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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뼈와 근육…인간 표면 안쪽을 드러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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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호 18면

인체 미학 탐구하는 조각가 최수앙

인체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 하는 수채화 ‘프래그먼츠’(2021) 연작. [사진 학고재]

인체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 하는 수채화 ‘프래그먼츠’(2021) 연작. [사진 학고재]

작가 최수앙(46)은 극사실적 조각으로 명성을 떨쳐왔다. 표정이며 피부, 눈망울에 손발톱까지 진짜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보이게 만든 1m 내외의 정교한 흙덩어리는 경이로웠고, 거기에 세상에 대한 감정까지 녹여내 보는 이의 마음을 뺏곤 했다. 고단한 표정으로 구부정하게 서 있는 전라의 노년 남성에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투영하거나, 수많은 손과 손가락을 모아 붙여 천사의 날개처럼 보이게 하는가 하면, 몸통은 사람인데 머리는 동물인 피라미드 속 그림 같은 형상을 구현하기도 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과 함께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기혜경)는 상찬도 받았다.

‘최수앙: Unfold’ 29일까지 학고재 #끊어진 인대 치료받다가 ‘각성’ #극사실적 생명체 묘사의 진화 #‘인체의 신비전’에서 튀어나온 듯 #신체 요소 평면 투사한 수채화 #‘프래그먼츠’ 연작 등 21점 전시

그렇게 ‘창조주의 영역’을 오가던 그에게 2018년 여름은 모질었다. 요즘 말로 자신을 ‘갈아넣는’ 작업의 무게를 그의 두 손과 팔이 더 이상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뭔가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대단히 노동집약적입니다. 다뤄야 할 수많은 재료가 있고, 그것을 온도나 습도나 시간 등이 적절하게 받쳐주어야 하죠. 특히 재료의 이기적인 면을 견뎌내야 하니까요. 한 손으로 무거운 덩어리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계속 손질하고. 무리가 쌓이다 보니 한쪽 인대는 끊어졌고 다른 쪽 인대는 너덜너덜해졌어요.”

최수앙 작가. [사진 학고재]

최수앙 작가. [사진 학고재]

외과 수술 이후 재활의 과정은 그에게는 일종의 ‘각성’이었다. 다친 것을 전환점으로 삼아보자고 마음먹었다. “그간의 작업과는 거리를 두고, ‘다 열어 놓은 상태가 돼보자’는 생각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가 돌아간 초심은 ‘에코르셰(Écorché)’였다. 에코르셰는 피부가 없는 상태로 근육이 노출되어 있는 인체나 동물의 그림이나 모형을 뜻한다. 16세기부터 미술가들의 작업실 한 켠을 차지했던, 오래된 해부학 교재였다.

“사실적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실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인간의 표면 안쪽 구조에 대해 정확히 몰랐는데, 이번에 제대로 들여다보자 싶었죠. 그런데 의학적 자료를 그대로 구현한다면 인체 표본 만드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 근육을 이해하고 확인한 뒤 조금씩 뒤틀어 ‘허구의 근육’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허구라는 ‘빈틈’이 바로 예술의 역할일 테니 말이죠.”

인체 조각을 ‘에코르셰’ 스타일로 작업한 ‘조각가들’(2021·부분). [사진 학고재]

인체 조각을 ‘에코르셰’ 스타일로 작업한 ‘조각가들’(2021·부분). [사진 학고재]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이 ‘조각가들’(2021)이다. ‘인체의 신비’전에서 튀어나온 듯한, 알록달록 색이 칠해진 근육과 뼈만 있는 인간 셋이 작업대 위에서 무언가를 하는 모습인데,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동안의 제 작업은 표면이 너무 견고했어요. 발화자가 얘기를 다 해 놓았으니, 이야기가 진전이 안 되는 닫힌 구조였던 거죠. 이번에는 다 열어 놓았어요. 작품 속 저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만들고 있고 또 어떤 작업이 완성될 것인지, 관람객들이 보고 생각하고 기대할 수 있게. 사실 실제 인체 구조나 근육과는 전혀 다른 허구적 형체거든요. 근육에 칠해진 색도 세계 지도처럼 그냥 의미 없는 구분일 뿐이고요.”

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최수앙: Unfold’(7월 28일~8월 29일)는 그렇게 새롭게 진화한 작가의 신작 21점을 볼 수 있는 자리다. 설치 작업인 ‘조각가들’과 연동되는 작품이 평면 드로잉인 ‘프래그먼츠’ 연작(2021)이다. 색깔을 지닌 인체 구성 요소를 평면에 투사해 수채화로 그렸는데, 평면 작업임에도 묘하게 입체적이다.

허구의 인체 작업인 ‘손’(2021). [사진 학고재]

허구의 인체 작업인 ‘손’(2021). [사진 학고재]

“작업을 위해 해부학 자료들을 많이 스터디했는데, 개체를 이해하고 허구화하고 조합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근육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2년 가까이 ‘조각가들’을 만들면서, 그 과정에서 발견한 조형성을 평면 작업을 통해 발화시킨 것이죠.”

전시 서문을 쓴 큐레이터 맹지영은 “대상에 어떤 의미를 만들고 감정을 부여하기보다 작업이기 위한 각각의 요소들이 그 자체로 온전할 수 있는지를 실험했다…그렇게 시선을 돌려 거리를 조절하면서 과거 작품들에서 집요하게 전달하고 투사하고자 했던 감정의 무게를 한층 덜어냈다”고 평했다.

또 다른 시리즈 ‘언폴디드’(2021)는 평면의 입체화를 도모한 작품이다. 기름 먹인 종이에 색칠을 한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을 앞뒤로 채운 양면 자수 같은 작품으로, 전시장 바닥에 세워 놓았거나 벽에 붙여 놓았다. 회화의 ‘정면성’을 벗어난, 관람객이 몸을 작품의 앞뒤로 옮겨가며 관람하는 방식이다.

“저는 조각가이기 때문에 입체를 상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체 구성 요소가 몸을 만드는 것처럼, 각각의 면이 온전한 입방체를 만드는 전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세워서 전시하거나 경첩을 이용해 벽에 붙여 관람객이 몸을 움직여 적극적으로 관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의도한 작품입니다. 이걸 입방체로 만들면 과연 온전한 도형이 나올까 상상해보는 것도 관람객의 몫이겠고요.”

허구의 인체, 의미 없는 색, 아귀가 맞지 않는 도형은 최수앙이 준비한 포스트 극사실주의의 퍼즐 조각들이다. 그것이 온전히 맞춰지는 날, 우리 눈앞에 등장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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