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상연의 시시각각

문 대통령이 정말 몰랐다 해도

중앙일보

입력 2021.08.06 00:50

업데이트 2021.08.0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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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 5일 청와대에서 인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국가인권위원장에 송두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명하자 야당은 '노골적 친여 성향의 강성 인사'라고 비판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사퇴로 공석인 신임 감사원장은 발표되지 않았다.       [사진 청와대]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 5일 청와대에서 인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국가인권위원장에 송두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명하자 야당은 '노골적 친여 성향의 강성 인사'라고 비판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사퇴로 공석인 신임 감사원장은 발표되지 않았다. [사진 청와대]

전직 대통령 대상의 전문가 리더십 평가에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사실상 꼴찌를 기록했다. 44명 중 41위다. 단지 한 달간 대통령을 한 해리슨보다도 뒤처졌다. 두 번이나 탄핵당했으니 물론 앞쪽은 아니다. 그래도 바닥까지 내몰린 건 막말과 유체 이탈, 툭하면 내뱉는 거짓말 때문만이 아니다. 선동적 리더가 그를 맹종하는 광적인 지지자들과 결합됐을 때 민주주의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를 실제로 보여줘서다. 국민 분열에 철저했던 트럼프다. 한 번도 경험 못 한 그의 집권 전략은 ‘대통령제의 가장 큰 적이 대통령일 수 있다’는 근본적 고민을 미국에 안겼다.
 문제는 분열의 유산이 현재 진행형이란 사실이다. 트럼프는 지금도 저소득 백인들의 분노와 인종차별 의식에 불을 지르는 중이다. ‘지난 대선은 조작됐고 도둑맞았다’는 그의 ‘대선 사기론’에 고개를 끄덕이는 지지자가 많다. 트럼프의 모든 잘못에 눈감았다. 대오를 이탈할 조짐은 없다. 그러니 공화당 내 그의 입지는 오히려 강화되는 양상이다. 반기를 들었던 인사들은 쫓겨나고 공화당 지도부는 급속하게 트럼프의 꼭두각시로 대오를 갖췄다. 바이든이 국정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수록 트럼프는 나머지 반쪽에 철옹성을 쌓고 반대를 위한 반대로 달려간다.
 그럼 우린? 미국에 ‘트럼프 정치’를 수출한 ‘분열 정치 원조국’이다. 그 방면 만큼은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이는 K-정치다. 나라가 이리저리 갈려 한쪽이 옳다면 다른 쪽은 그르다 외치고, 이쪽에서 좋다면 저쪽에선 나쁘다고 반대한다. 나라의 모든 현안이 그런데 ‘드루킹 댓글 여론 조작’도 예외가 아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유죄 판결을 계기로 물었더니 ‘대통령 사과가 필요 없다’는 답변이 40%를 넘겼다. 대략 대통령 지지율과 비슷한 수치다. 민주당 지지층에선 겨우 10% 남짓만이 ‘사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든, 말든 청와대가 굳게 입을 다문 건 아마도 이런 여론조사 결과가 배경일 것이다. 여권 주자들이 일제히 김 전 지사를 옹호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봐야 한다. ‘웬 사과? 알지도 못했는데…’란 뜻이 담겨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김 전 지사가 문 대통령 몰래 벌인 범죄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과연 모를 수 있었겠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많다. 김 전 지사와 관련자가 죄다 대통령의 최측근이고 정권 핵심 인사들이다. 알았든, 몰랐든 문 대통령은 최대 수혜자다. 의구심은 ‘무작정 부인’이나 침묵만으로 풀리지 않는다.
 게다가 민주당은 그 직전 대선 때 국정원 댓글 사건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맹공했다. 맞다. 대선 과정에서의 선거 공작, 여론 조작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든, 드루킹 댓글 조작이든 모두 그렇다. 조작 규모는 드루킹 댓글이 국정원 댓글의 수백 배 규모다. 그런데도 스멀스멀 넘어가려 하니 '선거 중립' 다짐이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총리와 선거 관리 주요 부처 장관이 모두 같은 편이다. 청와대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핵심 요직에 있다. 역대 정부에서 이런 경우는 없었다.
 트럼프 정권을 거치며 ‘베스트 프렌드가 없다’는 응답자가 둘 중 하나로까지 늘었다는 미국이다. 자기가 대통령으로 치른 선거에서 지고도 ‘승복 못 한다’는 억지가 ‘용광로 미국’을 이 꼴로 만들었다. ‘선거답지 못한 선거였다’는 생각이면 후유증은 ‘베스트 프렌드가 줄었다’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엊그제 ‘방역과 민생이 마지막 책무’라고 말했다. ‘공정한 심판’이 이에 못지않다. 드루킹 판결이 계기다. ‘이번 대선엔 국정원 댓글이건, 드루킹이건 절대로 없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지지층 아닌 쪽도 따르는 내각이어야 한다. 거대한 패싸움 선거전이 막 열려가는 참이다.

‘공정한 대선 관리’ 믿음 주려면
드루킹 사과ㆍ재발방지 약속하고
야당도 동의할 중립내각 꾸려야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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