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광석의 퍼스펙티브

집단면역 집착 말고 코로나 공존 속 접종 늘려야

중앙일보

입력 2021.08.0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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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힘들어진 집단면역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송파체육문화회관 백신접종센터 이상 반응 모니터링 구역에서 대기하는 접종자들. 8일 한국의 백신 접종 완료율은 15%로, 38개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송파체육문화회관 백신접종센터 이상 반응 모니터링 구역에서 대기하는 접종자들. 8일 한국의 백신 접종 완료율은 15%로, 38개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예방 접종 선도국에서는 국민의 약 60%가 접종하여 ‘집단면역’에 근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접종 이전 수준으로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팬데믹이 시작되자 전문가들과 보건 당국은 집단면역에 암묵적으로 기대를 걸었고, 대중들도 집단면역에 도달하면 전염병은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코로나 집단면역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다.

변이 등장 등으로 최소 80% 접종해야 집단면역 가능
지역적 집단면역은 독감처럼 풍토병 돼 재출현 반복
코로나보다 치명적인 스페인 독감을 감기로 길들였듯
코로나와 공존하며 백신 접종률 높여야 정상 생활 복귀 가능

집단면역이란 집단 내 구성원 상당수가 면역을 보유하게 되면 병원체가 사라지면서 집단 내 비면역자까지도 모두 보호된다는 개념이다. 1970년대에 체계화된 집단면역 이론은 집단 내 면역력의 균등한 분포, 사람들의 무작위적 섞임, 그리고 병원체가 인간만 감염하며 면역 회피를 위해 진화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불균등한 백신 분배, 변이체 탄생, 그리고 다양한 동물의 감염이 일어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보듯 그러한 조건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집단면역에 도달하는 한계점은 병원체의 전염성에 달려 있다. 전염성은 인구 밀도, 인간 행동, 백신 효능 지속 기간, 변종 출현 등 변수에 따라 지속해서 변한다. 홍역은 전염성이 높아 집단면역 한계점이 95%에 달하며, 코로나19의 경우 과학자들은 팬데믹 초기 버전 코로나19의 전염성에 근거하여 한계점을 60~70%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는 에어로졸 전파, 고온다습한 환경 극복 능력, 그리고 높은 전파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바이러스 고유의 특성과 더불어 백신 거부, 아동·청소년의 백신 미접종, 변이체의 출현으로 과학자들은 이제 집단면역 한계점을 최소 80%로 추산하고 있다. 과연 집단면역 한계점인 80%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살펴본다.

백신 접종 불균등은 집단면역 위협

국가·지역·나이별 백신 접종의 불균등은 한계점을 상승시켜 집단면역 달성을 위협한다. 이스라엘은 60%가 접종을 완료했지만, 이웃인 시리아·이집트는 1% 접종률에 그치고 있다. 수십 개 국가에서는 전혀 백신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백신을 구하지 못해 고충을 겪는 나라들과는 대조적으로 서구 사회에서는 백신 불신이 집단면역의 장애물이다. 미국·러시아·프랑스는 각각 인구의 30%, 60%, 30%가 백신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별로도 접종률에 큰 차이가 나며, 접종률이 50%에 머물러 있다.

백신 보급은 보통 나이별로 계층화되어 있으며, 고위험군인 고령자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아동·청소년은 감염 증상이 가벼우며, 윤리적 차원에서 임상시험과 접종에서 제외된다.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아동·청소년에게 접종을 할 수 없다면 집단면역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성인이 접종을 받아야 한다. 성인 모두가 접종해도 상향 조정된 한계점인 80%에 가까스로 도달할 수 있다. 아동·청소년의 미접종 요인만으로도 집단면역이 어려운 셈이다. 성인 대부분이 접종한 이후에는 아동·청소년들이 본의 아니게 코로나19 온상 역할을 할 것이다.

백신은 변종 출현 촉발

새로운 변이체의 탄생도 한계점을 상승시킨다. 백신은 불가피하게 변종을 생산하는 새로운 진화적 압력을 만들어낸다. 변이체를 탄생시키는 주체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인간 행동이다. 인도발 델타 변이체는 우한 버전보다 2배 이상 전염성이 증가했다. 수백만 명이 마스크와 거리두기 없이 장기간 종교 축제를 벌이는 환경이라면 치명적인 변이체가 탄생할 수밖에 없다. 델타 변이체는 이미 글로벌 지배종이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곧 지배종이 될 것이다.

영국은 최근 코로나19에 관한 모든 규제를 풀겠다는 ‘자유의 날’을 선포하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완화 조치는 많은 수의 입원 및 사망을 초래하고 백신에 내성이 있는 변이체의 출현을 촉진하는 위험하고 비윤리적인 실험이라고 경고한다. 집단면역 한계점에 근접한 나라로서 시도해볼 만한 조치이지만, 접종률이 낮은 국가들의 안전을 무시한 이기적인 발상이다. 글로벌 시대에서는 자국이 일시적으로 집단면역에 도달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돌파 감염 변이체가 내부 혹은 외부로부터 유입되면 집단면역이 다시 붕괴되고, 이러한 악순환은 팬데믹 종식을 지연시킨다. 변이 바이러스가 백신 접종으로 유도된 중화항체 및 킬러T세포의 면역 작용을 회피하면 집단면역 한계점이 높아진다. 위와 같은 한계점 상승 요인 때문에 60% 접종에 도달한 국가에서도 계속 확진자가 발생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백신 무용론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특정 국가에서 백신 접종 이전의 확진자 500명과 접종률 60%에서 확진자 500명은 의미가 다르다. 전자는 신규 확진자가 급증할 수 있지만, 후자는 그럴 가능성이 작다.

코로나19도 온순화시켜야

코로나 집단면역이 세계적으로 형성되면 천연두처럼 바이러스는 박멸될 수 있는데, 이는 불가능함이 분명해졌다. 야생 및 반려동물에 잠복해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까지 제거할 방법도 없다. 집단면역이 지역적으로 일어나면 바이러스는 독감처럼 풍토성 전염병으로 재출현을 반복한다. 코로나 집단면역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으며,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19를 극복할 방법이 있다. 인류가 코로나19보다 더 치명적이었던 1918년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평범한 감기 바이러스로 길들였듯 코로나19와 공존하면서 백신 접종을 늘려가는 것만으로도 정상 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 코로나가 앞으로 수년간 계속 머물며 입원 및 사망자를 발생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감염 후 입원과 사망률을 줄이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를 위해서 예방접종이 여전히 핵심이다.

현재 코로나19 백신들은 질병 증상 완화에 모두 90% 이상의 효과가 있다. 델타 변이체에 대해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당한 효과를 보인다. 백신 접종과 더불어 바이러스 추적을 통해 낮은 수준으로 감염자 수를 유지해야 한다. 이는 새로운 변이체 출현 가능성을 낮추고, 의료시스템 붕괴를 막는 데 중요하다. 장기적으로는 한두 세대에 걸쳐 독감처럼 꾸준한 접종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일반 감기를 유발하는 사촌 코로나바이러스들처럼 온순화시켜야 한다. 바이러스 걱정 없이 정상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굳이 가능하지도 않은 집단면역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다.

바이러스가 바꾼 세계 지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인들이 들여온 천연두 때문에 수천만 명으로 추정되었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80~90%가 죽었다. 또 아프리카로부터 끌려온 흑인 노예들과 함께 황열병이 유입되었다.

16세기 말 프랑스 식민지인 아이티는 세계 설탕의 50%와 커피의 주생산지였다. 1791년 아이티에서 독립을 위한 반란이 일어났다. 나폴레옹은 3만여 명의 병력을 보내어 진압을 시도했으나 황열병에 대한 면역이 형성돼 있던 흑인들과는 달리, 프랑스군은 대부분 사망하였다. 아이티 독립국이 세워졌으며 아프리카인 노예들이 해방되었다. 아이티 혁명은 이후 노예무역 금지와 노예제 철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의 내륙까지 수탈하지 못한 것도 황열병 때문이었다. 많은 전쟁과 황열병으로 타격을 입은 프랑스는 한반도의 10배에 달하는 미시시피강 유역 식민지 영토를 미국에 단돈 1500만 달러에 넘겼다. 동부 연안의 13개 주에 묶여 있던 미국은 이제 중부 대평원을 가로질러 스페인 점령지였던 서부까지 차지하면서 천혜의 자원을 지닌 영토를 확보하였고 향후 초강대국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황열병은 파나마 운하의 운명을 바꾸었다. 1881년 프랑스의 레셉스가 파나마 운하 건설을 지휘했는데, 그는 수에즈 운하를 건설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이집트와 달리 3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말라리아와 황열병으로 죽어가자 공사는 중단되었다.

1900년 미국의 리드가 이끄는 연구팀이 모기가 황열병을 옮기는 매개체임을 밝혔다. 모기가 알을 낳을 수 있는 고인 물을 없애면서 말라리아와 황열병이 줄어들었다. 덕분에 미국은 1914년 파나마 운하를 완공하였고 막대한 경제적 이득과 해양 패권국의 입지를 다졌다. 이후 황열병이 모기에 감염하는 플라비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함을 입증했고, 1937년 백신이 개발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이 백신을 접종하고 황색 ‘백신 여권’을 제출해야 아프리카나 중남미 여행을 할 수 있다. 누구에게는 독이 되고 누구에게는 무기가 되었던 바이러스, 만약 그때 황열병이 없었다면 아메리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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