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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옵틱·글라스휘테 재창업 성공, 동독 간판 기업 우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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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호 27면

독일 통일 그 후 30년 〈10〉

켐니츠로 이름이 바뀐 동독 카를마르크스슈타트의 서비스센터. [사진 독일 연방 문서 보관소]

켐니츠로 이름이 바뀐 동독 카를마르크스슈타트의 서비스센터. [사진 독일 연방 문서 보관소]

동독이 실패했던 원인인 동시에 1989년과 90년의 동독 체제 붕괴 이후에 가장 큰 도전 과제들 중 하나가 바로 경제전환이었다. 한국에서는 통일 문제에 있어서 이와 관련된 논의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한국이 다가올 자신의 통일 방식에 관한 청사진을 가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세 가지의 상이하지만 시간적으로는 동시에 진행되는 전환 과정이다.

신연방주 경제 빛과 그림자 #통일 후 경제전환 과정 큰 어려움 #서비스업·첨단기술 격차 등 한계 #동독 생산성 서독보다 20% 낮아 #비행선 제작 카고리프터는 실패 #테슬라 공장, 환경론자들이 반대 #정치 동맥 경화·관료주의도 한몫

우선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바뀌면서 자극 내지는 동기 부여가 생겨나게 된다. 동독 시절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을 완전히 없애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계획 경제라는 획일적인 틀 안에서 그러한 덕목들은 어쩔 수 없이 고사(枯死)할 수밖에 없었다. 동독도 물론 기술 분야에서는 혁신을 원했지만, 누군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계획의 실행이 무엇보다 우선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는 묻힐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직업에 대한 정의가 매우 협소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았다. 즉 자립적인 농부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트랙터 운전사나 소 젖 짜는 사람, 사료 주는 사람 등이 있을 뿐이었다. 소규모 사업장을 운영하는 극소수의 수공업자들만 자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작센주 실리콘색소니도 성공 사례

랑에 운트 죄네 시계. [사진 독일 연방 문서 보관소]

랑에 운트 죄네 시계. [사진 독일 연방 문서 보관소]

또 하나의 과정은 경제 구조의 전환이다. 제조업 중심 구조에서 서비스 사회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동독 시절에는 1차 산업(광업·농업·어업)과 공업이 경제활동(GDP 기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서비스업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념적인 이유가 강했다. 소위 ‘노동자와 농민의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가 가장 중요한 핵심 계급으로서 사회주의 이념을 떠받치는 기능으로서의 공업과 농업이 지니는 이념적인 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서비스업은 카를 마르크스 이후로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간주됐다. 식당이나 미용사와 같은 최소한의 서비스 업종은 필요하지만 그 밖의 서비스 업종은 계획 경제에서는 필요치 않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광고 등과 같은 관련 서비스 업종들은 최소한으로 제한했다.

전환이 이루어졌던 세 번째 분야는 서독에 대한 기술 격차를 줄이는 작업이었다. 사회주의 계획 경제와 낡은 경제 구조로 인해 모든 첨단 기술 분야에서 동서독 간에는 수년간의 기술 격차가 존재했다. 또한 기계 및 설비가 물리적인 수명을 다할 정도로 사용을 해서 자산가치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낡았으며 감가상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통일이 된 지 한 세대가 지났는데도 신연방주들의 생산성이 구서독 지역과 비교해서 아직도 20% 정도 낮다. 국가적 차원의 막대한 투자를 통해 구동독 지역의 기반 시설이 구서독 지역의 그것보다 더 현대적이고 개별 기업들은 높은 자본금을 축적하게 되었지만 통일 이후 구서독 지역에 이루어진 투자를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구동독 지역의 자본금 축적이 여전히 적은 것이 사실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캔틸레버식 건물은 당초 비행선을 제작하기 위해 세워졌으나 현재는 ‘트로피칼 아일랜즈’ 워터파크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 독일 연방 문서 보관소]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캔틸레버식 건물은 당초 비행선을 제작하기 위해 세워졌으나 현재는 ‘트로피칼 아일랜즈’ 워터파크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 독일 연방 문서 보관소]

전체적으로 볼 때 통일 이후 몇몇 분야에서는 커다란 성과가 있었으나 동시에 많은 문제점들과 실패가 드러나기도 했다. 동독의 몇몇 전통 있는 회사와 브랜드들은 통일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잘 살아 남았는데 로트캡헨 샴페인이나 라데베르거 필스너 맥주 또는 베르네스그륀더 필스너 맥주와 같이 통일 이후 서독으로부터 새로운 자본 투자를 받거나 새로운 주인을 만나 성공적으로 운영을 한 사례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소수의 유명 첨단 기술 업체들이다. 이에 속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19세기에 칼 차이스가 예나에 설립한 광전자공학, 시스템공학 및 정밀가공 분야 전문업체인 옌옵틱을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동독 시절에 칼 차이스 예나 콤비나트 인민기업으로 국유화됐다가 1990년 이후에 다시 민영화됐다. 전 세계 경제계에 탄탄한 인맥을 지니고 있던 로타르 슈패트 전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총리가 동독의 유일한 상장 기업으로서 튀링겐주에 위치한 이 기업의 경영을 넘겨 받아 글로벌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옌옵틱은 현재 전 세계 80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한국에도 사무소를 두고 있다.

또 다른 재창업의 성공 사례는 작센주 에르츠게비르게 지역에 있는 글라스휘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1845년부터 시계를 만드는 전통이 있었는데 1945년에 시계 제조업체들이 국유화됐으며 이렇게 생겨난 글라스휘테 시계 제조 인민기업들은 냉전 시절에 모든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시계를 공급했다. 통일 이후 서독으로부터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고가 제품들을 만드는 시계 회사들로 거듭나게 되었다. 랑에 운트 죄네 또는 글라스휘테 오리기날 그리고 스워치의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이 이에 속하는데 이 기업들은 시계와 항법정밀기기 등을 제작하고 있다.

위의 사례들과 유사하게 작센주의 자동차 산업도 2차 세계 대전 이전과 이후 동독에서도 지속된 오랜 전통을 살려 츠비카우를 중심으로 다시 자동차를 생산하게 됐다. 작센주의 반도체 클러스터와 같이 새로운 클러스터들도 성공한 사례들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실리콘색소니다. 이곳에서는 마이크로전자공학과 나노전자공학,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 스마트시스템, 에너지시스템 등의 분야에서 330개 이상의 제작 업체와 협력 업체 그리고 용역 제공업체들과 대학, 연구소, 작센주의 공공 시설들이 함께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실패 사례들도 있었다. 1990년 통일 직후에 이미 여러 게마인데에서 엄청나게 큰 면적의 산업 부지들을 선보였는데, 많은 경우에는 막대한 국가 보조가 있는 조건이었지만 실제로 입주한 기업들은 없거나 매우 적은 상황이었다.

좌파 정부, 투자 기회 걷어차기도

테슬라 전기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한 조성된 베를린 남쪽의 기가팩토리 부지. 환경보호론자들과 관료주의가 합해져서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 [사진 독일 연방 문서 보관소]

테슬라 전기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한 조성된 베를린 남쪽의 기가팩토리 부지. 환경보호론자들과 관료주의가 합해져서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 [사진 독일 연방 문서 보관소]

가장 큰 실패 사례로는 브란덴부르크주 소재의 카고리프터 주식회사를 들 수 있다. 이 상장 기업은 1996년부터 체펠린과 같은 비행선을 제작하려고 했다. 최대 160t의 하중을 싣고 1만㎞까지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지만 비행기보다 운임이 저렴한 비행선을 구상했다. 고액의 국가 보조금을 포함하여 수백만 마르크의 투자를 해서 구조적으로 취약한 브란덴부르크주에 혁신 산업을 유치하고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결과 베를린의 남쪽에 있는 크라우스니크에 길이 360m, 너비 210m, 높이 107m 크기의 세계에서 가장 큰 캔틸레버식 건물이 지어졌다. 이곳에서 대형 비행선을 제작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비용이 계속 증가했다. 당초 예상 비용은 3억 마르크(약 1억5000만 유로)였는데 나중에는 15억 마르크(약 7억6700만 유로)까지 늘어났다. 주식 상장을 통해 조달한 금액은 9000만 유로에 불과했다. 당초 계획에는 훨씬 못 미치는 액수였으며 기술적인 성취도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비행선의 운송 능력과 비행 거리도 계획 대비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다. 결국 이 기업은 파산 신청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비행선 제작을 위해 지어진 대규모 건물은 말레이시아 투자자에게 매각되어 지금은 ‘트로피칼 아일랜즈’라는 이름의 워터파크가 되었다. 이는 많은 사람에게 동독 산업에 대한 재앙의 징조처럼 여겨졌다. 첨단 기술을 통한 제품을 생산해야 할 공장 부지가 놀이공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어서 이와 유사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2019년에 미국의 유명한 기업인인 일런 머스크가 베를린의 남쪽, 브란덴부르크의 한 지역에 테슬라의 기가팩토리를 지어서 테슬라 Y모델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건축 개시 년도는 2020년이었는데 코로나 사태와 독일의 관료주의가 합해져서 공사 시작이 계속 연기됐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전체적으로는 경쟁력이 있기는 하지만 국가의 간섭이 심하고 많은 동서독 사람이 국가 지원에 익숙한 습성이 있다 보니 대규모 프로젝트가 시행될 때 기쁜 마음으로 응원하기보다는 대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기 일쑤다. 함부르크와 베를린 사이에 자기부상열차를 놓겠다는 계획에 대해서 환경 보호론자들이 반대했던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래서 지금은 중국이 상당 부분 독일의 기술이 바탕이 된 자기부상열차 구간을 훨씬 더 저렴한 비용으로 비행기와 견주어도 경쟁력을 가지도록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테슬라의 기가팩토리 경우에도 150㏊의 소나무 숲을 베어 내자 바로 환경 보호론자들의 시위가 시작됐다. 브란덴부르크주의 정책도 늘 새로운 규제 조항들을 만들어 냈으며 브란덴부르크주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는 공장 건설의 시작을 막고 있었다. 오랜 시간 지속되어온 독일 정치 시스템의 동맥 경화와 과도한 관료주의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고 하겠다.

이렇듯 신연방주 경제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전통적으로 늘 부지런하고 혁신을 추구했던 작센 사람들은 예전의 전통을 다시 되찾았지만 이미 비스마르크 시절에 ‘100년은 낙후된’ 것으로 평가받았던 독일 북동부에 자리 잡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는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뒤처져 있다. 베를린은 수도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많은 성과를 올렸지만 베를린의 좌파 정부는 많은 투자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통일의 결과를 논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점이 도래했다. 시장경제체제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번역 : 김영수 한스 자이델 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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