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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참고, 한 발 더 뛰고…김연경 절박함이 ‘원팀’ 이끌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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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호 04면

여자배구 기적 만드는 두 리더십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후회 없이! 후회 없이! 후회 없이!”

“올려만 놓으라, 내가 해결하겠다” #경기 내내 목이 쉬도록 동료 독려 #앞장서 어려운 공격·수비 도맡아 #강팀 잇따라 꺾어 목표 초과 달성 #혼신 다해 대표팀 집중하는 이유? #“아이들이 배구선수 꿈꾸게 하고파”

지난달 29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A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대표팀이 세계 7위 도미니카공화국에 밀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작전 타임 때 김연경(33·중국 상하이 유베스트)은 “해보자”는 말을 5번이나 외쳤다. “후회 없이”란 말도 3번 덧붙였다.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4강 진출을 확정한 뒤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대표팀 에이스 김연경(왼쪽)과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4강 진출을 확정한 뒤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대표팀 에이스 김연경(왼쪽)과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 [연합뉴스]

지시 같기도 하고, 주문 같기도 하고, 기도 같기도 한 그의 말은 묵직했다. 선수들은 조용히 김연경의 말을 흡수했다. 중계석에서 그의 포효를 들은 황연주 MBC 해설위원은 눈물을 글썽였다. 스스로 다그치고, 동료를 격려하는 ‘배구 여제’ 김연경의 절박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간절한 그의 말대로 여자배구대표팀은 도쿄올림픽에서 ‘후회 없이 해보고’ 있다. 이 경기에서 김연경은 20득점 하면서 대표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지난달 31일 세계 랭킹 5위 일본과 라이벌전에서 다시 세트 스코어 3-2로 이겼다. 5세트를 9-11로 뒤진 상황에서 그는 “하나만 더 하면 기회가 온다”고 선수들을 독려했다. 13-14 매치포인트 땐 블로커를 맞고 튄 공을 몸을 날려 받아냈다. 불타오르는 승리욕을 온몸으로 던져 보여줬다. 양 팀 최다인 30득점에 성공한 김연경의 활약에 힘입어 8강에 진출했다.

김연경(오른쪽)과 라바리니 감독은 수차례 역경을 함께 이겨내며 끈끈한 동료애를 쌓았다. 평소 라바리니와 친한 친구처럼 대화하는 김연경. [뉴스1]

김연경(오른쪽)과 라바리니 감독은 수차례 역경을 함께 이겨내며 끈끈한 동료애를 쌓았다. 평소 라바리니와 친한 친구처럼 대화하는 김연경.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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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은 지난 4일 세계 4위 터키를 상대한 8강전에서도 양 팀 최다인 28점을 올렸다. 또한 디그(스파이크를 받아내는 것)도 수비전문 리베로 오지영보다 더 많은 16개를 기록했다. 최고 스타인 김연경이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하니 후배들이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김연경은 일본전을 제외한 조별리그에선 많은 공격을 하지 않았다. 8강전에서는 오픈 공격과 반격 등 큰 공격을 도맡았다. 조별리그 블로킹 1위 제라 귀네슈와 김연경의 전 동료 에다 에르뎀이 가로막았지만 기어이 뚫어냈다. 자신을 잘 아는 선수를 상대로 변화를 준 것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상대 목적타 서브에 고전하는 박정아(28·한국도로공사)에게 김연경은 “괜찮아. 올려만 놓으면 (내가) 해결할게”라고 다독였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 경기 중 흐름이 바뀔 때마다 동료들과 계속 소통하며 ‘코트 위의 감독’ 역할까지 했다. 김연경은 심판 판정에 어필을 하다 경고를 두 번 받아 실점했다. 경기 후 그는 “항의해야 심판이 반응하더라. 강하게 말해야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많은 이들이 터키전 하이라이트로 5세트 10-10 이후를 꼽는다. 김연경의 연속 득점과 상대 실수, 그리고 김연경의 블로킹과 스파이크가 이어지면서 15-13으로 이겼다. 이도희 전 현대건설 감독은 “올림픽에서 김연경의 리시브 범위가 더 넓어졌다. 특히 일본전에서는 다이빙 디그를 여러 번 하는 걸 보고 놀랐다. 연경이가 어떤 마음으로 올림픽에 나섰는지 읽을 수 있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올림픽 조별리그 한일전 승리 후 선수들과 기뻐하는 라바리니.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조별리그 한일전 승리 후 선수들과 기뻐하는 라바리니. [연합뉴스]

이 경기가 끝난 뒤 김연경은 “아따, 죽겄다잉. 한 경기 한 경기가 피가 말린다. 와…” 하고 내뱉었다. 구수한 사투리가 섞인 이 말에 한국은 물론 일본 배구 팬들도 열광했다. 사력을 다한 선수의 한마디가 국경을 초월했다.

김연경은 2012년 런던올림픽 득점 1위에 오르면서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았다. 그러나 대표팀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에 져 4위에 그쳤다. 이후 김연경은 일본·터키에서 모두 우승과 리그 MVP 수상을 경험했고, 한동안 남녀 배구 선수를 통틀어 최고 연봉(120만 유로·16억원)까지 받았다.

한일전 도중 작전 지시하는 라바리니. [연합뉴스]

한일전 도중 작전 지시하는 라바리니. [연합뉴스]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났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그의 파워와 높이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하나 남은 목표는 국가대표로서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것이다. 그걸 위해 온몸을 던지는 걸 누구보다 동료들이 잘 안다. 터키전에서 김연경을 도와 16점을 올린 박정아는 “연경 언니의 마지막 올림픽이잖아요”라고 말했다. 김연경의 마지막 올림픽에서 모두가 힘들 합치고 있다.

2016년 리우올림픽 8강에서 멈춘 대표팀의 도쿄 대회 전망은 밝지 않았다. 주축이었던 이재영-다영 자매가 학교 폭력으로 인해 빠졌다. 그래도 김연경은 “꼭 메달을 따겠다”고 수없이 말했다.

훈련 중 진지한 표정으로 라바라니의 설명을 듣는 김연경. [뉴스1]

훈련 중 진지한 표정으로 라바라니의 설명을 듣는 김연경. [뉴스1]

경기를 치를수록 김연경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게 입증됐다. 그는 8강까지 치른 6경기에서 115점을 올려 전체 득점 2위에 올랐다. 공격 효율((공격 성공-범실)/공격시도)에서도 5위(35.02%)다. 디그 4위(세트당 2.63개), 리시브 8위(성공률 60.94%)다. 혼자 공격과 수비 모두를 이끄는데도 대표팀의 조직력이 탄탄하다. 김연경이 아파도 참고, 한 발 더 뛰는 걸 동료들이 잘 알기 때문이다. 매 경기 목이 쉬도록 소리치는 리더를 믿고 따르지 않을 수 없다.

2018년 터키에서 김연경을 만나 “왜 그렇게 대표팀에 집중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예전보다 배구 인기가 높아졌다. 대표팀에서 우리가 잘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환경이 더 좋아질 것이다. 아이들이 배구 선수를 꿈꾸게 하고 싶다.”

배구 선수로서 모든 걸 이룬 것 같은 김연경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선수처럼 악착같이 몸을 던지는 이유다. 그건 모든 배구 선수의 꿈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함께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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