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아내의 첫 키스와 차원 다른 짜릿함…손주의 기습 뽀뽀

중앙일보

입력 2021.08.06 13:00

[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21)

아침저녁으로 잠깐씩 손주들을 돌봐주고 있다. 아내가 후배들과 점심 약속이 있다며 손자를 한나절만 봐 달라고 한다.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흔쾌히 다녀오라고 했지만, 온전히 혼자 돌보는 일이 처음이라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손주를 돌보는 아내와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할머니가 손주들을 데리고 나들이 가는 모습. [사진 조남대]

할머니가 손주들을 데리고 나들이 가는 모습. [사진 조남대]

우리는 딸네와 같은 아파트 아래 위층에 살고 있다. 아침에 딸네 집으로 가 6살 손녀와 4살 손자가 일어나면 옷 입혀 밥 먹인 다음 9시 조금 지나 손녀를 유치원 버스 태워주고 손자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면 오전 할 일은 끝난다. 아내는 오후 4시경 어린이집에서 손자를 데려오고, 유치원에서 오는 손녀를 받아 딸네가 올 때까지 돌봐주다 저녁 식사를 함께하면 일과가 마무리된다. 그 과정에서 나의 역할은 아침에 손주들 밥 먹여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다음 저녁 식사시간 무렵에 돌봐주는 것이다. 얼마 전 손자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생해 2주간 쉬게 되어 아내는 온종일 손자를 집에서 돌봐야 하므로 더 힘들어졌다. 오래전에 전직 직장 후배들과 점심 약속을 했다며 한나절만 손자를 봐 달라고 한다. 매일 고생하는 아내의 오랜만 부탁이라 흔쾌히 승낙했다. 약속 날짜가 다가오자 재차 상기시키기에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큰소리쳤다. 손자하고 한나절쯤 지내는 것이야 재미있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는 약속장소로 나가면서 손자와 내 점심을 챙겨놓고 데워먹는 방법까지 메모지에 적어 놓았다. 다행히 손자는 평소에도 “할아버지 최고”하며 나를 잘 따른다. 사내아이라서 그런지 자동차와 공룡과 로봇 장난감을 좋아한다. 로봇을 갖고 놀면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흥겹게 지낸다. 이 방 저 방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의자를 놓고 피아노에 올라가 물건을 꺼내는 위험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걸 보는 순간 아찔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미끄러운 피아노 위에 올라갔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수 있다. 혼자 잘 노는 것 같지만 눈은 손자를 따라다니며 위험한 순간에 용수철처럼 튀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지난번에는 어른들이 다 있는데도 뛰어가다가 넘어져 앉은뱅이 책상 모서리에 볼을 부딪쳐 한 달 동안 볼과 눈 주위까지 멍이 시퍼렇게 들기도 했다, 움푹 들어간 자욱이 남아 있어 걱정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원래대로 회복이 되어 한시름 놓은 적도 있었다. 30분 정도 혼자 재미있게 놀다가 “심심해”하며 나에게 오더니 갑자기 허벅지를 깨물려고 한다. 깜짝 놀라 떼어내자 거실에 깔아놓은 매트를 물어뜯는다. 입이 근질근질하고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그러는지 지난번에도 내 허벅지를 깨물어 한동안 시퍼렇게 멍이 들기도 했다.

조금 지겨워할 때쯤 아이스크림을 한 개 주자 입이 헤 벌어지면서 할아버지가 최고라며 좋아한다. 아이스크림도 핥아서 먹는 것이 아니라 깨물어 먹기 때문에 5분도 안 되어 다 먹고는 한 개 더 달란다. 많이 먹으면 배 아프다고 엄포를 놓아도 통하지 않는다. 울고불고 떼를 쓰기 때문에 안 줄 수가 없다. 한 개를 더 먹더니 잠이 온다며 이불을 달라고 한다.

아내가 점심까지 먹이고 낮잠을 재워야 한다며 오리고기 익히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갔는데 그냥 재우면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고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에어프라이어에 훈제오리고기를 넣고 2분을 데우고 뒤집어서 또 2분을 데우라고 했는데 두 개의 스위치 중 어느 것이 시간 맞추는 것인지 헷갈린다. 설명을 해 줄 때 건성으로 들은 모양이다. 할 수 없어 스위치를 끝까지 돌려놓고 수시로 꺼내어 익었는지 확인하기를 반복해 겨우 구웠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업고 달래고 있다. [사진 조남대]

할아버지가 손자를 업고 달래고 있다. [사진 조남대]

그러는 사이 손자는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얼른 좋아하는 카봇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 보여주자 눈망울이 또렷해지면서 밥을 받아먹는다. 겨우 정해진 양만큼 먹더니 내려앉는 눈꺼풀에 견디지 못하고 꾸벅꾸벅 존다. 이불 위에 눕히자 금방 잠이 들었다. 잠든 손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자 얼마 전 일이 생각나 짜릿한 전율이 온몸을 감싼다. 저녁에 손주들을 딸에게 맡기고 아파트 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손자가 “잠깐”하고 외치더니 문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서는 내 볼에 뽀뽀를 해 준다. 그리고는 다른 쪽 볼에도 뽀뽀한 다음 입술까지 입을 맞춘다. 어린아이의 향기와 부드러운 피부의 촉감이 너무나 짜릿해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손자의 기습적인 입맞춤의 느낌과 기분은 아내의 첫 키스와는 차원이 다른 짜릿하고 황홀한 입맞춤이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켜 ‘후유∼’ 한숨을 쉬며 소파에 등을 푹 기대고 앉아 그동안 밀렸던 카톡을 보며 여유를 가져 본다. 2시간 정도 낮잠을 자는 동안 아내가 돌아오면 한나절 손자 돌보기는 끝이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다 기분 좋은 표정으로 돌아온 아내가 손자 잘 봤다고 칭찬해 줄 것을 생각하자 입꼬리가 스르르 올라간다.

짧은 시간 동안 손자를 돌보는데도 정신이 없다.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손자와 온종일 함께 지내며 밥 먹이고 낮잠 재우고 목욕시키는 아내의 고역이 얼마나 큰지 대강 짐작이 간다. 잠깐 옆에서 놀아주는 것도 이럴진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통제하기 어려운 손자를 전적으로 돌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많이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 깊숙이 자리 잡는다.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단둘이 지내다 보니 손자에 대한 친밀감과 애착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 바른 인성을 가진 손주로 자랄 수 있도록 돌보아주는 것이 할아버지의 책무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도 느낀 것이지만 아직 기저귀도 떼지 않은 꼬마를 여러 명 돌본다는 것이 무척 신경 쓰이고 힘들 텐데도 아침 등원 때에 환하게 웃으며 맞아 주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보면 존경스럽다. 이분들이 있어 부모가 마음 놓고 직장생활을 잘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돌보는 이들의 미담과 헌신이 훨씬 더 클 텐데 가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뉴스로 보도될 때면 안타깝고 가슴이 아리다.

손녀와 손자가 사이좋게 식물을 관찰하고 있다. [사진 조남대]

손녀와 손자가 사이좋게 식물을 관찰하고 있다. [사진 조남대]

비록 한나절 동안이지만 활동량과 호기심이 많은 네 살짜리 손자를 오롯이 혼자 돌보기는 쉽지 않았지만 맛보는 행복감은 훨씬 더 컸다. 손주들의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고 아동심리에 관해 공부해 전문적인 육아 지식도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노고에 대해 새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세대의 주인공인 아이들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좀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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