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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선수단복에 고구려 수렵? 이유 묻자 "일본 가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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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도쿄올림픽 개회식에서 한국 선수단 기수를 맡은 김연경, 황선우 선수.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3일 도쿄올림픽 개회식에서 한국 선수단 기수를 맡은 김연경, 황선우 선수. [사진=연합뉴스]

“옷 색감 진짜 미쳤다, 너무 예쁜 것 아니냐” 

지난달 23일 도쿄올림픽 개회식. 김연경(배구)과 황선우(수영)가 기수를 맡은 한국 선수단이 비색과 흰색 차림으로 입장했다. 한국 선수단이 103번째로 입장한 이후 인터넷엔 단복에 대한 글이 여럿 올라왔다. “옷 색감 진짜 미쳤다, 너무 예쁜 것 아니냐”, “한국이 확실히 세련됨”, “나라의 품격이 느껴진다” 등 긍정적 반응이 다수였다. 당일 해외 패션 매체 WWD가 ‘도쿄올림픽 개회식에서 주목할 만한 패션 순간 11’ 중 하나로 한국 국가대표 단복을 선정하기도 했다.

국가대표 선수단복 디자이너 손형오 코오롱FnC 디렉터

이번 올림픽 선수단 단복은 코오롱 FnC의 남성복 브랜드 ‘캠브리지 멤버스’가 만들었다. 디자인을 진두지휘했던 손형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47)는 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픽처럼 중요한 순간에 참여해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었다”며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풀어놓았다.

“일본에서 올림픽 열리니 더 용맹함 표현” 

도쿄올림픽 한국 선수단 단복 디자인을 진두지휘한 손형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사진 코오롱 FnC]

도쿄올림픽 한국 선수단 단복 디자인을 진두지휘한 손형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사진 코오롱 FnC]

그에 따르면 가장 화제가 됐던 비색 상의 등 단복 디자인을 최종 확정하는 데는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보통 국가대표 선수단 단복이라고 하면 쓰는 ‘단골 컬러’가 있습니다. 네이비나 흰색인데요. 이번엔 좀 다르게 해보고 싶었습니다. 공예품을 보려고 종종 인사동에 갔는데, 고려 청자의 비색이 잔잔한 감흥을 주면서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비색을 택하게 됐습니다.”

단복에 들어간 ‘한국의 빛깔’은 이뿐만이 아니다. 하의엔 조선 백자의 순백색을 넣었다. 안감에는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를 모티브로 한 패턴을 은은한 색으로 넣었다. 여기엔 남다른 뜻도 담았다. “이번 올림픽이 열린 곳이 일본이잖습니까. 다른 어떤 때보다도 씩씩한 기상, 용맹함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겉으로 드러내면 촌스러우니, 안감으로 넣었습니다. 용맹한 우리 선수들의 마음가짐과 일치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고심 끝에 넣은 디테일은 더 있다. 단추에는 월계관을 새겨 넣었고, 소매에는 태극의 붉은색과 푸른색을 사용한 자수를 넣었다. 넥타이와 스카프를 만들 때도 태극의 색을 응용했다. 소재에도 남다른 신경을 썼다. 많은 출장 경험으로 일본의 여름 날씨가 끈적끈적하고 습기가 많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의는 흡한속건(땀과 수분을 잘 흡수하고 빠르게 건조한다는 뜻) 기능성 원단을 사용했고, 하의는 와플 모양의 조직감이 있는 기능성 원단을 썼다. 구김을 최소화하고 청량감을 더하려는 노력이었다.

색상 구현, 코로나19 때문에 애 먹어 

하지만 제작 과정엔 어려움도 많았다. 특히 색상을 구현하는 데 애를 먹었다. “색이 제대로 구현 안 돼서 염색을 대 여섯 번 했습니다. 바지도 그냥 흰색이 아닌 백자 색이라 미묘한 차이로 정밀함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다양한 체형이 많은 국가대표 선수단 1 대 1 맞춤 제작을 위해 패턴 담당자 등 디자인팀은 선수촌에 20~30회나 방문해야 했는데, 선수촌에 들어가기 위해선 코로나 검진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손 CD는 “패턴 담당자들이 일주일에도 2, 3차례씩 코로나 검진을 받아야 해서 정말 힘들었다”고 전했다.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 단복 이미지. [사진 코오롱 FnC]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 단복 이미지. [사진 코오롱 FnC]

그런 과정을 거쳐 선수들이 단복을 입고 입장하는 개회식을 봤을 때는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단의 단복 제작을 진두지휘했다는 게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각 국가의 단복은 소리 없는 경쟁이란 말도 있다. 미국 선수단 단복은 랄프 로렌, 이탈리아 선수단 단복은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디자인했을 정도로 유명 브랜드 디자이너들도 참여한다. “다른 나라 단복도 주의 깊게 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픽토그램 느낌이 나게 디자인한 이탈리아 단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한국 단복이 제일 예뻐 보였죠.”

“김연경 선수는 헐렁하게 해달라더라”

하지만 그는 아쉬운 점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선수들 중에는 자기 스타일을 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김연경 선수는 헐렁하게 크게 해 달라고 했어요. 개회식 사진 보시면 단복이 좀 루즈(헐렁)하게 보입니다.” 그래도 단복 제작 과정에서 선수단 코칭스태프 등으로부터 단복을 개인적으로 여러 벌 주문하고 싶다는 요청이 많이 들어왔던 건 그를 뿌듯하게 했다. 그는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평상복으로 입고 싶다고들 하더라”며 “하지만 제한된 원단으로 수량을 계산해서 그렇게 하긴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만을 고려한 기능성 옷이라 이후 캠브리지 멤버스 차원에서 판매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도쿄올림픽대회 G-100 미디어데이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단복을 선보이고 있다. [도쿄올림픽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4월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도쿄올림픽대회 G-100 미디어데이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단복을 선보이고 있다. [도쿄올림픽 사진공동취재단]

사실 코오롱 FnC가 국가대표 선수단 단복 제작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단복 입찰에 참여했던 업체 3곳 중 선택을 받았다. 손 CD는 “캠브리지 멤버스의 45년간 축적된  MTM(made to measure: 맞춤제작) 기술력으로 개개인 체형에 맞는 핏을 제안해줄 수 있다는 점이 점수를 높게 받은 것 같다”며 “코오롱이 골프브랜드도 보유해 땀 배출 관련 통기 소재 데이터 구축이 돼 있던 것도 단복 제작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제 도쿄올림픽은 8일로 끝난다. 손 CD는 캠브리지 멤버스에서 단복 제작을 마친 뒤 현재는 코오롱 FnC 내 다른 브랜드인 커스텀멜로우에서 일하고 있다. 그가 패션계에서 일한 지도 23년째. 그는 이번 단복 제작 이후에도 달성하고픈 또다른 목표를 세웠다. “매 시즌마다 바뀌는 패션 산업에서 일하다 길이 길이 남을 수 있는 올림픽 단복을 작업했던 게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컸습니다. 앞으로 전세계에서 인지도 있고 더 영향력 있는 한국 브랜드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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