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58) MBK파트너스 회장은 최근 도서관을 짓는 데 현금 300억원을 기부했다. MBK파트너스는 자산 규모가 245억 달러(약 28조원)에 달하는 동북아시아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김 회장은 자신을 “자본가(Financier)이자 작가(Writer)면서 자선가(Philanthropist)”라고 소개한다. 지난 6일 서울시청에서 도서관 건립 기부금 약정식을 가진 김 회장을 만났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도서관 건립에 사재 300억 선뜻 #“기부는 개인이 즐겁게 하는 선물 #교육·문화예술 분야에 집중할 것”
- 왜 도서관인가.
- “도서관을 짓는 건 오랜 꿈이었다. 어릴 때 가족이 미국에 이민을 갔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먼저 혼자 갔다. 외롭고 말도 안 통하고…. 뉴저지 동네의 작은 도서관에 가서 매일 책을 봤다. 괴롭히는 사람 없이 자유롭게 통로에 주저앉아 중얼거리면서 책 읽던 기억이 생생하다. 영어·문화·예술은 물론 연애도 『폭풍의 언덕』을 읽으며 배웠다. 도서관이 세상의 전부였다.”
이번 기부금은 전액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시립도서관 건립에 쓰이며 관련 조례에 따라 ‘서울시립 김병주도서관’으로 불린다. 김 회장은 “시험공부 하고 컴퓨터를 보는 게 아니라 정말 좋은 책을 읽는 공간이란 의미에서 이름을 ‘독서관’으로 하고 싶었는데, 공무원들이 펄쩍 뛰더라”며 웃었다.
- 개인 이름으로 기부한 이유가 있나.
- “한국의 기부는 전부 기업 위주다. 물론 그것도 좋지만, 개인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선 대부분 개인이 기부하고, 기부를 ‘선물(Gift)’이라고 표현한다. 상대를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는 의미다.”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예로 들었다. 박물관 운영비가 1년에 한화로 약 3500억원 정도 되는데 모두 개인 기부자가 내는 돈으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김 회장 본인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카네기 홀의 이사회 멤버로서 후원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최근 고(故)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 기증에 대해 “너무나 훌륭한 유산을 남기셨다”고 말했다.
‘김병주도서관’은 2025년 완공 목표다. 김 회장은 “파이낸스(금융)는 내가 하는 일이지만 내 전부는 아니다”라며 지난해 출간한 자전적 영문 소설 『Offerings(제물)』속 한 문구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여기저기 기부하는 게 아니라 교육과 문화예술 분야에 집중적으로 ‘임팩트 기빙(Impact giving)’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7년 만든 MBK장학재단이나 이번 도서관 건립이 이에 속한다.
- 애독가로 유명하다. 어떤 책을 추천하나.
- “고전 소설을 반복해서 읽는 걸 권하고 싶다. 소설에 담긴 ‘은유의 힘’은 인간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같은 것을 읽어도 사람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고전은 읽을 때마다 깨닫는 게 다르다. 최근 30년 만에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다시 읽었는데 승계 문제,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비소설로는 스티븐 핑커 교수의 『인라이튼먼트 나우(Enlightenment Now)』를 추천했다. 빌 게이츠가 “지금까지 읽은 모든 책 중에 최고의 책”이라고 평가한 책이다. 수많은 비극과 사건·사고, 양극화 문제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가 50년, 100년 전보다 훨씬 더 여유롭고, 행복하고, 현명하다는 긍정론이다.
- 한국 사회는 노사·세대·젠더 등 갈등 요인이 많은데.
- “확실히 한국 사회는 정서적으로 극적이다. 하지만 그런 열정과 마니아적 특징 덕에 BTS 같은 K팝 스타도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국·홍콩·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살아봤지만 한국처럼 배려심이 있고 열심히 일하는 국민도 없다. 이게 강점이다. 외국엔 상부상조란 개념 자체가 없고, 성장보다는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나라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