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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력' 빈정 말라, 언뜻 보면 금색…인생은 동메달이다[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8.07 10:57

업데이트 2021.08.0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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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잃어버린 한 해의 이름으로 치러진 ‘도쿄 올림픽 2020’. 코로나19 사태 속에 과연 이런 대규모 행사를 여는 게 맞는지 방역상 논란과는 별개로 이번 올림픽은 나름의 감동을 선사했다.
한낱 바이러스 앞에 무너지는 무력함에 시달리는 요즘, 그토록 생명력 넘치는 신체와 건강한 정신으로 달리고 뛰어오르고 물살을 가르는 모습이라니.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양 손을 한껏 들어 올릴 때마다 새삼 인간의 위대함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우크라이나 유도 선수 다리아 빌로디드가 동메달을 딴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유도 선수 다리아 빌로디드가 동메달을 딴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 와중에 눈에 띈 건 동메달을 딴 선수들이다. 기록경기가 아닌 토너먼트는 준결승전에서 패한 선수들이 3·4위전을 통해 동메달 결정전을 치르는데 꺽꺽 통곡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스트리아 유도 선수 샤밀 보르하슈빌리가 남자 81kg급 동메달결정전에서 승리한 뒤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다. 연합뉴스

오스트리아 유도 선수 샤밀 보르하슈빌리가 남자 81kg급 동메달결정전에서 승리한 뒤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다. 연합뉴스

유도의 경우 경기 내내 무서울 정도로 격렬하게 겨루던 선수들이 3·4위전을 이기고 나선 국적을 가리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처음엔 덤덤히 승리를 받아들이는가 싶다가도 코치를 만나고부터는 어김없이 자신보다 몸집이 작은 품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곤 했다. 경기를 중계한 아나운서는 늘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겠죠”라고 했다.

옮림픽에서 처음부터 금메달을 준 건 아니었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렸을 땐 1등이 은메달을, 2등은 동메달을 받았다. 그러다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올림픽 때부터 매 경기 1~3위에게 차례로 금·은·동메달을 수여하기 시작했다.

옮림픽에서 처음부터 금메달을 준 건 아니었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렸을 땐 1등이 은메달을, 2등은 동메달을 받았다. 그러다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올림픽 때부터 매 경기 1~3위에게 차례로 금·은·동메달을 수여하기 시작했다.

동메달은 3개의 메달 가운데 가장 복잡 미묘한 상이다. 선수로선 우선 ‘이겼다’ ‘메달권에 들었다’는 기쁨이 밀려온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 때 그 경기(준결승전)만 이겼더라면 금메달을 딸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크다.
그러면서 지난 4년 동안(이번엔 5년) 올림픽을 위해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심장과 근육이 터져나갈 것 같은 고된 훈련에 매진한 나날들, 그 과정에서 수없이 고뇌하고 다잡았던 나와의 싸움들, 일반 사람들은 모르는 불화와 마찰 등 좋지 않은 일들까지 주마등처럼 스치며 그 대가로 주어진 동메달을 목에 걸기 전 그렇게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것일 테다.

한국 펜싱 남자 에페 대표팀(마세건, 송재호, 권영준, 박상영)이 지난달 30일 도쿄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단체 동메달 결정전에서 중국을 꺽은 뒤 기뻐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한국 펜싱 남자 에페 대표팀(마세건, 송재호, 권영준, 박상영)이 지난달 30일 도쿄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단체 동메달 결정전에서 중국을 꺽은 뒤 기뻐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도쿄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도마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여서정(오른쪽)이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청 로비에서 열린 메달 봉납식에서 아버지 여홍철 교수와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도마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여서정(오른쪽)이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청 로비에서 열린 메달 봉납식에서 아버지 여홍철 교수와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그런 만큼 동메달을 따는 과정은 드라마 같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아빠와 딸이 25년의 세월을 두고 나란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여홍철·여서정 부녀(기계체조 도마), 무려 11점 차라는 점수를 뒤집으며 대역전극을 펼쳐 승리한 선수들(펜싱 사브르 단체전),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3세면서도 “내 국적은 할아버지가 지킨 대한민국”이라며 동메달을 따낸 안창림 선수(유도) 등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 펜싱 국가대표팀 김지연, 윤지수, 최수연, 서지연(왼쪽부터)이 지난달 31일 도쿄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한뒤 기뻐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대한민국 펜싱 국가대표팀 김지연, 윤지수, 최수연, 서지연(왼쪽부터)이 지난달 31일 도쿄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한뒤 기뻐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안창림이 지난달 26일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73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루스탐 오루조프(아제르바이잔)를 상대로 승리한 후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안창림이 지난달 26일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73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루스탐 오루조프(아제르바이잔)를 상대로 승리한 후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살아있는 체조 전설’로 불리며 누구나 디펜딩 챔피언으로 꼽던 미국의 시몬 바일스는 중압감에 돌연 경기를 포기해 세계를 충격 속에 빠뜨렸다. 하지만 결국 용기를 내 마지막 평균대 경기에 나섰고 동메달을 땄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0개가 넘는 금메달이 있는 그는 “지금까지 목에 건 그 어떤 금메달보다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들의 경기는 그 자체로 진한 감동이다.

수년간의 고된 노력, 세계 정상의 벽은 높다는 현실에 대한 깨달음, 심적인 부담, 소진된 체력을 딛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투지로 결국 얻어낸 메달.
이렇게 보면 동메달은 세 개의 메달 중 인생과 가장 닮았다. 살면서 1~2위 정상에 오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노력해도 능력은 물론 여러 현실적인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메달을 목에 걸 수는 있다. 극단적인 사회의 양극화로 인해 ‘노오력’이라며 빈정되는 단어로 불리기도 하지만 노력은 통해 뭔가를 이뤄내는 건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귀한 가치다.

대중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과거 ‘금메달 아니면 아무 소용없다’던 1등·결과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선수 개인의 스토리와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 스포츠 정신에 얼마나 부합한 경기를 치렀느냐에 큰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육상 국가대표 우상혁이 지난 1일 오후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결승전 경기에서 4위 2.35 한국신기록을 달성한 뒤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육상 국가대표 우상혁이 지난 1일 오후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결승전 경기에서 4위 2.35 한국신기록을 달성한 뒤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비록 동메달도 아닌 4위를 기록했지만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올림픽의 열정과 기쁨을 온몸으로 내뿜은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의 포효나, 금메달 3관왕에 오르며 세계1위에 등극한 양궁 안산 선수의 미소나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은 같다. 오히려 순위는 한참 떨어지더라도 그동안 한국이 약세를 보인 수영·육상·다이빙 등에서 자신만의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선 선수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무게 450g에 구리 95%와 주석 5%로 만든 동메달. 빛을 받으면 언뜻 금색으로 반짝이는 동메달이야말로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람들, 치열한 경쟁 속 승자독식에 지친 젊은 세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상징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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