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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강재섭의 조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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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조용히 지낸 지 10년이 넘었는데….”
수화기 너머의 그가 주저했다.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로, 2007년 이명박(MB)·박근혜 대통령 후보 경선을 관장했다. 당시 백병전이었다. ‘경선 승리=대선 승리’였으니 말이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보다 더했다. 그는 성공했다. 동시에 실패도 했다. 정권교체를 했으나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다. 친이도, 친박도 그를 경원시했다. 2011년 분당을 보궐선거 이후엔 정치권에서 물러났다. 이른바 ‘자기 성공의 희생자’였다.

야당 대표ㆍ대선주자 갈등 부각에 # “대표를 믿고 너무 헐뜯지 말고 # 대표도 말 줄이고 후보 풀어줘야”

침묵해 온 그에게 연락한 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 측의 신경전을 보면서다. 이 대표가 토요일이던 지난 7일 오후 8시 페이스북에 “경선준비위의 일정을 보이콧하라고 사주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지만 캠프가 초기에 이런저런 전달체계 상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캠프가 추가 반박이 없으면 이쯤에서 불문에 부치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실제 ‘불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불편함이 역력했다.

지난 4일 당 경선위가 마련한 용산 쪽방촌 봉사활동에 윤석열·최재형·홍준표·유승민 후보가 불참한 건의 여진이었다. 이 대표가 불쾌해하자 윤 후보 측에서 “멸치·고등어·돌고래는 생장조건이 다르다”(정진석 의원)고 반박했고, 윤 후보 측의 부인에도 윤 후보 측이 보이콧을 종용했다는 보도까지 나왔었다.

원래 대선 정국에서 당 대표와 경선 후보들 사이엔 긴장이 흐른다. 국민의힘이 이례적인 건 후보들에 대한 공개적인 이 대표의 직격이다. 이에 비해 자신에 대한 비판은 강하게 뿌리친다. 사실 이번 건은 당에도 책임이 있다. 경선준비위와의 관련성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벤트’를 하며 후보들과 사전 조율도 없었다니 말이다. 결과적으론 후보들 간 경쟁 대신 대표·후보들 간 관계만 부각되고 있다. 대표에겐 모르나 정작 후보들에겐 불리한 구도다.

강재섭 , 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캐리커처 [ 김회룡 기자 ]

강재섭 , 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캐리커처 [ 김회룡 기자 ]

“꼰대들이 나와서 쓸데없는 얘기를 한다고 할 텐데….” 강 전 대표가 주저하며 말을 이었다. “(당시 후보들 진영에서) 대표는 안중에 없었다. 저 사람들과 나중에 원수지더라도 역사적 사명이니까 내 식대로 끌고 가야 했다.” 그래서 도입한 게 전국 순회 토론과 국민검증위였다. 요새 여야 모두 하거나 거론하는 방식이다. 그가 ‘내 식대로’라고 했지만, 후보들과 계속 줄다리기했고 양해(또는 양보)도 받았다.

그는 당부했다. “이 대표가 우리와 전혀 다른 코드에서 일하니 그걸 믿고 너무 헐뜯으면 안 된다.” 그러곤 이런 말도 했다. “지금의 후보들은 그때처럼 막강한 후보가, 어느 정도 안정된 후보가 아니다. 골프로 치면 MB나 박근혜는 연습장에서 연습하고 필드에도 나가 최소한 보기 플레이(홀당 기준타보다 한 타 더 치는 것) 정도는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핸디캡(일종의 평균 타수)은 믿을 수 있는 거였다. 지금 후보들은 소문엔 윤석열은 싱글이고, 최재형은 보기 플레이어라는데 전부 연습장에서나 그런 거고 필드 경험이 없다. 지금 노상 뒤땅 치고 그러는 것이다. 한두 달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잘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나온 고언은 이랬다. “이 대표가 (후보들) 부족한 얘기는 사적으로 하면 좋겠다. 너무 밖으로 얘기를 많이 한다. 방향을 잡아주는 일을 해야지, 본인이 말을 많이 하면 안 된다. 후보들 각자 개성을 살리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다 자신의 품 안에 넣으려고 하면 안 된다.”

강 전 대표와의 통화를 끝내며 오히려 궁금해졌다. 이 대표는 스스로 “후보들이 빨리 활동할 공간을 만들어주려고 했던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게 후보들이 원하는 공간이었나.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했는데 판단에 오류는 없나. 리더십엔 세기(細技, 세심하게 다루는 기술)가 있나. 정권교체의 주역이 당 이상으로 후보란 사실을 인정하는가. 진정 대선 체제 속 당 대표의 운명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