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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나라당 MB-朴과 똑같다…2021 민주당 李의 전쟁

중앙일보

입력

2007년 7월 20일 박근혜·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가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장애인비전 전진대회에 참석해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2007년 7월 20일 박근혜·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가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장애인비전 전진대회에 참석해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1. “애를 데리고 와도 좋습니다. 제가 DNA 검사도 다 해주겠어요.” 2007년 7월 19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가 당내 ‘검증 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경쟁자였던 이명박 후보를 향해 “아이가 있다는 소문은 정말 심각한 일이고 천벌을 받을 짓”이라며 “아무리 나를 음해하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 “제가 혹시 바지를 한 번 더 내릴까요. 어떻게 하라는 건지….” 2021년 7월 5일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TV토론장에서는 DNA 대신 ‘바지 검증’이 화제였다. 여배우 불륜 의혹에 대한 질문을 받은 이재명 후보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하라”(정세균 후보)고 추궁받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고 불쾌감을 표했다.

14년만의 데자뷔다. 네거티브 공세의 양상 및 강도가 비슷하다는 측면에서 이번 더불어민주당 1·2위 싸움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과 자주 비교된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자세히 뜯어보면 17대 대선 전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 간 쟁탈전은 20대 대선을 준비하는 이재명·이낙연 두 후보의 싸움과 여러 지점에서 공교롭게 닮아 있다. (편의상 호칭은 ‘후보’로 통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4일 서울 마포구 YTN미디어센터에서 열린 YTN 주최 TV토론에서 이낙연 후보를 지나치고 있다. 2021.8.4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4일 서울 마포구 YTN미디어센터에서 열린 YTN 주최 TV토론에서 이낙연 후보를 지나치고 있다. 2021.8.4 국회사진기자단

①출신: 주류 vs 신(新)주류

주요 지자체장과 전직 당대표의 대결이라는 구도가 우선 판박이다. 2004~2006년 당대표를 지낸 박근혜 후보는 당내 요직에 포진했던 김무성·유승민·최경환 등 ‘친박근혜계’의 탄탄한 지지세를 업고 대선판에 출전했다. 같은 기간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후보는 당 외곽에서 정두언·박형준·진수희 등 상대적 비주류 세력을 모아 ‘친이명박계’를 형성, 박 후보를 본격 위협했다.

올 초까지 당 대표로 일한 이낙연 후보는 캠프 구성 초기부터 박광온·최인호·홍익표·정태호·윤영찬 등 친문(친문재인) 의원 다수를 자기 사람으로 앉혔다. 반면 여전히 ‘주도야후(낮에는 도지사, 밤에는 후보)’라는 이재명 후보의 경우 당내 비주류로 분류됐던 정성호·김영진·김병욱 의원과 경기도 참모들이 같은 시기 캠프 운영을 주도했다.

②캐릭터: 안정형 vs 돌파형

박근혜 후보는 2006년 5·31 지방선거 유세 도중 ‘커터 테러’를 당하고도 병상에서 “대전은요?”라고 침착하게 물었다는 일화로 인기를 얻었다. 그는 전당대회 직전 강원 합동연설회에서 “나는 설악산의 울산바위가 날아와도 끄떡없이 이겨낼 수 있다”며 담대한 면모를 과시했다.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후보가 2007년 8월 3일 오후 충북 청주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6차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물을 권하자 박 후보가 사양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후보가 2007년 8월 3일 오후 충북 청주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6차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물을 권하자 박 후보가 사양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에 비해 현대건설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이명박 후보는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거침없고 저돌적인 발언을 즐겼다. 그는 경선 과정에서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2007년 8월 6일)를, 이후 본선에서는 “얼굴만 보면 저거 어떻게 쥐어박고 싶었어”(2007년 11월 12일)를 유행어로 낳았다.

‘엄근진(엄격·근엄·진지)’ 별명을 얻은 이낙연 후보와 ‘사이다’ 이미지를 가진 이재명 후보 역시 MB-박 대결 때와 비슷한 캐릭터 차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간이 갈수록 국민이 후보들의 진면목을 볼 것”이란 이낙연 후보 측의 '점잖은' 네거티브 공세에 이재명 후보가 “도서관에서 정숙하라고 소리 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일갈하는 식이다.

③구도: 한때 1위 vs 역전 1위

박근혜 후보는 지방선거 승리 후 지지율 상승세를 탔다. 30%를 넘나들며 승기를 잡는 듯 보였지만, 대선을 15개월 앞둔 2006년 9월 한반도 대운하가 전국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이명박 후보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앞서 청계천 복원으로 시민 호감을 얻은 이 후보는 이어진 북한 핵실험(2006년 10월 9일) 때 ‘안보·위기관리·남성’을 내세워 앞서갔다.

28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 MBN스튜디오에서 MBN과 연합뉴스TV가 공동주관하는 본경선 1차 TV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왼쪽부터) 이재명, 이낙연 후보가 녹화장으로 향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8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 MBN스튜디오에서 MBN과 연합뉴스TV가 공동주관하는 본경선 1차 TV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왼쪽부터) 이재명, 이낙연 후보가 녹화장으로 향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무총리 때 40%대 지지율을 형성한 이낙연 후보 역시 올 초 이재명 후보에 역전당했다. 신년 인터뷰에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주장한 게 자충수가 됐다.

2007년 이명박 후보에게 최시중 전 한국갤럽 대표가 있었다면 지금의 이재명 후보에게 이근형 전 윈지코리아컨설팅(이하 윈지) 대표가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2007년 5월 박근혜 후보 측이 조선일보·한국갤럽의 공동 여론조사에 대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자 최 전 회장은 보유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사직, 두 달 뒤 이명박 캠프에 상임고문으로 합류했다.

이근형 전 대표가 2009년 설립한 윈지는 지난해 11월 아시아경제가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무당층 24.6%가 이재명 후보를, 15.1%가 이낙연 후보를 지지한다는 결과로 ‘이재명 본선 우위론’을 촉발했다.

④전과·검증단 논란도 판박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중인 이낙연 전 대표(왼쪽) 이재명 경기지사.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중인 이낙연 전 대표(왼쪽) 이재명 경기지사. 연합뉴스

경쟁 과열을 맞은 민주당 지도부는 현재 당 차원의 ‘경선 후보 검증단’을 설치하라는 요구에 직면해있다. 이낙연·정세균 후보 측에서 이재명 후보의 음주운전 전과 횟수 등을 당이 클리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송영길 대표는 5일 “당에서 중간에 개입하면 되겠느냐”며 난색을 표했다.

옛 한나라당은 아예 자체 검증위원회를 발족해 청문회까지 했다. 당시 박근혜 후보 측에서 “이명박 후보는 전과 14범”이라며 “직접 벌금형 이상의 전과를 당원과 국민 앞에 공개하라”고 압박한 장면이 지금의 이재명 전과기록 공개 논란과 꼭 닮아있다. 2007 경선에서 적나라하게 불거진 ‘BBK 논란’과 ‘정윤회 논란’은 두 후보가 차례로 대통령을 거쳐 퇴임 후 구속에 이르는 단초를 제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이번 ‘이·이(이재명·이낙연) 대전’을 두고도 당내에서 “선을 넘다 보면 본선에서 야당에 발목 잡힐 일이 생긴다”(민주당 재선 의원)란 우려가 나온다. 배종찬 인사이트 K 소장은 “2007년 당시는 한나라당이 ‘경선=본선’ 공식을 세울 정도로 여유 있는 상황이었지만, 현 민주당은 그렇게 본선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 과거에 대한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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