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쿠바에도 독립운동의 흔적이

중앙선데이

입력 2021.08.0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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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호 21면

뭉우리돌의 바다

뭉우리돌의 바다

뭉우리돌의 바다
김동우 글·사진
수오서재

1905년 대한제국 시절, 1033명이 멕시코로 농업이민을 한다. 도착 후 이들은 용설란의 일종인 ‘애니깽’ 농장에서 노예나 다름없이 일한다. 4년 계약 기간이 끝나도 멕시코 한인들은 귀국할 수 없었다. 일제의 대한제국 병탄 소식에 나라 찾겠다며 독립군 양성 위한 숭무학교를 설립한다. 일부는 더 나은 삶을 찾아 쿠바로 이주하지만 어렵긴 마찬가지다. 쿠바 일본영사관은 이들을 일제 식민으로 등록하려 했다. 한인들은 대한인국민회 쿠바 지방회를 설립해 자주적으로 움직였다. 덕분에 2차대전 당시 일본인과 구별되는 정치적 보호막이 된다. 한인들은 임시정부와 광복군 후원금을 모금하고 군사훈련도 한다. 쿠바 혁명 이후 사회주의 정권이 되자 북한은 대사관을 설치한다. 동포들을 체제 선전에 이용하려 했다. 그런데 후손들이 지닌 사진에 태극기가 보이자 반동분자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분단된 한반도의 비극은 이렇게도 드러난다.

쿠바 마탄사스 외곽에 있는 산카를로스 공동묘지에 묻힌 독립운동가 호덕근의 묘. 아들인 빅토리 호 차는 간단한 한글 단어만 기억했지만 품에서 작은 태극기를 꺼내 무덤에 꽂고 사진을 찍었다. 민박집을 운영하는 그는 100달러가 넘는 숙박비를 극구 사양했다. [사진 김동우]

쿠바 마탄사스 외곽에 있는 산카를로스 공동묘지에 묻힌 독립운동가 호덕근의 묘. 아들인 빅토리 호 차는 간단한 한글 단어만 기억했지만 품에서 작은 태극기를 꺼내 무덤에 꽂고 사진을 찍었다. 민박집을 운영하는 그는 100달러가 넘는 숙박비를 극구 사양했다. [사진 김동우]

일간전문지 기자였던 김동우는 “회사에 제 꿈이 없어 행복을 찾아” 퇴사한 뒤 2017년 세계여행을 시작한다. 다큐멘터리 사진 여행이었다. 그런데 인도 여행 중 알게 된 ‘인면전구(印緬戰區) 공작대’ 이야기가 그를 독립운동 현장으로 이끈다. 인면전구는 인도·미얀마 지역에서 중국에서 활동한 조선의용대가 영국군을 도와 일본군과 싸운 곳이다. 당시 대표적인 인물이 안중근의 둘째 동생 안공근의 차녀 안금생과 결혼한 한지성이다. 일제가 1941년 추방할 때까지 우리 땅에서 감리교 선교사로 활동한 영국군 장교 롤런드 베이컨과 함께 한지성 공작대장을 비롯한 9명은 일본군 대상의 선무 공작과 문서 번역 등을 지원한다. 1945년 3월 미얀마에서 전사한 롤런드 베이컨은 202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함께 활동한 한지성은 6·25전쟁 전 월북해 북한 고위층으로 지내다 1958년 숙청된다. 이런 이유로 한지성은 대한민국에서 서훈을 받지 못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사이프러스 공동묘지에 있는 김찬도의 묘비에 ‘큰 나(大我)를 위해 작은 나(小我)를 바치시다 ’라는 글이 적혀 있다. [사진 김동우]

미국 샌프란시스코 사이프러스 공동묘지에 있는 김찬도의 묘비에 ‘큰 나(大我)를 위해 작은 나(小我)를 바치시다 ’라는 글이 적혀 있다. [사진 김동우]

이 책은 2019년 출간된 사진집 『뭉우리돌을 찾아서』를 보완했다. 정보가 부족한 다큐멘터리 사진은 관람자에게 갈증을 유발한다. 저자는 정보를 정리하고 이야기가 충실한 책으로 엮어 갈증을 해소했다.

현재 국립한경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전공 중인 김동우는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왜곡되고 흐려져 결국 사라진다”고 말한다. 서울 우이동 근현대사기념관에서 18일까지 특별사진전 ‘기억,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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