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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스는 일, 내 전부는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좋아하는 책들을 놓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회장은 매년 직원들에게 추천 도서 목록을 만들어 돌릴 정도로 다독가다. [사진 MBK파트너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좋아하는 책들을 놓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회장은 매년 직원들에게 추천 도서 목록을 만들어 돌릴 정도로 다독가다. [사진 MBK파트너스]

김병주(58) MBK파트너스 회장은 최근 도서관을 짓는 데 현금 300억원을 기부했다. MBK파트너스는 자산 규모가 245억 달러(약 28조원)에 달하는 동북아시아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김 회장은 자신을 “자본가(Financier)이자 작가(Writer)면서 자선가(Philanthropist)”라고 소개한다. 지난 6일 서울시청에서 도서관 건립 기부금 약정식을 가진 김 회장을 만났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도서관 건립에 사재 300억 선뜻 #“기부는 개인이 즐겁게 하는 선물 #교육·문화예술 분야에 집중할 것”

왜 도서관인가.
“도서관을 짓는 건 오랜 꿈이었다. 어릴 때 가족이 미국에 이민을 갔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먼저 혼자 갔다. 외롭고 말도 안 통하고…. 뉴저지 동네의 작은 도서관에 가서 매일 책을 봤다. 괴롭히는 사람 없이 자유롭게 통로에 주저앉아 중얼거리면서 책 읽던 기억이 생생하다. 영어·문화·예술은 물론 연애도 『폭풍의 언덕』을 읽으며 배웠다. 도서관이 세상의 전부였다.”

이번 기부금은 전액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시립도서관 건립에 쓰이며 관련 조례에 따라 ‘서울시립 김병주도서관’으로 불린다. 김 회장은 “시험공부 하고 컴퓨터를 보는 게 아니라 정말 좋은 책을 읽는 공간이란 의미에서 이름을 ‘독서관’으로 하고 싶었는데, 공무원들이 펄쩍 뛰더라”며 웃었다.

개인 이름으로 기부한 이유가 있나.
“한국의 기부는 전부 기업 위주다. 물론 그것도 좋지만, 개인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선 대부분 개인이 기부하고, 기부를 ‘선물(Gift)’이라고 표현한다. 상대를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는 의미다.”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예로 들었다. 박물관 운영비가 1년에 한화로 약 3500억원 정도 되는데 모두 개인 기부자가 내는 돈으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김 회장 본인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카네기 홀의 이사회 멤버로서 후원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최근 고(故)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 기증에 대해 “너무나 훌륭한 유산을 남기셨다”고 말했다.

‘김병주도서관’은 2025년 완공 목표다. 김 회장은 “파이낸스(금융)는 내가 하는 일이지만 내 전부는 아니다”라며 지난해 출간한 자전적 영문 소설 『Offerings(제물)』속 한 문구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여기저기 기부하는 게 아니라 교육과 문화예술 분야에 집중적으로 ‘임팩트 기빙(Impact giving)’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7년 만든 MBK장학재단이나 이번 도서관 건립이 이에 속한다.

애독가로 유명하다. 어떤 책을 추천하나.
“고전 소설을 반복해서 읽는 걸 권하고 싶다. 소설에 담긴 ‘은유의 힘’은 인간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같은 것을 읽어도 사람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고전은 읽을 때마다 깨닫는 게 다르다. 최근 30년 만에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다시 읽었는데 승계 문제,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비소설로는 스티븐 핑커 교수의 『인라이튼먼트 나우(Enlightenment Now)』를 추천했다. 빌 게이츠가 “지금까지 읽은 모든 책 중에 최고의 책”이라고 평가한 책이다. 수많은 비극과 사건·사고, 양극화 문제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가 50년, 100년 전보다 훨씬 더 여유롭고, 행복하고, 현명하다는 긍정론이다.

한국 사회는 노사·세대·젠더 등 갈등 요인이 많은데.
“확실히 한국 사회는 정서적으로 극적이다. 하지만 그런 열정과 마니아적 특징 덕에 BTS 같은 K팝 스타도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국·홍콩·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살아봤지만 한국처럼 배려심이 있고 열심히 일하는 국민도 없다. 이게 강점이다. 외국엔 상부상조란 개념 자체가 없고, 성장보다는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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