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 이상기류
암호화폐 비트코인에 투자 중인 전직 데이트레이더(주가 움직임만을 보고 차익을 노리는 주식 투자자) 박모(48)씨는 최근 몇 주 큰 혼란을 겪었다. 가격 움직임이 그동안 비트코인이 보였던 패턴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박씨는 “비트코인은 가격 등락 패턴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 주식보다 외려 쉽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계속 예측을 벗어나고 있다”며 “악재에 오르고, 차트도 파격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시세, 기존 패턴과 많이 달라 #국내 ‘김치 프리미엄’ 1%대로 축소 #기관 투자자 매집설 등 소문 무성 #“본격 반등 신호” vs “아직 아니다” #캐시 우드 “인플레 회피용으로 유망”
지난해부터 이어진 폭발적 매수세에 4월 한때 6만 달러대 고지까지 밟았던 비트코인은 5월부터 급격한 가격 하락을 겪었다. 미국의 전기차 회사 테슬라가 돌연 비트코인 결제 허용을 취소하고, 중국 정부가 시장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다. 이들 대형 악재는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달 21일 저점에서 비트코인 시세는 반등하기 시작했다. 증시에서 말하는 흔한 ‘데드캣 바운스’(폭락 후 잠깐의 기계적 반등)라 보기에도 묘했다. 이날부터 이달 1일까지 11일 연속 상승했는데, 이는 8년 만의 최장 기록이다.
특히 그사이 아마존이 비트코인 결제 허용을 검토 중이라는 일부 외신 보도가 25일(현지시간) 나왔다가, 이튿날 아마존 측에서 이를 빠르게 공식 부인하는 대형 악재가 나왔음에도 상승세는 멈추지 않았다. 미국 재무부나 연방준비제도의 암호화폐 관련 부정적 언급, 심지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입방정’마저도 악재로 작용해 가격이 휘청거리던 종전과는 사뭇 다른 패턴이다. 이에 대해 미 나스닥에 상장된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는 보고서에서 “기존과는 뭔가 느낌이 다르다”며 “가격 하락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비트코인을 둘러싼 이상기류는 이뿐만이 아니다. 가격 변동성 자체도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8년 만에 나타난 장기 상승 랠리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40% 남짓 올랐다. 일평균 상승률은 3%대에 그친다. 하락세로 돌아선 이달 1~4일에도 일평균 하락률은 2~3%에 그쳤다. 6월까지만 해도 하루에만 10% 넘게 가격이 떨어지거나, 거꾸로 10% 이상 올라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암호화폐) 못잖게 투자자들을 당혹시켰던 날이 많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주말 장세도 달라졌다. 암호화폐는 하루 24시간 쉬는 날 없이 주말에도 거래할 수 있는데, ‘주말=하락장’ 공식이 있을 만큼 주말만 되면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국내외 많은 투자자들이 주말 휴식을 위해 미리 차익을 실현한 뒤 관망하기 때문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에는 몇 주째 주말만 되면 가격이 오르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도 이상기류가 감지된다. 지난달 말엔 약 5개월 만에 국내 비트코인 가격이 해외보다 낮았다. ‘역(逆) 김치 프리미엄’이 발생한 것이다. 6일 현재도 김치 프리미엄은 1%대로 수개월 전 10~20%였던 데 비하면 대폭 하락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비트코인 가격이 지난달 21일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반등 국면에 접어든 게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5월부터 거듭된 악재에도 2만8000달러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는 ‘지지선’이 지난달까지 수차례 확인된 데다, 몇 가지의 이상기류 역시 공통적으로 세간의 우려를 낳았던 투자 과열 현상의 진정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이 악재에 둔감해진 것, 가격 변동성이 작아진 것, 주말 분위기가 달라진 것 등 모두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와 달리 평소 매수세에 과도한 거품이 끼지 않아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일부 기관 투자자들의 저점 매집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암호화폐 파생상품 거래소 델타익스체인지의 판카즈 발라니 CEO는 “비트코인이 3만 달러에서 4만2000달러로 가격 범위를 넓혔다”며 “4만5000달러 돌파를 시도해도 놀랍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자산운용사인 아크인베스트의 ‘돈나무 언니’ 캐시 우드 CEO는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심화된 현 시점에서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 위험을 회피하는 투자 수단으로 여전히 유망하다”고 말했다.
다만, 일련의 정황만으로는 가격 반등이 본격화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 테슬라의 비트코인 결제 허용 선언이나 코인베이스의 나스닥 입성처럼 확실한 호재가 뒷받침됐을 때 매수하는 편이 안전하다는 의견이다. 중국 등 주요국이 추진 중인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발행도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다. 민간 암호화폐엔 악재라는 비관론과, 시너지 효과를 예상하는 낙관론이 맞선다.
익명을 원한 블록체인 전문가는 “투자 과열 이후엔 가격 폭락이 발생한다는 건 암호화폐뿐 아니라 다른 모든 자산 시장에서 나타나는 만고의 진리”라며 “개인 투자자는 이를 조심하면서 본인 보유 자산 총액의 극히 일부만 가치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일희일비하지 말고 접근해야 승산이 커진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