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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도 '욱일기 클라이밍'이라는데…체육회장 "확대해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 볼더링 3번 과제. 욱일기 형상 암벽이 나와 논란이다. [AP=연합뉴스]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 볼더링 3번 과제. 욱일기 형상 암벽이 나와 논란이다. [AP=연합뉴스]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욱일기 형상’ 암벽이 나와 논란이다. 지난 5일 일본 도쿄 아오미 어반 스포츠파크에서 열린 대회 남자 콤바인 결선에서 볼더링 3번 문제가 일본 욱일기를 연상시킨다는 거다.

도쿄올림픽 클라이밍 암벽 논란 #국제클라이밍연맹도 "라이징 선" #체육회장 "IOC에 문서받아" 자평 #김자인도, 서경덕도 작심 비판

볼더링 과제는 경기 직전까지 비공개인데, 3번 문제는 방사형 원이었다. 유로스포츠, 아웃사이드, 플래닛마운틴 등 외신들은 이 과제를 ‘라이징 선(Rising Sun)’으로 불렀다. ‘떠오르는 해(욱일)’라는 뜻이다.

심지어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도 공식 홈페이지에서 볼더링 3번 과제 모양을 ‘욱일기’로 해석했다. IFSC는 “회색 돌출부와 작은 노란색 홀드로 구성된 ‘일본 라이징 선 모양(Japanese rising sun shape)’ 의 3번 과제에서는 모든 선수가 존에는 도달했지만, 아무도 톱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코스가 욱일기 형상이었다. 욱일기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한국을 포함한 다른나라를 침공할 때 사용했던 제국주의 군기다. 일장기의 붉은태양 주위에 아침 햇살이 퍼져나가는 모양을 형상화했다.

KBS 스포츠클라이밍 해설을 맡은 ‘암벽여제’ 김자인은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욱일기 문제는 한국과 일본에서 늘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제였다. 왜 굳이 그런 디자인을 볼더링 과제에 사용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클라이밍 홀드 뉴스 리뷰스’는 “해설자들이 깃발에 대한 찬사라고 말했지만, 단순히 디자인에 대해 말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예선에서 탈락한) 천종원이 만약 결선에서 욱일기 형상 구조물을 오르려고 노력했을 것을 상상하니 끔찍하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 볼더링 3번 과제. [AP=연합뉴스]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 볼더링 3번 과제. [AP=연합뉴스]

개막 전 대한체육회는 선수촌에 이순신 현수막(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있사옵니다)’을 걸었다가 내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정치적 선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올림픽헌장 50조 위반을 들어 철거를 요청했고, 대한체육회도 ‘경기장 내 욱일기 사용에도 똑같이 적용하겠다’는 IOC 약속을 받고 현수막을 내렸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8일 도쿄의 메인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대회 스포츠 외교 성과라고 하면 IOC로부터 앞으로 욱일기를 경기장에서 사용 못 하도록 문서를 받은 것”고 자평했다.

17일 대한체육회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압력 탓에 도쿄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한국 선수단 거주층에 내건 '이순신 장군' 현수막을 뗐다.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지난 15일 숙소동에 걸린 현수막, 지난 16일 현수막 문구 문제 삼으며 욱일기 시위하는 일본 극우단체 관계자, 이날 현수막 철거하는 대한체육회 관계자 모습. [연합뉴스]

17일 대한체육회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압력 탓에 도쿄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한국 선수단 거주층에 내건 '이순신 장군' 현수막을 뗐다.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지난 15일 숙소동에 걸린 현수막, 지난 16일 현수막 문구 문제 삼으며 욱일기 시위하는 일본 극우단체 관계자, 이날 현수막 철거하는 대한체육회 관계자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도쿄올림픽은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관중도 없는데 실효성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개막을 앞두고 선수촌 앞에서 일본 극우 단체가 욱일기 시위를 벌였다. 한 남성은 한국 사진기자에게 달려들며 “간코쿠진, 빠가야로(한국인, 바보)”라고 소리쳤다.

스포츠클라이밍의 욱일기 형상 암벽도 막지 못했고,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일본 골프 대표팀 유니폼도 막지 못했다. 전날 일본 여자골프 이나미 모네(일본)는 이 유니폼을 입고 은메달을 땄다.

도쿄올림픽 여자골프 은메달리스트 이나미 모네. 일본골프협회는 지난 6월 유니폼을 공개하며 디자인 콘셉트는 라이징 투 더 챌린지(Rising to the Challenge)라고 했고, 핫토리 미치코 일본 여자 대표팀 코치는 대각선 무늬를 기본으로 해 일본의 떠오르는 태양 이미지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도쿄올림픽 여자골프 은메달리스트 이나미 모네. 일본골프협회는 지난 6월 유니폼을 공개하며 디자인 콘셉트는 라이징 투 더 챌린지(Rising to the Challenge)라고 했고, 핫토리 미치코 일본 여자 대표팀 코치는 대각선 무늬를 기본으로 해 일본의 떠오르는 태양 이미지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이 회장은 스포츠클라이밍 욱일기 형상 등과 관련된 질문에 “관점의 차이라고 본다. 모든 상황을 하나의 잣대로 볼 수는 없다. 적절하냐, 지나치냐 문제다. IOC와 일본조직위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서면으로 받았다는 건 공식화된 거다. 앞으로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선수촌 앞 (시위도) 처음에는 있었는데, 나중에 경시청에서 못하게 막았다. 골프장 클라이밍은 형상물로 보지 그렇게까지 생각 안 한다.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지나친 확대 해석 아닌가, 전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란 단어를 썼다.

하지만 10년 넘게 욱일기 퇴치와 독도 수호 운동을 벌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전 (이 회장) 의견에 반대다. 유로스포츠와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도 ‘라이징 선’이라고 표기했는데, 확대 해석이라니. 빨간색 점에 16개 빗살무늬가 있어야만 욱일기가 아니다. 전범기를 의도적으로 형상화한 구조물도 큰 문제”라며 “대한체육회가 IOC에 공식 문서를 받았다는데, 확대해석이라고 말할 게 아니라, 실행해서 본보기를 보여줄 좋은 기회다. 당연히 항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암벽여제 김자인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도쿄올림픽 욱일기 형상 암벽을 비판했다. [사진 김자인 인스타그램]

암벽여제 김자인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도쿄올림픽 욱일기 형상 암벽을 비판했다. [사진 김자인 인스타그램]

이기흥 회장이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연 8일. 그날 오후 김자인은 도쿄올림픽 볼더링 3번 문제 영상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남겼다.

“저는 일본 클라이머와 선수들에게 어떤 악감정도 없습니다. 하지만 3번 문제에 대해서는 꼭 이야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루트세터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그리고 그들이 루트세팅을 할 때 욱일기를 의도했는지는 이 영상을 보신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그곳에는 대회를 만드는 수많은 오피셜 스텝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올림픽 브로드캐스트 공식 해설자는 그 문제의 디자인을 ‘Japanese rising sun’ 그리고 ‘the image depicts rising sun’ 이라고 직접 언급했습니다. 해설자는 운영진으로부터 루트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받고 중계를 진행하기 때문에 이것은 해설자 개인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욱일기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사용한 군기로,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전범기입니다. 군사 침략 피해국에게 욱일기는 독일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와 다를 바 없기에, 욱일기는 언제나 한국을 포함한 피해국가들과 일본 간의 심각하게 민감한 문제입니다. 만약 그들이 이런 역사와 외교에 대해 조금만 이해한다면 욱일기의 모양이 멋지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IOC는 욱일기에 대해서도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전을 불허하는 올림픽 헌장을 적용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올림픽 정신을 지키고자 한다면, 올림픽 무대에서 그 디자인과 그 코멘트는 절대 쓰지 말아야 하며, 그와 관련한 책임자는 사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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