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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땀 눈물’에 뭉클했다…‘4위'도 주인공, 이게 올림픽 정신

중앙일보

입력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단 중 4위를 기록한 선수들. 시계방향으로 다이빙 우하람, 높이뛰기 우상혁, 탁구 남자 단체 장우진·이상수·정영식, 배구 대표팀, 체조 류성현, 근대5종 정진화. 뉴스1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단 중 4위를 기록한 선수들. 시계방향으로 다이빙 우하람, 높이뛰기 우상혁, 탁구 남자 단체 장우진·이상수·정영식, 배구 대표팀, 체조 류성현, 근대5종 정진화. 뉴스1

“기록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감을 드렸을까 봐 그게 가장 염려가 된다.”
‘한국 역도의 전설’ 장미란이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4위를 기록한 뒤 눈물을 보이며 한 말이다.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는 국민 영웅으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성적을 가장 먼저 걱정한 것이다.

메달 못 따도 '4위'에 열광한 올림픽 응원

9년 이 지나 열린 2020도쿄올림픽의 풍경은 그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노메달’이라는 이유로 고개를 숙이는 선수들에게 “괜찮아”라는 위로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꼭 금빛 메달을 목에 걸지 않아도 선수들이 보여준 ‘피·땀·눈물’에 팬들은 열광했다.

“응원 덕에 우울해질 틈이 없었다”

역도 국가대표 김수현이 1일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76kg급에서 인상 1차 시기 성공 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도 국가대표 김수현이 1일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76kg급에서 인상 1차 시기 성공 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팬들의 이런 반응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메달리스트가 되지 못한 선수들도 느끼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박수갈채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스포츠 클라이밍 서채현(18), 육상 높이뛰기 우상혁(25), 다이빙 우하람(23) 선수 등은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지만,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들은 ‘기대주’로 평가받았다.

바벨을 들어 올렸으나 판정으로 동메달을 놓친 역도 김수현(26) 선수에게는 배우 이동휘(36) 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공개 응원을 했고 비슷한 격려가 잇따르고 있다. 김 선수는 “국민 여러분이 저를 알아봐 주시고, 제가 드는 것 하나하나에 응원을 보내줬다”며 “‘노력을 알고 있다’며 응원해준 덕에 (경기에 진 뒤에도) 우울해질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4위’도 주인공 된 올림픽…“관심에 감사”

2020 도쿄올림픽 '4위'를 기록한 선수들. 왼쪽부터 속사권총 한대윤, 유도 윤현지, 역도 한명목, 유도 김원진 선수. 연합뉴스

2020 도쿄올림픽 '4위'를 기록한 선수들. 왼쪽부터 속사권총 한대윤, 유도 윤현지, 역도 한명목, 유도 김원진 선수. 연합뉴스

이번 올림픽에서는 간발의 차로 메달을 아깝게 놓친 ‘4위’는 1위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한국 선수 최초로 25m 속사권총 결선에 진출해 4위에 오른 한대윤(33) 선수는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축하를 받아본 적 없어서 부끄럽지만, 감사함이 정말 크다”며 웃었다. 그는 “생소한 종목에 많은 관심 보여주셔서 감사하고 그 관심 속에서 또 선수들이 성장해나가겠다”며 “저 말고도 많은 선수들이 있다. 함께 다음에는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배한 뒤 눈물을 쏟았던 유도 여자 78㎏급 윤현지(27) 선수는 “SNS로 연락이 많이 와서 놀랐다”며 “메달을 못 땄는데도 관심을 주고 응원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일일이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다. 그 기운 받아서 다음에는 꼭 시원하게 이기는 경기를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1㎏ 차이로 올림픽 시상대에 서지 못한 역도 한명목(30) 선수는 두 번째 출전한 이번 올림픽의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하고 있었다. 한 선수는 “SNS로 응원하는 팬 메시지가 지난 올림픽보다 많았다”며 “‘수고했다’ ‘잘했다’는 메시지가 많이 와서 큰 힘이 됐다. 그렇게 응원해주셨는데 메달 못 딴 건 여전히 죄송하지만, 내년 아시안게임에서는 반드시 아쉬움 없이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연장전 끝에 동메달을 놓친 유도 김원진(29) 선수는 “이전에는 금메달에 기대하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이제는 메달과 관계없이 격려해주신다”며 “성적을 떠나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으로 응원해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응원을 받으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다음 올림픽 등 계속 도전해보겠다”고 덧붙였다.

‘피·땀·눈물’은 같으니까…꼴찌도 괜찮아 

1일 일본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농구 조별리그 A조 3차전 한국과 세르비아의 경기.   한국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일본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농구 조별리그 A조 3차전 한국과 세르비아의 경기. 한국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도쿄올림픽을 통해 성적이 ‘꼴찌’이더라도 온 힘을 다했다면 그 자체로 찬사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공론화되는 모양새다. 사상 첫 올림픽 본선 무대에 올랐지만 ‘5전 5패’를 기록한 남자 럭비대표팀 주장 박완용(37) 선수는 “전패했어도 기죽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데 감사하다”며 “올림픽은 끝났지만, 다음 대회가 또 기다리고 있다. 그때는 반드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조별리그에서 3연패를 당해 A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친 여자 농구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강이슬(27) 선수는 “올림픽 이전까지는 관심과 응원이 부담일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농구를 몰랐던 사람들까지도 응원해준다는 점이 크게 와 닿았다. 감사했다”고 말했다.

패배는 여전히 쓰라린 기억이다. 하지만, 팬들의 응원이 다음을 위한 원동력이 됐다. 강 선수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싫어한다. 승패가 정해져 있는 스포츠에서 어쨌든 진 것 아닌가”라며 “이번 올림픽은 아쉬움이 남지만, 응원이 많은 힘이 됐다. 앞으로도 여자 농구를 지켜봐 주면 좋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체육교육)는 “도쿄올림픽에서 스포츠를 개인 성취로 보는 인식이 선수뿐 아니라 국민에게도 두드러졌다”며 “금메달 개수 등으로 국가 순위를 따지는 옛날 방식을 빨리 탈피하는 게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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