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도 일회용품도 몰리는 섬, 제주의 탈 플라스틱 도전기

관광객도 일회용품도 몰리는 섬, 제주의 탈 플라스틱 도전기

중앙일보

입력 2021.08.08 16:00

업데이트 2021.08.08 18:42

제주도로 관광객이 몰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이다. 휴가철 하루 4만명이 방문하면서 공항부터 붐빈다. 관광지 제주로 몰리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그들이 쓰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도 늘어난다. 제주의 인구당 커피 전문점은 전국 1위, 생활폐기물 배출량도 나날이 급증하고 있다. '플라스틱 섬'의 탈(脫) 플라스틱은 가능할까.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최근 시작된 제주도의 도전을 직접 확인했다. 기업과 시민이 함께 뛰어든 이곳의 변화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별취재팀은 '플라스틱 어스(PLASTIC EARTH=US)' 캠페인 2부에서 제주를 시작으로 '우리'(Us)가 어떻게 플라스틱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색해본다.

[플라스틱 어스 2부] 1회
'플라스틱 섬'의 제로웨이스트 노력

지난달 28일 제주국제공항 3층 도착장 2번 출구 근처.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초록 자판기 앞에 조하진(48, 경기 성남시)씨가 섰다. 그는 자판기에서 뭘 사는 대신 빈 컵 3개를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1000원짜리 지폐 3장을 돌려받았다. 투명한 자판기 안쪽엔 플라스틱 컵 300여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조씨가 반납한 건 다회용컵, 그리고 보증금을 돌려받은 것이다. 가족여행을 마치고 돌아간다는 그는 "일회용 컵 버릴 곳을 찾는 것보다 컵을 금방 헹궈서 자판기에 넣어보니 편하다"면서 "다만 반납기가 공항뿐 아니라 제주도 곳곳에 있다면 훨씬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오전 9시쯤 가족여행을 마치고 제주공항을 찾은 조하진(48, 경기도 성남)씨가 가족들이 여행 중 사용한 다회용컵을 반납하고 보증금을 받고 있다. 편광현 기자

지난 28일 오전 9시쯤 가족여행을 마치고 제주공항을 찾은 조하진(48, 경기도 성남)씨가 가족들이 여행 중 사용한 다회용컵을 반납하고 보증금을 받고 있다. 편광현 기자

스벅 일회용 컵, 내년부턴 제주서 못 볼 듯 

지난달 6일 처음 설치된 이 자판기 이름은 SK그룹이 만든 사회적기업 행복커넥트가 운영하는 '해빗컵 반납기'. 제주도 내 일부 스타벅스에서는 이 다회용 컵에 커피를 담아 내주는데, 사용하고 씻은 컵을 여기에 넣으면 보증금을 1000원씩 내준다. 시각 인공지능(Vision AI)이 이물질 제거 여부를 확인한다. 이를 다시 행복커넥트가 수거해 세척작업을 한 뒤 스타벅스에 공급하는 구조다.

해빗컵 반납기는 제주공항과 스타벅스 시범매장 4곳에 설치돼있다. 스타벅스 측은 올해 안에 도내 모든 매장 26곳에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내년부터 제주도의 '스벅 이용자'는 무조건 다회용 컵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6일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해수욕장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 사진 제주환경운동연합

6일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해수욕장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 사진 제주환경운동연합

올 4월 제주 차귀도에서 확인된 플라스틱 쓰레기들. 해변을 가득 채웠다. 사진 제주환경운동연합

올 4월 제주 차귀도에서 확인된 플라스틱 쓰레기들. 해변을 가득 채웠다. 사진 제주환경운동연합

해빗컵 반납기는 커피전문점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한 '에코제주 프로젝트'로 개발됐다. 에코프로젝트란 SK텔레콤이 7월부터 환경부와 제주특별자치도, 스타벅스코리아, 행복커넥트, 친환경 스타트업 오이스터에이블 등과 함께 진행하는 제주도의 탈 플라스틱 사업이다. 쓰레기를 0에 가깝게 만들자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기도 하다.

도내 사용 일회용 컵, 한 해 '6300만개'

제주만의 특별한 프로젝트가 시작된 건 연간 관광객 수가 1500만명을 넘어선 이곳이 각종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제주도내 커피전문점은 1706곳이다. 인구 1만명당 커피전문점 수는 25.4곳으로 전국 1위다. 전국 평균이 14.7곳임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카페의 천국'이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수거되지 않고 나뒹구는 플라스틱 컵이 나날이 늘어만 간다. 제주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한해 제주도에 방문하는 관광객이 버리는 컵은 약 6300만 개(추정치)에 달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관광객만큼 카페도 집중되는 제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관광객만큼 카페도 집중되는 제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관광객이 늘자 주민 1명당 생활폐기물 배출량도 급증했다. 2010년 1.1kg 수준이었지만 2019년엔 1.8kg까지 늘었다. 2019년 한해에만 제주도서 버려진 플라스틱이 5만5000t(환경부 통계)에 이른다. 제주도가 '플라스틱 섬'으로 불리는 이유다. 동시에 쓰레기 처리에 대한 위기감이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막 걸음마를 뗀 다회용 컵 사용은 아직 갈 길이 멀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에코제주 프로젝트'로 회수되는 컵은 하루 평균 1000개를 조금 넘는다. 다만 이용자 반응은 나쁘지 않다. 다회용 컵을 써본 시민들은 "어색하지만 환영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28일 가족들과 4박 5일 여행을 마치고 제주공항을 찾은 김민서(46, 울산)씨는 "여행 4일째 방문한 스타벅스에서 이 컵을 받았다. 앞의 사흘과 다르게 4~5일 차는 일회용 컵을 거의 쓰지 않아 환경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세척이나 반납이 생각보다 쉬워 울산에도 같은 기계가 있다면 사용할 것 같다"고 했다.

제주시 도두이동에 위치한 행복커넥트 에코제주센터 세척장 내에 위치한 초음파 세척기. 제주도에서 회수된 다회용컵을 총 7단계로 세척해 스타벅스에 배송한다. 편광현 기자

제주시 도두이동에 위치한 행복커넥트 에코제주센터 세척장 내에 위치한 초음파 세척기. 제주도에서 회수된 다회용컵을 총 7단계로 세척해 스타벅스에 배송한다. 편광현 기자

첫 세척~포장 '7단계', 위생 우려 없는 편

시민들이 쓰고 반납한 컵은 어디로 갈까, 세척은 제대로 될까. 위생 문제는 없을까. 반납기에서 나온 컵은 제주공항에서 차로 5분 떨어진 세척장으로 간다. 68평 규모의 '행복커넥트 에코제주센터'에는 직원 3명과 대형 세척기·살균실이 있다.

세척장에선 ①애벌 세척(오염 심하면 분리 후 초음파 세척) ②소독 ③자동세척기 투입(고압세척-고온헹굼-열풍건조) ④고온 건조 ⑤UV살균 ⑥표면오염도 검사 ⑦외관 확인 후 포장 등의 과정을 거친다. 지난달 28일 이 센터를 찾았을 때는 다회용컵 1201개가 세척돼 스타벅스 매장에 배송됐다고 했다. 이날 나온 불량품은 8개. 모두 표면에 금이 가는 등 훼손이 발생한 것이었다. 위생 문제로 버려진 컵은 없었다. '코시국'(코로나 시국) 방역 때문에 굳이 일회용 컵을 써야 할 이유는 찾기 어려웠다.

지난달 28일 오전 11시 스타벅스 제주칠성점. 직원은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손님들에게 '다회용컵만 제공된다'고 설명했다. 편광현 기자

지난달 28일 오전 11시 스타벅스 제주칠성점. 직원은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손님들에게 '다회용컵만 제공된다'고 설명했다. 편광현 기자

렌터카 빌렸는데 텀블러 따라온다

제주도에서 '일회용 컵 제로'에 도전하는 기업은 스타벅스뿐이 아니다. 작은 업체들도 탈 플라스틱에 뛰어들었다. 친환경 스타트업 '푸른컵'은 지난달 9일부터 관광객들에게 텀블러를 대여해주고 있다. 제주공항에서 차로 2분 거리인 렌트카 업체와 제로 웨이스트숍 '제주용기' 등을 방문하면 보증금 1만5000원을 내고 텀블러를 빌리는 식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 텀블러를 반납하면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있다.

지난달 28일 오후 5시, 제주시 용담이동에 위치한 렌터카 업체 사무실 한편에 푸른컵 텀블러를 대여해주는 부스가 설치돼있다. 편광현 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5시, 제주시 용담이동에 위치한 렌터카 업체 사무실 한편에 푸른컵 텀블러를 대여해주는 부스가 설치돼있다. 편광현 기자

푸른컵은 모든 방문객에게 제로 웨이스트 여행을 위한 가이드 맵도 제공한다. 여기엔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숙박업소·기념품 가게 8곳과 식당·카페 34곳이 표시돼있다. 해당 카페에 푸른컵 텀블러를 들고 가면 음료 가격의 5~10%를 할인받을 수 있다. 제주 기업과 자영업자가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카페 사장도 "일회용 컵보다 편해"

제주에서 한 달 살이 중이라는 황윤영(38)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보를 얻어 나와 딸의 텀블러를 빌렸다. 섬 밖에서 온 사람들은 일회용품 사용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텀블러 덕에 일회용 컵만이라도 아예 안 쓰게 됐다"고 말했다.

텀블러 사용에 동참한 카페들의 반응도 좋다. 제주시 구좌읍에서 카페 '그초록'을 운영하는 홍영우(41)씨는 "제주 토박이로서 푸른컵 취지가 너무 좋아서 바로 참여한다고 했다. 이 텀블러를 쓰는 손님이 하루 3~4명씩은 온다"고 말했다. 그는 "판매자 입장에선 텀블러를 가져오는 손님이 하나도 귀찮지 않다. 컵을 씻거나 일회용품 처리하는 것보다 오히려 편하다"고 강조했다.

제로웨이스트 제주여행을 위해 만든 '푸른컵' 가이드. 사진 푸른컵

제로웨이스트 제주여행을 위해 만든 '푸른컵' 가이드. 사진 푸른컵

'쓰레기 제로' 도매상 된 마을 모임

이곳 주민들도 탈 플라스틱에 손 들고 나섰다. 제주도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제로 웨이스트샵 중 하나가 있는 곳이다.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지구별가게'는 친환경 소재로 물건을 만들어 파는 협동조합이다. 이곳은 친목 차원의 이웃 모임에서 시작했다.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중 다섯 번째로 많은 생리대를 면으로 제작·판매하며 유명세를 탔다.

지금은 생리대 외에 면 돗자리, 대나무 칫솔, 유리 빨대, 와입스(면으로 된 휴지)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든다. 면이나 나무 등 친환경 소재만 쓴다. 소비자들도 여기에 호응한다. 지구별가게가 만든 브랜드 '소락'은 2018년부터 매 300% 넘는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플라스틱 프리' 제품들이 매달 수천 개씩 전국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지난달 28일 제로웨이스트샵 '지구별가게'의 모습. 편광현 기자

지난달 28일 제로웨이스트샵 '지구별가게'의 모습. 편광현 기자

이경미(47) 함께하는그날 협동조합 대표는 "제주도는 연 관광객이 1500만이라 일회용품 사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 고향에 쓰레기가 점점 늘어나는 게 눈에 보여 친환경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금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 제주의 산으로 바다로 가고 있지만, 시민들이 함께 노력한다면 다시 '플라스틱 프리 아일랜드'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의 꿈은 이제 시작됐다.

특별취재팀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70년. 플라스틱이 지구를 점령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는 지구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앙일보는 탄생-사용-투기-재활용 등 플라스틱의 일생을 추적하고, 탈(脫)플라스틱 사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플라스틱 어스(PLASTIC EARTH=US)' 캠페인 2부를 시작합니다.

특별취재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정종훈·편광현·백희연 기자, 곽민재 인턴기자, 장민순 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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