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생명의 가격은 잘못 매겨진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8.07 00:20

지면보기

748호 20면

생명 가격표

생명 가격표

생명 가격표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민음사

인종·성·소득, 불공정 영향 끼쳐
사람마다 보상금 등 크게 달라

비용편익분석은 왜곡에 취약
생명 가격 공정한지 감시해야

한눈에 들어오는 책의 제목과 부제에서 책 내용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책의 부제는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그러니까 사람 목숨에 가격을 매길 수 있는데, 가격‘들’을 종합한 일종의 표가 존재하고, 표 안의 생명들은 각각 가격이 다른데, 그렇게 된 이면에 불공정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사람마다 목숨값이 다르다는 것까지야 새로울 게 없다. 당장 책에 선명한 사례가 나온다.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희생자 3000명에 대한 보상금이 적게는 25만 달러부터 많게는 700만 달러까지로 차이가 컸다. 희생자의 생전 소득을 바탕으로 보상금을 산정했기 때문이다. 보상금을 뒤집으면 곧 생명의 가격이다. 이런 계산법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일까. 유족들의 손해가 크다면(생전 돈을 많이 벌던 사람이 일찍 죽어 유족이 받지 못하게 된 미래 소득, 즉 손실이 크다면) 어쩐지 많이 보상해줘야 할 것 같다. 생명의 가격 대신 죽음의 의미에 주목하면, 가령 노벨상 수상자의 죽음과 연쇄살인범의 죽음을 동등하게 취급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차이는 존재하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역시 투명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생명 가격표가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 있는 가격표를 우리가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일 경우 생명 가격이 낮게 책정된 사람들을 더 큰 위험에 노출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백인보다 흑인, 남성보다 여성, 청년보다 노인들이 더 위태로울 수 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생존자를 찾는 모습. 3000명의 테러 희생자에게 보상금이 지급됐으나 액수는 천차만별이었다. [AFP=연합뉴스]

2001년 9·11 테러 직후 생존자를 찾는 모습. 3000명의 테러 희생자에게 보상금이 지급됐으나 액수는 천차만별이었다. [AFP=연합뉴스]

저자에 따르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의 생명에는 매일같이 또 끊임없이 가격표가 매겨진다. 9·11 보상금이 죽었을 때 가격표라면, 미국의 경우 9만~13만 달러에 이르는 대리모 출산 비용은 요람 이전의 생명 가격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격들을 누가 매기나. 가령 자동차 안전 규제에 대한 비용편익분석을 하는 비즈니스 분석가들, 수질 오염 물질의 허용 수준을 결정하는 정부 기관, 보장 범위를 촘촘하게 설계하는 보험회사, 범죄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금을 결정하는 배심원 같은 사람들이 생명의 가격을 매긴다. 이 모든 인간 활동에 가격 책정 행위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존재하지도 않는 불멸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깊고 형이상학적인 불치의 욕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명백한 가격 매기는 방법 같은 건 찾기 어렵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복수의 진리가 상충하고 가치의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의 가격을 매기는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와 우선순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런 가치관과 연결된 경제·윤리·종교·인권·법 현실이 생명 가격 책정에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얘기하니 생명 가격까지 흥정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의 위주의 책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는데, 실은 그 반대다. 저자는 통계 전문가이자 보건경제학자다. 자신의 전문성을 십분 발휘해 사법제도·정부의 환경 규제·기업활동·교육·출산·육아·삶의 질 등의 영역에서 생명 가격 책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 한계와 문제점은 뭔지를 소상하게 짚었다.

그래서 드러난 실상 가운데 뜻밖의 사례가 적지 않다. 가령 살인사건에 대한 민사재판에서 희생자의 생명 자체와 유가족이 겪는 정서적 슬픔에 대해서는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미국의 대부분의 주에서 그렇다고 한다. 매스컴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죽음은 값어치가 올라간다. 성금이 답지해서다. ‘식별 편향’이다.

저자가 가장 깐깐하게 문제 삼은 대목은 정부가 화력발전소에 대한 새로운 환경 규제책을 도입하거나 자동차 회사가 문제 있는 부품에 대한 리콜 여부를 고민할 때 예외 없이 실시하는 비용편익분석이다. 비용편익분석은 새로운 규제나 기업 결정에 소요되는 비용과 기대 편익의 현재 가치를 따져 비교하는 과학적 계산법 같지만 의도적인 왜곡에 상시 노출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기업들이 대개 비용을 과도하게 높게 추산해서다. 편익 추정치 역시 정부나 기업, 소비자 등 입장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의 의뢰를 받은 한 컨설팅 업체가 비용편익분석을 활용해 2001년 작성했다는 흡연 관련 보고서는 기가 막힌다. 넉넉한 국고에 도움이 되니 체코 정부가 흡연을 권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최악의 이기주의다.

이런 탐욕에 희생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명 가격표가 정해지는 과정을 감시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쉽진 않겠지만 이런 책을 읽는 게 그 첫걸음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