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쟁처럼 무너져…폐업마저 부럽다" 빈사상태 된 자영업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일 서울 중구 명동에 상점들이 폐점한 채 문이 닫혀 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대로 39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뉴스1

5일 서울 중구 명동에 상점들이 폐점한 채 문이 닫혀 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대로 39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뉴스1

“7년간의 노력이 6개월 만에 무너졌다. ‘전쟁이 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거리 상권에서 술집 4개를 운영하던 정효봉(39)씨는 지난해 3개를 폐업했다. 폐업으로 정리한 직원만 25명에 이른다. 2014년부터 홍대에서 장사를 시작한 그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6개월을 “전쟁을 겪은 기분이었다”고 표현했다. 현재 그는 수억 원에 달하는 빚을 감당하기 위해 10명의 직원과 운영하던 본점 하나를 혼자 운영하고 있다.

“부업하며 가게 적자 메꿔”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에서 펍을 운영하던 김성수(37)씨는 “코로나19가 심해지면서 가게 문을 열 수록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 낮에 따로 부업을 하며 임대료와 관리비 등을 충당했다”며 “올 7월에 자정까지 영업을 허용한다는 얘기를 듣고 희망을 가졌지만, 거리두기 4단계 시행 소식을 듣고 더는 손해 볼 수 없어 이번 달에 폐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5일 중소벤처기업연구원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월 자영업자는 558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 2763만 7000명 중 20.2%를 차지했다. 1982년 7월 관련 통계가 나온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특히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전년동월대비 6.1% 줄면서 31개월 연속 감소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고용원있는 자영업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게 큰 문제다. 역량이 있는 자영업자가 계속 폐업을 하거나 고용원을 없애고 있다. 자영업의 경영환경이 정말 안 좋아지고 있다는 의미”라며 “한국 사회엔 도소매업과 숙박업, 음식점 등 생계형 창업의 비중이 높은데, 이들 업종은 코로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정씨는 “홍대 상권에서 같이 장사하던 주변 사장님들 절반 이상이 폐업했다.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가길 희망하며 마지막으로 버티고 있지만, 근처 상권 자체가 다 와르르 무너진 거 같다”고 했다.

폐업마저 부러운 자영업자

폐업마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자영업자도 많다. 폐업 시 소상공인 대출금과 임대료 등을 일시 상환해야 하는데, 그런 여력조차 없어 손해를 감수하면서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들이다. 인천 연수구에서 어린이스포츠 클럽을 운영하던 이모(35)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회원제로 돌아가는 체육 시설 특성상 지난해 이후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였다. 지난달에는 임대계약이 끝나면서 사업장을 집으로 옮겼다. 폐업하는 순간 대출금을 다 갚아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 한 식당에서 관계자들이 폐업으로 인해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수도권 거리두기가 이어지며 폐업을 결정하는 자영업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뉴스1

서울 한 식당에서 관계자들이 폐업으로 인해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수도권 거리두기가 이어지며 폐업을 결정하는 자영업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뉴스1

강남구 대치동에서 실내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이기봉(36)씨는 “폐업하는 순간 일시 상환해야 하는 대출금만 6000만원이다. 지난해부터 흑자인 적이 없지만, 보증금을 고려해도 한참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족쇄에 묶인 거 같다. 대출금을 갚으려면 장사를 해야 하는데, 사실상 장사를 못 한다. 그렇다고 폐업을 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자영업자 약 246만명이 받아간 대출 규모는 831조8000억원이다. 1분기 기준 지난해보다 18.8%가 증가하며 2012년 자영업자 대출 통계를 집계한 이후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다.

거리두기 2주 연장… “빈사상태로 몰려”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가 2주 연장되며 자영업자들이 “빈사 상태에 몰렸다”는 반응도 나왔다. 소상공인연합회 측은 “수도권에서만 한 달 동안 장사를 못 하면서 자영업자들은 빈사상태다”라고 했다.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이창호 공동대표는 “언제까지 거리두기가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현장에선 제일 크다. 자영업자들의 희망이 아예 사라졌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