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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화투(花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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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P팀장

김현예 P팀장

‘오월 난초 나비가 되어 유월 목단에 춤 잘 추네/칠월 홍돼지 홀로 누워 팔월산에 달이 뜬다/구월 국화 굳은 한 맘이 시월 단풍에 뚝 떨어지고/동짓달 오동달은 열두 비를 넘어가네.’

어느 아낙네의 노래인가 싶겠지만 경남 밀양에서 구전돼 온 ‘화투 타령’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화투 타령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분분하다. 일설엔 일제강점기에 많이 불린 점을 들어, 일본인이 우리 땅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서 퍼진 것으로 돼 있다. 일 년 열두 달, 나라 잃은 설움과 무력감을 노래했다는 평도 전해진다.

이 화투의 원형 격인 것이 있었으니 바로 투전(鬪錢)이다. 길이는 10~20㎝. 손가락 정도 너비의 콩기름 먹인 종이에 동물 그림이나 글자가 적혀 있는데, 패를 뽑아 적힌 끝수로 승부를 겨뤘다. 중국에서 생겨나 조선 시대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숙종 때 역관을 지낸 거부(巨富) 장현이 역모 혐의로 옥살이할 때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장현은 경종을 낳은 희빈 장씨의 당숙이기도 하다.

놀이로 시작했지만, 돈내기가 붙으면서 투전은 사회문제가 됐다. 『조선왕조실록』엔 정조 15년(1791년)에 올라온 장문의 상소 기록이 있다. 사대부 자제부터 서민들까지 집과 토지를 팔아 바칠 정도가 되고 있으니 투전 파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성군으로 불리던 정조 역시 투전 열풍을 막지는 못했다.

개화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투전이 빠진 자리엔 화투가 들어섰다. 정작 종이로 화투를 만들어 팔던 일본의 닌텐도는 시대 변화와 함께 게임회사로 변모했고, 문화 수입국인 우리나라는 치면 착착 소리가 나는 플라스틱 소재 화투를 만들면서 수출국 소리를 듣기도 했다. 서민 놀이의 대명사였던 화투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스마트폰 게임에 밀려 어르신들의 놀이가 됐다.

이 사연 깊은 화투가 얼어붙었던 우리 마음을 녹이는 일이 벌어졌다. 겹겹으로 된 방호복을 입은 한 간호사가 코로나19로 입원한 93세 한 치매 어르신과 화투를 치고 있는 사진 한장이 알려지면서다. 주인공은 삼육서울병원의 이수련(29) 간호사. “내가 왜 여기 있냐”고 묻는 백발의 할머니와 마주앉아 수건을 깔고 화투를 쥐었다. 간호사의 정성 덕에 할머니는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말 그대로, 아름다운 꽃들의 겨루기(花鬪)였다.