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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률 曰] 풍선효과는 불가항력적 현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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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호 30면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뉴스룸 본부장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뉴스룸 본부장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1971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마약 생산·유통을 근절하기 위해 관련 조직을 확대하고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마리화나 흡연자까지 처벌했다. 그런데 마약 거래가 근절되기는커녕 단속이 느슨한 지역에서 마약 제조·밀매, 자금 세탁 등이 이뤄졌다. 당시 미국 언론은 이를 ‘풍선효과’라고 지칭했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모습을 빗대서 표현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그 후에도 마약과의 전쟁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미국이 페루·볼리비아의 코카인 생산기지와 밀매 조직을 단속하자 그들은 콜롬비아로 숨어들었다. 콜롬비아·멕시코를 압박하면 마약밀매 조직이 에콰도르·베네수엘라 등지로 옮겨갔다.

인위적 규제로 누르면 뒤탈 생겨 #‘바람’ 미리 빼서 후유증 줄여야

풍선효과는 경제 용어로도 쓰인다. 정부가 규제로 특정 재화나 서비스 공급을 차단하거나 줄이려고 해도 수요가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거래가 이뤄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시장의 과열, 불평등 고용계약 등을 타개하려는 선한 목적이라도 인위적인 정책이나 규제만으로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힘을 억누를 수 없다는 비판적 의미로 쓴다.

풍선효과는 부동산 시장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정부가 아파트값 급등을 막기 위해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상가나 오피스텔로 (투기) 수요가 몰리는 게 대표적이다. 지난 6월 KB 오피스텔 시세지수는 117.9로 기준점인 2019년 1월(100) 대비 17.9% 높았다. 지방 아파트 매매에서도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리얼투데이가 3일 한국부동산원의 올해 상반기 전국 아파트 거래량을 분석한 결과 외지인(관할 시도 외 거주자) 매수 비율은 27.7%였다. 특히 지방(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제주) 아파트 매매에서 외지인 비율은 평균 30.8%로, 5대 광역시(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 평균 18.4%)보다 높았다. 정부가 서울·수도권 부동산 시장을 억누른 역효과로 풀이된다.

금융권에서도 풍선효과를 흔히 볼 수 있다. 올해 1분기 말 생명보험사·손해보험사의 가계 부동산담보대출채권 잔액은 각각 32조4603억원과 18조9166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 각각 14.7%와 6.2% 증가한 수치다. 정부가 은행권 대출을 적극적으로 규제하자 나타난 현상이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가계대출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한창인 가운데 여름 휴가철을 맞아 전국의 피서지에서도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강원도 환동해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주말 동안 강원도 동해안에 93만여 명의 피서객이 몰렸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자가 적어 청정지역으로 꼽히는 고성군 일대 해수욕장에는 강원도 전체의 70%가 넘는 67만여 명이 모여 장사진을 이뤘다. 강릉시가 지난달 19~25일, 양양군이 지난달 25~30일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4단계로 올리자 피서객들이 고성으로 옮겨갔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풍선효과는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는 어느 곳에서든 나타난다. 특히 금지 또는 제한 규제를 미봉책으로 구사할 때 자주 볼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데 법과 제도의 빈틈도 늘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풍선효과는 어쩌면 불가항력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다만 사전에 풍선의 바람을 서서히 빼서 혹시 모를 후유증을 가능한 줄이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부동산 시장에서는 수요만 억누르기보다 공급을 충분히 늘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지역의 단계를 미리 비슷하게 조정하는 식의 대처가 필요하다. 풍선을 더 세게 누르거나, 누르겠다는 엄포만 남발해서는 악순환만 되풀이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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