있죠. 물론 한 괴물이 다른 괴물을 공격해서 잡아먹거나, 거대한 괴물이 서로 대치하여 맞서는 ‘괴수 대전’을 연상케 하는 장면도 있어요. 육지의 호수에도 뱀을 잡아먹는 커다란 새 같은 괴물이 있지만, 바다의 그들은 육지의 맹수나 괴물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하며 위협적입니다. 그야말로 ‘괴수’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느낌이죠. 육지는 사람들의 삶으로 가득 차 있지만, 바다는 배보다도 괴수로 넘쳐나는 지도. ‘해도’라고 이름 붙였지만, 바닷길이나 육지 모습보다도 바다의 괴수가 더 눈에 띄는 지도. 이 지도는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바다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줍니다.

이 지도가 만들어진 16세기 초반은 탐험의 시대였습니다. 마젤란이 지구 일주에 성공한 지 불과 20년도 되지 않은 시기, 아즈텍이나 잉카 제국 같은 ‘신대륙’이라 불리는 세계의 거대 왕국들이 멸망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정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시기였죠. 콜럼버스의 항해로부터 100여 년이 지났으니 바다에 익숙해질 법도 하겠지만, 마젤란의 모험만 봐도 결국 마젤란 자신은 이국의 땅에서 숨지고 말았을 정도로 위험한 시대. 바다는 아직 모험과 희망보다도 절망과 공포로 가득한 세계였습니다. 그것은 콜럼버스보다도 500년 앞서 아메리카를 발견한 바이킹의 후예라도 마찬가지였겠죠.

물론, 이 지도의 제작자인 올라우스 마그누스가 성직자로 평생 교회에 살면서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이 부풀어 올랐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무엇보다 뱃사람이라는 건 과장을 좋아하기도 했죠. 낚시꾼들이 놓친 고기 얘기를 남에게 할 때마다 크기가 계속 늘어나듯, 뱃사람이 바다의 온갖 일들을 얘기할 때 과장이 뒤섞이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바다에는 육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동물이 살아갑니다. ‘가랑잎 타고 바다를 건너던 코끼리와 고래가 결혼한다’라는 노래가 있지만, 사실 둘의 체격을 비교할 때 도저히 무리죠. 크기가 15m에 이르는 대왕오징어로부터 ‘크라켄(Kraken)’이란 괴물을 상상해낸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이처럼 바다에 대한 상상이 넘쳐나기에 다채로운 괴물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죠. 그야말로 생생한 북해의 모험을 즐기기에 충분한 지도입니다. 지도는 사실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정확한 지도 하나만 있으면 나라를 점령하긴 쉽다’라고 하듯, 전쟁에서는 정말로 중요하게 쓰이죠. 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를 담은 자료이자,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는 자료이기도 해요. 온갖 괴수가 가득하면서도 당대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이 담겨 있는 카르타 마리나는 즐거운 모험의 지표로서도 충분한 자료입니다.

“그리스인이나 라틴인에게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매우 기이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제시하는, 게르만 바다 너머에 있는 북유럽 한랭지의 지도를 더 자세히 설명하는 작은 책”이라는 소개처럼, 생생하고 즐거운 설명서이기도 하죠. 카르타 마리나는 바이에른 국립도서관에서 공개해 온라인으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데다 코로나19로 쉽게 외출하기 어려운 지금, 이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수많은 신비로 가득했던 옛사람들의 바다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