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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민주당은 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 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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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이하경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이제는 성인이 된 딸이 유치원생일 때 회사로 편지를 보내왔다. “아빠 밤중에 일찍 들어오세요”라고 삐뚤삐뚤 적었다. 젊은 시절, 기자는 ‘밤에만 오는 손님’이었다. 새벽에 집을 나갔고 자정이 지나야 귀가했다. 예고 없는 사건·사고의 현장은 늘 어수선하다. 정리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발로 뛰고, 눈으로 보고, 물어서 확인한 ‘원초적 팩트’로 승부하는 전쟁터였다. 타사 동업자들에게 패배하면 선배들은 “눈 좀 뜨고 다녀라” “멍청한 것 같다”고 눈을 부라렸다.

여당 징벌적 언론법 개정은 무리 #권력 감시 취재 제동…불의 확산 #박종철·최순실 보도 불가능해 #약자에게 피해, 민주주의 위축될 것

그래도 정신은 늘 맑았다. 사익(私益)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외롭지만 불의를 감시하는 공익(公益)의 수호자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1974년 닉슨 미국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과 2년 전에 만나 대화했다. 70대 후반인 그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나쁜 악마들이 뭘 숨기고 있을까를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 기자의 심장도 우드워드처럼 펄떡펄떡 뛰고 있다. 불의(不義)의 단서를 포착했을 때 정의감으로 무장한 기자는 지옥 끝까지 추적해 세상을 바꾼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역사를 만든다.

더불어민주당은 징벌적인 언론법 개정을 8월 중에 밀어붙이려 한다. 허위·조작보도에는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금을 물리고, 인터넷 기사에 대해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권력과 사회적 강자에 대한 공격적 취재가 위축된다. 불의와 부패가 확산되고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 김현 전 대한변협 회장 등 법조인들은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은 민주주의를 위축하는 효과를 수반하기 때문에 그 제한은 필요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고 비판했다.

만일 징벌적인 언론법이 존재했다면 지금의 민주당 전성기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된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박근혜 정권의 비선 국정농단을 폭로한 JTBC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박종철 사건은 1987년 1월 14일 중앙일보 사회부 신성호 기자가 특종 보도했다. 금창태 편집국장 대리가 돌아가는 윤전기를 세우고 정권을 뒤흔들 위험천만한 기사를 밀어넣었다. 전두환 정권은 고문치사를 부인했다.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이두석 사회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 중 “검찰이 가혹행위로 인해 숨졌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 중”이라는 내용을 문제삼고 “오보에 책임지라”고 압박했다.

다행히 동아일보의 남시욱 편집국장, 사회부 황호택·황열헌 기자가 필사적으로 후속 보도에 나섰다. 의사 황적준·오연상, 검사 최환의 위험을 무릅쓴 결단과 양심적 증언이 가세해 사건 전모가 드러날 수 있었다. 징벌적인 언론법이 있었다면 이 사건은 우드워드가 말한 ‘나쁜 악마들’에 의해 성공적으로 은폐됐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언제나 위험하다. 사실로 최종 확인되기 전까지는 압도적인 힘을 지닌 권력과 대결해야 한다. “오직 사실로 말한다”는 기자의식과 ‘공익의 수호자’라는 정의감이 흔들리면 취재는 그걸로 끝이다.

여권이 징벌적 언론법 개정을 강행한다면 권력을 겨냥하는 언론의 정의감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공동체의 치명적인 손실이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권력자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나 비판적 여론을 위축시키고자 배상금 청구소송을 남발할 가능성이 불 보듯 뻔하다”고 했다. 이렇게 불온한 카드를 꺼낸 이유는 한 가지다. 언론이 자신들에게 비판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권이 마지막 선을 넘기 전에 숙고할 점이 있다. 소득주도 성장, 부동산, 탈원전…. 어느 정책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내로남불의 조국 사태는 정권의 도덕성까지 흔들었다. 이런데도 언론이 용비어천가를 부른다면 ‘나쁜 악마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언론법 개정은 내년 대선과 대통령 퇴임을 앞두고 정권 비판과 국민의 알 권리에 족쇄를 채우기 위한 무리수다. 오영우 문화체육부 1차관도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 “전례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여권 주자들은 “5배 배상은 약하다. 악의적 가짜뉴스를 내면 망하게 해야 한다”(이재명 경기지사), “현직 기자였으면 환영했을 것”(이낙연 전 대표)이라고 했다.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갈등의 현재화(顯在化)’가 필요하다.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지를 드러내고 논쟁해야 한다. 그런데 여권의 언론법 개정안은 비판적 보도를 봉쇄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고 한다.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21조 위반이다. 권력 비판을 포기하는 순간 언론인은 전체주의 국가의 ‘보도일꾼’으로 전락한다.

언론이 권력의 총애를 받는 앵무새가 되면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다. 미화된 가상현실을 사실로 착각하는 우민(愚民)이 존재할 뿐이다. 민주당은 고통받고 피흘려 민주화를 성취해 놓고 왜 어둠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