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종업원이 위반행위 했다면 그 주인도 책임 물어야 할까

중앙일보

입력 2021.08.06 15:00

[더,오래] 정세형의 무전무죄(45)

영업주가 상당한 주의 또는 관리·감독 의무를 게을리한 경우에만 양벌규정에 의해 영업주를 처벌할 수 있다.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

영업주가 상당한 주의 또는 관리·감독 의무를 게을리한 경우에만 양벌규정에 의해 영업주를 처벌할 수 있다.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

자신이 하지 않은 일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는다면 매우 억울할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처벌될 수도 있는 규정이 있다. 바로 ‘양벌규정’이다.

예를 들면, 구체적인 규정 내용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저작권법, 식품위생법, 아동복지법 등 많은 법률에서 ‘법인의 대표자나 법인 또는 개인의 대리인·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이 그 법인 또는 개인의 업무에 관하여 (해당 법률에서 정한) 죄를 범한 때에는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법인 또는 개인에 대해 각 해당 조의 벌금형을 과한다’는 식의 양벌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종업원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영업주가 무조건 처벌되는 것은 아니다. 위와 같은 양벌규정이 있는 경우에도 ‘다만, 법인 또는 개인이 그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업무에 관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단서도 함께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례를 살펴보자. 무허가 유흥주점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있었는데, 당시 영업주는 교통사고로 입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업주는 양벌규정에 따라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영업주는 억울하다고 호소하면서 상고했지만, 대법원에서는 영업주의 상고를 기각했다. 식품위생법 양벌규정의 취지는 식품영업주의 종업원 등에 대한 감독 태만을 처벌하려는 규정인데 종업원이 무허가 유흥주점 영업을 할 당시 영업주가 교통사고로 입원하고 있었다는 사유만으로 위 양벌규정에 따른 식품영업주로서의 감독 태만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정작 위법행위를 한 종업원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데, 영업주만 처벌할 수도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양벌규정에 의한 영업주의 처벌은 금지위반행위자인 종업원의 처벌에 종속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해 그 자신의 종업원에 대한 선임 감독상의 과실로 인해 처벌되는 것이므로 종업원의 범죄성립이나 처벌이 영업주 처벌의 전제조건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양벌규정은 영업주의 종업원에 대한 선임 감독 책임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경우와는 반대로 종업원이 위반행위를 해 처벌되더라도 영업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 영업주가 상당한 주의 또는 관리·감독 의무를 게을리한 경우에만 양벌규정에 의해 영업주를 처벌할 수 있다.

저작권법, 식품위생법, 아동복지법 외에 건축법, 의료법, 폐기물관리법 등 양벌규정을 두고 있는 법률은 생각보다 많다. [사진 flickr]

저작권법, 식품위생법, 아동복지법 외에 건축법, 의료법, 폐기물관리법 등 양벌규정을 두고 있는 법률은 생각보다 많다. [사진 flickr]

그렇다면 상당한 주의 또는 관리·감독 의무를 게을리했는지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까. 대법원은 양벌규정에 있어 법인이나 사용인 등이 상당한 주의 또는 관리·감독 의무를 게을리하였는지는 당해 위반행위와 관련된 모든 사정 즉, 해당 법률의 입법 취지, 처벌조항 위반으로 예상되는 법익 침해의 정도, 그 위반행위에 관해 양벌조항을 마련한 취지 등은 물론 위반행위의 구체적인 모습과 그로 인해 실제 야기된 피해 또는 결과의 정도, 법인의 영업 규모 및 행위자에 대한 감독 가능성 또는 구체적인 지휘감독관계, 법인이 위반행위 방지를 위해 실제 행한 조치 등을 전체적으로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떤 사람이 회사 설립을 앞두고 설립 예정인 회사의 영업을 위해 위법행위를 한 경우 설립된 회사에 대해 양벌규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된 사례를 살펴보자. 하급심에서는 종업원이 위반행위를 한 당시는 영업개시가 임박해 이를 준비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고, 당시 회사 피고용인의 지위에 있던 사람이 회사의 업무에 관해 위법 행위를 한 이상 회사는 양벌규정에 의한 책임을 진다며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이런 하급심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보았다. 법인이 설립되기 이전에 어떤 자연인이 한 행위의 효과가 설립 후의 법인에 당연히 귀속된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양벌규정에 의해 사용자인 법인을 처벌하는 것은 형벌의 자기 책임 원칙에 비추어 위반행위가 발생한 그 업무와 관련해 사용자인 법인이 상당한 주의 또는 관리·감독 의무를 게을리한 선임 감독상의 과실을 이유로 하는 것인데, 법인이 설립되기 이전의 행위에 대해 법인에게 어떠한 선임 감독상의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별한 근거 규정이 없는 한 법인이 설립되기 이전에 자연인이 한 행위에 대해 양벌규정을 적용해 법인을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이었다.

이처럼 양벌규정은 언뜻 보면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처벌되는, 즉 연좌제나 마찬가지여서 책임 주의에 반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양벌규정은 영업주 자신의 의무인 ‘해당 업무에 관한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 한 경우에만 처벌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책임 주의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

과거 ‘수질 및 수생태계 보전에 관한 법률’에서는 영업주가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다 한 경우 처벌을 면할 수 있는 단서를 두지 않은 채 단순히 법인이 고용한 종업원 등이 업무에 관해 범죄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인에 대해 형사처벌을 과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는 다른 사람의 범죄에 대해 그 책임 유무를 묻지 않고 형벌을 부과하는 것으로 법치국가의 원리 및 죄형법정주의로부터 도출되는 책임 주의원칙에 위배된다고 보았고, 이후 법률에 단서가 추가되었다.

양벌규정이 생소한 분도 많겠지만 앞서 언급한 저작권법, 식품위생법, 아동복지법 외에도 건축법, 의료법, 폐기물관리법 등 양벌규정을 두고 있는 법률은 생각보다 많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중대 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도 마찬가지다.

종업원이든 영업주든 위법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종업원 개인의 잘못으로 인해 영업주까지 처벌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영업주로서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문서나 사진, 동영상 등의 자료를 남겨 두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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