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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메타버스 안의 그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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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염태정 기자 중앙일보
염태정 경제에디터

염태정 경제에디터

나의 분신, 아바타를 며칠 전 만들었다. 2000년대 초 인터넷기업 네오위즈가 아바타 아이템을 유료화하면서 이슈가 됐을 때 만들어 봤으니 20년 만의 아바타 생성이다. 지난달 새로 등장한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 메타버스계의 강자 제페토 두 곳에 만들었다. 나름 멋진 캐릭터를 선정했는데 돈 아끼느라 잘 치장하지는 못했다. 아바타로 이프랜드와 제페토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20년 전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어색하다. 나이 때문인가, 아니면 메타버스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탓인가.

정치인·지자체도 속속 메타버스행 #장밋빛 전망 속 과제 만만치 않아 #가상공간·익명성 뒤 분쟁·범죄 위험 #법적·제도적 보완책도 고민해야

기업·단체·정부기관이 경쟁적으로 메타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도 속속 입장한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박용진 후보는 얼마 전 제페토에 둥지를 틀었다. 민주당은 메타폴리스라는 가상 공간에 대선 캠프도 차렸다. 국민의힘은 경선 과정에 메타버스를 활용하기 위한 기구를 만들 예정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초 ‘메타버스에서 한국판 뉴딜을 말하다’는 영상을 공개했는데, 홍남기 경제부총리 아바타가 뉴딜을 설명한다. 전주시는 메타버스를 통해 도시를 홍보할 계획이다. 공연·졸업식·교육 등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사례는 이미 차고 넘친다. 미국의 로블록스를 비롯, 관련 국내외 메타버스 관련 기업 투자도 상당하다.

메타버스(Metaverse)가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메타버스란 용어 자체는 1992년 미국의 작가 닐 스티븐슨이 쓴 공상과학소설 『스노우 크래시(Snow Crash)』에서 아바타가 활동하는 인터넷 기반의 가상 세계를 표현하는 말로 처음 등장했다는 게 중론이다. 통상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우주·세상을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가상 공간으로 설명한다. 국립국어원은 우리말 표현으로 ‘확장 가상 세계’를 제안한다. 그래도 여전히 말이 어렵다.

서소문 포럼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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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이 분명치 않다 보니 메타버스의 유형을 현실에 판타지와 편의를 입힌 증강 현실(AR), 인스타그램처럼 개인의 삶을 디지털 공간에 옮겨 놓는 라이프 로깅(Life Logging), 구글맵같이 세상을 디지털 공간에 복제하는 거울 세계(Mirror World), 어디에도 없던 세상을 창조하는 가상 세계(Virtual World)의 네 개로 나누기도 한다 (김상균,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메타버스』). 엄밀한 정의는 어차피 어려울 듯한데 아바타와 게임, 가상현실, 증강현실, SNS의 종합판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메타버스 미래는 장밋빛이다. 홍보 수단으로, 투자 대상으로, 직접 돈을 버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바타를 기반으로 하는 재미난 놀이 문화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활동 증가가 겹치면서 메타버스 시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70조원 수준인 메타버스 관련 시장이 2030년엔 1700조원에 달할 거란 분석도 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세계적인 IT기업이 경쟁적으로 메타버스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하고 있다. 네이버의 제페토가 장악하고 있는 국내 메타버스 플랫폼 시장에 SK텔레콤이 이프랜드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롯데는 그룹 차원서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한다.

메타버스가 빠르게 생활 속으로 침투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장밋빛 전망 뒤에는 그늘이 있다. 제도적 보완점도 상당하다. 몰입감과 실재감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상당수 메타버스는 아직 초보 단계다. 로블록스나 제페토·이프랜드에서 아직은 몰입감과 실재감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관련 기업들이 몰입도와 실재감을 높이는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으나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

제대로 된 규칙과 질서 마련도 과제이다. 가상공간과 익명성이라는 메타버스의 장점이자 특징은 다른 한편에선 단점이다. 범죄에 대한 죄책감이 약해지면서 현실 세계보다 더 악질적이고 교묘한 수법의 신종 범죄가 등장할 수 있다(‘메타버스의 교육적 활용:가능성과 한계’, 2021).

물론 이런 문제는 지금도 있지만, 메타버스의 빠른 확장과 함께 더 늘어날 거다. 아바타에 가하는 폭력은 현실의 폭력과 어떻게 다른가. 어떻게 대응하고 처벌해야 하는가. 가상 공간 속의 재산권은 어찌 되는가. 이런 사안에 법적·제도적 장치를 세세히 마련해야 한다. 가상 공간에 나의 분신을 여럿 가질 수 있지만, 타인을 현혹하거나 속이는 수단이 되어서도 물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