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속 미리 가 본 기후재앙, 알고도 막지 못하는 디스토피아

중앙일보

입력 2021.08.08 06:00

업데이트 2021.08.08 17:58

지난 3일 그리스 수도 아테네 북쪽 에비아섬의 한 마을 뒷산에 화염에 휩싸여있다. 그리스는 최근 기온이 섭시 42도까지 오르는 등 수십년 만에 최악의 폭염이 몰아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전국적인 정전과 화재가 발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3일 그리스 수도 아테네 북쪽 에비아섬의 한 마을 뒷산에 화염에 휩싸여있다. 그리스는 최근 기온이 섭시 42도까지 오르는 등 수십년 만에 최악의 폭염이 몰아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전국적인 정전과 화재가 발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무도 경고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아무도 경고에 귀기울지 않았다. 기온이 상승하고 해류가 바뀌고 빙하가 녹자 기상이변이 속출했지만 아직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다. 2019년 허리케인ㆍ토네이도ㆍ홍수ㆍ가뭄이 전세계에 엄청난 피해를 끼쳤다. 몇몇 마을이나 해안지역의 피해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사라졌다. 이스트강이 맨해튼을 삼켰고, 마드리드에는 폭염으로 하루 만에 200만 명이 죽었다.’

[최준호의 SF인SF]기후재난 영화로 본 지구온난화
투모로우·지오스톰, 기후위기 그린 SF
최근 수년간 전세계적 기후재난 이어져
"돌이킬 수 없는 티핑포인트 가까워져"

2017년 개봉한 기후재난 공상과학(SF) 영화 ‘지오스톰’의 첫 대사다. 영화 속에서 유엔(UN)은 더 이상의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수천 개의 위성으로 이뤄진 세계 인공위성 네크워크를 통해 지구의 기후를 조종할 수 있는 ‘더치보이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기면서 세계 곳곳에서 쓰나미와 용암 분출, 혹한 등 상상을 넘어서는 기상이변이 일어난다.

기후재난을 소재로 한 SF영화 지오스톰의 한 장면. 여러개의 초대형 토네이도 한꺼번에 발생해 도시를 휩쓸고 있다.

기후재난을 소재로 한 SF영화 지오스톰의 한 장면. 여러개의 초대형 토네이도 한꺼번에 발생해 도시를 휩쓸고 있다.

SF영화가 상상한 세상이 현실로 다가온다 

2004년 개봉한 ‘투모로우’는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발생하는 기상이변으로 지구가 갑작스런 빙하기에 빠져든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온난화로 극강의 한파가 찾아온다는 역설적인 전개지만, 과학자들은 전혀 말이 안 되는 얘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북극에 가까운 고위도 지역의 상공에는 시속 100㎞의 속도로 빠르게 흐르는 제트기류가 있는데, 이게 북극지방의 찬 기운이 중ㆍ저위도로 내려오는 것을 막아주는 ‘에어커튼’역할을 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극지방의 차가운 공기가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 최근 수년간 북미 지역 등 북반구 일부에 잦았던 한파와 폭설이 바로 이 때문이다.

지오스톰과 투모로우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재난을 소재로 한 대표적 SF영화다. 영화의 흥행을 위해 기후위기의 결과를 과장한 측면은 있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아무도 경고에 귀기울지 않았다’는  ‘지오스톰’의 첫 대사처럼 1997년 교토의정서협약, 2015년 파리기후협약 등을 통해 지구온난화 경고가 이어졌지만, 온실가스 상승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기후위기는 인류가 알고도 막지 못하는 디스토피아이고, SF영화는 미리 가본 기후재앙인 셈이다.

SF영화 투모로우의 한 장면. 극한의 한파가 몰아쳐 미국 뉴욕이 얼음과 눈의 도시로 변했다.

SF영화 투모로우의 한 장면. 극한의 한파가 몰아쳐 미국 뉴욕이 얼음과 눈의 도시로 변했다.

과학자들, 티핑포인트를 얘기하다

기후재앙의 역사에서 올해, 2021년은 기록에 남을 만한 해가 될 전망이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북미 서부지역의 폭염과 화재는 아직도 그칠 줄을 모르고 있다. 이 지역의 이상고온 현상으로 온도가 섭씨 50도를 웃돌고 있으며, 곳곳에서 산불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극지방의 얼음도 빠르게 녹고 있다.  덴마크 연구단체 폴라 포털은 지난 5일 “그린란드 빙하가 지난주 폭염으로 미국 플로리다 전역을 5cm 높이의 물로 뒤덮을 정도로 녹았다”고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그린란드에서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하루 평균 80억t씩 총 410억t의 빙하가 손실됐다. 지난달 중국 정저우에서는 1년치에 해당하는 비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이로 인한 사망자가 292명, 실종자는 47명에 달했다. 2019년 기상관측 사상 최고의 폭염을 경험했던 서유럽엔 올 여름 기록적 폭우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중순 서유럽 폭우로 독일과 벨기에서는 사망자만 210명이 발생했다.

기후과학자들은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티핑 포인트’란 특정 현상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해 더는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시점을 말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18년 총회에서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혁명 전보다 섭씨 1.5도 이상 오를 경우를 인간이 지구 기후를 통제하기 불가능해지는 티핑 포인트로 지적한 바 있다.

북극의 바다얼음(海氷),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 남극 빙상(氷床) 등은 대표적 티핑 포인트의 대상으로 거론된다. 북극 해빙은 태양의 빛과 열의 80% 이상 우주로 반사한다. 해빙이 녹고 바닷물만 남을 경우 반사율이 10% 아래로 떨어지면서, 지구 기온이 추가로 상승할 수 있다. 투모로우의 설명처럼 북극을 감싸고 있는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찬공기가 대거 중위도 이하로 밀려 내려올 수 있다는 얘기다.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 아래에서는 메탄이 갇혀있는데, 온난화로 동토층이 녹기 시작하면서 메탄이 방출돼 지구 온난화를 더 가속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20~30배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린란드 일루리삿 인근 해안에서 한 어선이 빙산 부근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린란드 일루리삿 인근 해안에서 한 어선이 빙산 부근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1세기 들어 이상기후 재난 급증

남극 빙상도 심각하다. 유규철 극지연구소 박사는 “기후모델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평균 2도 올라갈 경우 전 지구 담수의 60%를 차지하는 남극대륙이 녹아내리게 된다”며“그 결과는 전 지구 해수면이 지금보다 3.3m 상승하고 세계 주요 해안도시들이 잠기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이런 침수가 어느 순간 급격히 몰려온다는 것”이라며“남극대륙 위에 있던 초대형 빙상들이 어느 순간 무너져서 바다로 갑자기 흘러 들어가면 1년 안에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엔 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의 지난해 10월 발표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이상기후로 인한 재난이 급증하고 있으며, 지난 20년 동안 발생한 재난으로 인해 123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42억 명이 손해를 입었다. 투모로우와 지오스톰 속 기후재난이 더이상 SF영화 속의 얘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팀 렌튼 영국 엑서터대 글로벌 시스템 연구소 소장은 “북극의 해빙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고,  영구 동토층은 이미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방출하기 시작했다”며 “이제 기후 시스템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거나, 적어도 매우 가까워졌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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