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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 천국 스웨덴의 부동산 정책은 왜 망가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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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부동산 시장 통제의 덫

1965~1975년 100만 가구 건설 정책의 일환으로 스톡홀름 외곽에 조성된 린케비(Rinkeby) 지역의 공공임대주택 단지와 아파트. 이곳 주민들의 월 평균소득은 1만 7100크로나로 도심 지역(3만 8300크로나)의 절반도 안 된다. [사진 위키피디아]

1965~1975년 100만 가구 건설 정책의 일환으로 스톡홀름 외곽에 조성된 린케비(Rinkeby) 지역의 공공임대주택 단지와 아파트. 이곳 주민들의 월 평균소득은 1만 7100크로나로 도심 지역(3만 8300크로나)의 절반도 안 된다. [사진 위키피디아]

지난 6월 스웨덴 역사상 처음으로 총리가 불신임 사퇴했다. 하지만 16일 만에 재신임을 받아 복귀했다. 집권당인 사회민주노동자당의 대표 스테판 뢰벤의 이야기다. 뢰벤 총리가 불신임 받았던 이유는 ‘월세 상한제’ 폐지를 내놨기 때문이다. 용접공 출신의 진보당수인 그가 서민들에게 불리한 듯한 주장을 펼친 이유는 뭘까.

스웨덴 집값 지난 40년간 8배 뛰어 #‘월세 상한제’로 서민 주거난 격화 #“토지공개념으론 집값 해결 못해” #‘노예의 길’ 가는 부동산 포퓰리즘

국가가 시장 대체할 수 없어

2차 대전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은 산업시설이 파괴되지 않은 덕분에 유럽 곳곳에서 노동자가 몰려왔다. 계속된 이민 행렬로 스톡홀름 같은 대도시는 심각한 주택난에 빠졌다. 사민당 정권은 1965년부터 10년간 공공주택 100만 호를 건설했다. 당시 스웨덴 인구가 800만 명 정도였으니 현재 한국으로 치면 600만 호 이상을 공급한 것과 같다.

1965~1975년 100만 가구 건설 정책의 일환으로 스톡홀름 외곽에 조성된 린케비(Rinkeby) 지역의 공공임대주택 단지와 아파트. 이곳 주민들의 월 평균소득은 1만 7100크로나로 도심 지역(3만 8300크로나)의 절반도 안 된다. [사진 domnik.net]

1965~1975년 100만 가구 건설 정책의 일환으로 스톡홀름 외곽에 조성된 린케비(Rinkeby) 지역의 공공임대주택 단지와 아파트. 이곳 주민들의 월 평균소득은 1만 7100크로나로 도심 지역(3만 8300크로나)의 절반도 안 된다. [사진 domnik.net]

임대료는 시세의 40~70% 수준이었다. 조성된 택지의 90%가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민간임대주택의 월세도 1978년부터 임대업자 및 세입자 단체가 노조 협상하듯 합의로 정했다. 통상 연 1~2%다. 월세 상한으로 수익률이 낮아지자 집주인들은 투자를 꺼렸고, 건설업체들은 공급을 줄였다. 그 결과 임대주택 입주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개·보수도 제때 안 돼 주거 수준도 열악해졌다. 특히 40~50년 전 공급한 비도심 지역의 공공임대주택은 슬럼가로 변했다. 처음 이곳은 모두 함께 어우러져 산다는 뜻에서 ‘지구촌(Världensby)’이라 칭했지만, 현재는 ‘가지 말아야 할 곳(No Go zone)’으로 불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스웨덴 웁살라대에서 ‘지속가능발전’을 전공한 하수정 북유럽연구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월세 상한제’ 폐지가 나온 이유는.
“과거엔 임대주택이 서민들의 주거를 안정시켰지만, 지금은 애물단지다. 2016년 스웨덴 유명기업의 CEO가 정치인들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부동산 정책을 바꿔달라고 했다. 글로벌 인재를 뽑아도 스톡홀름에 집을 못 구해 이직을 못한다는 거다. 뢰벤 총리는 신규 주택의 ‘월세 상한’을 없애면 민간 투자가 늘고 공급이 많아질 거라고 봤다.”
집 구하기가 그렇게 힘든가.
“대도시 임대주택에 들어가려면 10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길게는 20년 걸린다. 그렇다 보니 한 번 입주하면 웬만해선 나오질 않는다. 오히려 다른 세입자에게 웃돈을 두 배 정도 받고 임차해 주기도 한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고 싶어도 들어갈 집이 없다.”

실제로 2017년 미국의 언론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당시 스톡홀름의 임대주택 대기자는 58만 명에 달했다. 스톡홀름 인구(100만 명)의 절반이 넘는다. 도심 지역인 바사스탄(vasastan)은 23.2년, 쿵스홀멘(kungsholmen)은 21.2년을 기다려야 했다.

부동산 가격은 안정됐나.
“한국처럼은 아니지만, 스웨덴에서도 부동산은 중요한 자산 증식 수단이다. 2009~2016년 집값은 55%나 올랐다. 2018년엔 블룸버그가 스웨덴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주택시장으로 꼽았다. 집값은 오르는데 임대주택 공급은 예전 같지 않다. 과거처럼 정부가 대규모 택지를 개발하기 어렵고, 민간도 수익률이 낮아 투자하지 않는다.”
스웨덴 부동산

스웨덴 부동산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스웨덴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2016년 기준 19%(한국 8%)다. 1945년(6%)과 비교하면 3배가 넘는다. 반면 민간임대주택은 같은 기간 52%에서 20%로 급감했다. 전체 임대 물량은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반면 집값은 계속 올랐다. ‘더 이코노미스트’ 세계주택가격 통계에 따르면 1980년 스웨덴의 주택가격을 100으로 봤을 때 2020년엔 822였다. 특히 2000년(254) 이후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한국은 이 통계에 처음 편입된 1986년을 기준(100)으로 2020년 292였다.

지난 수십 년 간 스웨덴 부동산은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면서 민간의 설 자리가 줄었다.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지도 않았다. 집값은 폭등하고 서민층의 주거수준만 열악해졌다. 사민당 정권이 ‘월세 상한제’ 폐지를 내세웠던 이유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여권의 대선 후보들은 이런 사실은 외면한 채, 국가의 시장 통제가 만능인 것처럼 이야기 한다.

규제와 증세는 집값 상승 부추겨

여권의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3일 기본주택 100만호 건설을 약속했다. 역세권에 10억 원 가치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집은 ‘사는(Buying) 것’이 아닌 ‘사는(Living) 곳”이라며 “평생 역세권에서 월세 60여 만원으로 살 수 있다”고 했다. 국토보유세도 신설해 “90% 가까운 가구가 혜택을 보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 지사는 다주택자 징벌 과세, 주택관리매입공사(가칭)를 통한 가격 통제 방안 등을 제시했다.

또 다른 대선후보인 이낙연 의원은 토지공개념 3법을 주장한다. 그 중 핵심인 ‘택지소유상한법’의 입법예고 기한이 어제(5일) 끝났다. 이제 상임위 심사를 거쳐 본격적인 법률 제정 작업만 남았다. 법안은 가구의 택지소유 상한면적을 특별·광역시 1320㎡, 일반 시 1980㎡, 이외 지역 2640㎡로 제한했다. 상한 초과시 최고 연 9%의 부담금을 물린다.

두 사람의 공약을 요약하면 시장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부동산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보다 한 발 더 나갔다. 이들의 공약은 정말 실현될 수 있을까. 지난 정부에서(2015~2016년) 부동산 안정기를 이끌었던 강호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30년 넘게 경제관료를 지낸 그는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택지소유상한은 1999년 위헌 결정됐다.
“집값 상승의 본질은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 부족이다. 토지공개념과 전혀 관계없다. 해결 방법은 국민이 원하는 다양한 주택을 적절히 공급하는 거다. 토지공개념을 내세우는 건 문제는 풀 생각 없고, 이념 전쟁을 부추겨 표를 얻으려는 뜻으로 비친다. 헌법에 명시된 사유재산의 권리를 국가가 침해할 수는 없다.”
공공임대가 만능일까.
“임대시장을 정부 혼자 책임지는 나라는 없다. 모두 민간의 역할을 인정하고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를 준다. 국민들도 자산이 될 수 있는 내 집을 갖고 싶지 평생 임대만 원하겠나. 여권이 말하는 불로소득 환수도 모순이다. 집값 상승으로 인한 자산 증가는 평가이익이다. 확정되지 않은 미실현 이익에 과세를 한다는 건 세금의 탈을 쓴 벌금이다.”
주택관리매입공사(가칭)를 통한 가격 통제는 가능한가.
“정부가 전체 주택(약 3600조 원)의 10%는 보유해야 가격 조절을 할 텐데, 360조 원이 어디서 나오나. 추곡수매제도처럼 집이 쌀 때 샀다가 시장이 과열되면 판다는 것인데, 그 때 해당 주택에서 임대로 살고 있던 세입자는 어떻게 할 건가. 세계 어떤 나라도 집을 정부가 비축해 관리하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관리 비용을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력한 규제 정책에 대해선 여권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또 다른 대선후보인 정세균 전 총리는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은 성공하기 힘들다”며 “세금을 올리고 규제가 늘면 매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 가격이 오른다”고 지적했다. 택지소유상한법에 대해선 “세금을 감수하고도 매물을 내놓지 않을 것이며, 오른 세금만큼 세 부담을 전가시켜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권의 다수가 주장하는 부동산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공’을 무기로 개인의 ‘사적 소유’를 억압한다는 점이다. 리처드 파이프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시민의 자유는 소유권에 대한 공적 보장에서 시작된다”며 “지나친 평등주의가 자유는 물론 평등 자체도 파괴한다”고 말했다(『소유와 자유』).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킨 게 대표적인 예다.

자유에는 경쟁과 노력, 책임이 뒤따른다. 정부는 시민 각자가 노력을 통해 더 나은 성취를 이루고, 공정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고민해야 한다. 경쟁에서 소외된 이들에겐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국가가 뭐든 해주겠다는 발상은 대중을 ‘노예의 길’로 이끌 뿐이다. “물질적 욕구에 대한 좌절을 국가권력으로 보상받으려는 심리”(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팽배할 때 우리는 선의로 포장된 지옥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